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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5/7/12 교회의 표지

정치일 2015.07.11 19:16 조회 수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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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태복음 28:18-20

    "교회의 표지"라는 말이 좀 어렵습니다. 오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을 이리 정한 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1) 교회가 목적하는 방침, 원리가 뭐냐 라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이고, (2) 교회란 무엇인가? 즉 다른 것들과 구별하는, 다시 말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집단들이나, 모임들과 확연히 구분되야만 하는 것이 교회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이리 말씀의 제목을 정했습니다.

1. 교회의 첫째가는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교회의 첫째 사명이 무엇입니까? 의심할 여지 없이 예수 복음, 즉 말씀 선포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20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선포, 말씀 양육이 교회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선포 없는 교회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보다는 프로그램이 가득차 있습니다. 현대의 교회와 성도들은 말씀의 홍수 속에서 말씀의 빈곤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숫자라고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대 명제아래 숫자 싸움들을 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머리를 짜 만들어 낸 프로그램만이 난무하는 교회들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계신 곳이 교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 교회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말씀의 본질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말씀은 곧 예수 복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복음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입니다. 예수만이 복음이고, 예수만이 구원이고, 예수만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제가 믿는 복음이고,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복음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앞세운 행위적 구원을 전하는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16절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것이라고 했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21절에서는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3장 2절에서는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질타를 하고 있고, 3장 6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울은 선포하기를 3장 9절과 10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고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외에 행위 구원을 가르치거나, 행함 있는 믿음을 가르친다고 예수 복음 외에 율법행위를 강조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예수 복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선포하고 있는 대로 저주받을 다른 복음입니다.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말하고 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의 생활의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즉 받은 바 구원의 은혜에 대한 삶의 변화입니다. 믿음은 내적인 결단입니다. 이것이 밖으로 나타나는 고백이 곧 믿음의 실천인 행함입니다. 성도의 삶에는 믿음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살아 있고, 실천되어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의 복음만이 선포되는 강단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교회의 모범적인 모습을 다른 데서가 아니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적인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사도행전적인 교회로 돌아가는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0절 이하에서 교회의 모범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데,

    1) 가르침이 있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말씀이 살아 있는 교회가 사도행전적인 교회입니다. 바른 말씀의 양육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로, 목회자들이 먼저 말씀을 바르게 알고 전해야 하고, 둘째, 성도들도 바르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2) 성도간의 나눔과 헌신의 아름다움이 있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교회는 어느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들어왔으면 변화 되야 하는 곳이 또한 교회입니다. 변화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하고, 성령의 체험이 있어야 하고, 그 체험을 통해 나눔과 헌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은혜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대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성령충만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받은 은혜대로 은혜롭게 사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충만 받은 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사는 복된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고, 모였으면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더 이상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모였으면 말씀을 듣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초대방주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 말씀을 사모하는 교회, 기도에 힘쓰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세상 가운데 본이 되어 칭찬 듣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성장하는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교회들이 세워지는 곳마다 그들의 의롭고 선한 행위로 인해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 가운데서 본이 되야 합니다. 칭찬듣기 위한 것이 목적은 아니나, 세상 가운데서 교회는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믿음의 선한 행위가 나타나야 하는 겁니다.

    또한 자기 지경을 넘어설 수 있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여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지만,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지역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핍박이라고 하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사도들과 믿는 자들을 사방으로 흩어 버리심으로 아시아와 유럽으로 복음의 확산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초대방주교회와 성도들이 이 지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가정의 한계, 지역의 한계, 환경의 한계, 물질의 한계를 뛰어 넘어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능력있게 쓰임 받는 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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