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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6/3/27 부활과 승리와 영광

관리자 2016.03.26 12:25 조회 수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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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누가복음 24:1-12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 우리나라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 복음을 들고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님과,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셀라 목사님이 서울의 관문인 인천 제물포 항에 상륙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 천년 동안 잠들어 있던 한 민족의 영적 가슴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이 땅에 광명이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2016년 3월 27일, 오늘은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후 131번째 맞는 부활절 아침입니다.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사업장에 광명의 빛을 주시고 승리와 소망과 기쁨을 넘쳐나게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장사된 지 3일 째 되는 2000년 전 오늘 이른 새벽 무덤으로 달려갔던 여인들은 천사들로부터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는 감격스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어둡고, 침울하고, 슬퍼하던 밤은 지나고 기쁨과 승리의 새 아침이 밝아 온 것입니다. 첫 부활의 아침 그것은 승리의 아침이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외침은 실패나 좌절이나 죽음이 아닌 승리의 대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승리의 선언에 대한 표적이요 하나님의 보증인 것입니다.

 

1. 부활은 생명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아름답고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특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가장 귀하게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이 조성해 주신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 속에 들어오면서 불신과 불행의 늪에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그 불행이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게 된 것입니다. 죄는 인간에게 두 가지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그 첫째가, 육 적인 죽음이며, 둘째가 영적인 죽음입니다. 육 적인 죽음이란 인간이 노쇠하여 수명이 다하게 되면 영이 그 육체를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인간이 죄로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사는 삶입니다. 인간은 이 죽음 때문에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제물로 십자가상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 하심으로 예수 안에서 사망이 정복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생명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역사 속의 많은 성인들은 추종 자들에 의해 저마다 무덤을 자랑합니다. 중국인은 산동성에 있는 공자의 무덤을 자랑합니다. 인도인들은 석가의 무덤을 자랑합니다. 무슬림들은 그들의 성지 메카에 있는 마호메트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무덤 속에는 썩은 시체만 있고 한줌의 흙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또 그들의 무덤은 대리석이나 금은 보화로 잘 꾸며놓은 외형을 자랑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은 외형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이는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자랑입니다. 사망과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신 증거입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살아나셨습니다. 이 승리는 또한 믿는 모든 성도들의 승리가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곱 살 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그만 그 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딸을 마지막 보내는 자리에서 그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얼굴과 손을 만지면서 말합니다. "잘 가거라,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구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이 딸 아이를 신앙으로 키웠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지 7년을 너와 함께 살았지만 네가 있었기에 우리의 삶은 훨씬 소중하고 아름다웠단다. 잘 자거라. 약속하신 그 날의 아침이 되면 주님과 함께 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당장은 잠시 헤어짐의 슬픔으로 눈물을 짓고 있었지만, 부활의 소망이 있었던 이 아이의 엄마는 천국을 바라보며 사랑하던 아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부활의 소망은 너와 나 우리의 것입니다. 또한 이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이 땅 위에서의 삶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생명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힘, 생명의 힘으로 생각하고 일어나 행동으로 옮겨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부활은 진리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진리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곧 진리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놀라운 선언을 하고 계시는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역사는 진리와 비 진리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진리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다면 진리는 이 땅에 설 자리를 잃게되어, 이 세계는 비 진리와 악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고, 질서가 파괴되고, 큰 혼란으로 어지러워 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으신지 삼일만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진리가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진리를 따라 진실하고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실망하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곳입니다. 그래서 참 생명이시오, 진리이신 예수님 조차도 그 원수들의 손에 의해 죽으심을 당하셨지만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하셨으니 우리는 진리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진리 편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진리와 함께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진리가운데서 무덤을 열고 부활 하셨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전기를 비롯해 무려 1000여 가지를 발명하여 발명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에디슨은 과학적 진리를 굳게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임종을 맞이하여 "저기 저 곳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즉, 죽음 저편의 세계인 진리의 세계는 자신이 발명한 그 어떤 과학의 세계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기에 에디슨은 그 영원한 세계의 아름다움에 도취 되서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숨을 거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과학적 진리는 믿으면서 그 보다 더 확실한, 과학 위에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 진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신앙, 기독교 진리는 믿으려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진리의 최후는 항상 승리임을 믿는 성도님들이 되셔서 부활하신 주님, 예수 안에서 복된 삶을 영위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부활은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하나님 사랑의 확증으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고 로마서 5장 8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연약한 자, 소외된 자를 사랑하셨고, 인간 하나 하나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미움의 세력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하심으로 사랑이 미움보다 강함을 보여 주셨고, 사랑이 승리함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 유대인의 6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치스의 감옥에서 학살당했습니다. 그 독일의 한 감옥에서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별 밑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비록 태양빛이 우리에게 비추이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비록 사랑이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거기 진실된 사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다". 우리는 이 글에서 어두움의 절망 속에서도 그 너머에 다윗 별처럼 빛나는 승리를 바라보는 확실하고도 확신에 찬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불의와 죄와 미움이 가득한 세상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랑과 선과 의의 최후 승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승리의 보장이요, 승리의 함성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의 전하는 복음도 헛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는 더욱 불쌍한 자"라고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4-19절의 말씀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의 은혜가 없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다시 살리심으로 악보다 선이 강함을 보여 주셨고, 미움보다 사랑이 강함을 증명하셨으며, 죽음보다 생명이 강함을 가르쳐 주셨고, 비 진리보다 진리가 더 강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빈 무덤을 남겨 두시고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고 역사하십니다. 그 무엇도 예수님을 사망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세계, 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진리가 보이지 않고, 선이 보이지 않고, 사랑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궁극적으로 진리가 승리하고, 사랑이 승리하고, 생명이 사망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승리를 믿고 소망 가운데 힘 있게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승리를 믿고 언제나 진리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선의 최후 승리를 믿고 사랑과 선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역사적 사실, 이 우주적 진리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셔서 부활의 축복이 여러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하게 넘쳐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전할 메시지는 오직 "예수 다시 사셨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는 무덤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수정으로 만든 화려한 관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세기의 한 풍운아가 방부 처리되어 누워 있다고 합니다. 그의 가르침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수천만명의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수 많은 인류가 붉은 기를 달고, 가난과 부정과 부패와 더불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가 바로 공산주의를 주창했던 ‘레닌’입니다. 그의 관에는 "그는 모든 사람들, 모든 나라들,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는 세상의 구세주였다"고 씌여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지구 상에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자유를 갈망하던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의 동상은 모스크바 광장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우리 주님은 무덤에 시신으로 머물러 계셨던 것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 음부의 권세, 세상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의 말씀도 살아계셔서 죽어가는 인생들의 생각과, 정신과, 사상과,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 하고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 1:17-18). 이 부활의 아침 다시 사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활의 축복이 넘쳐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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