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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히브리서 강해 5

관리자 2017.02.15 17:35 조회 수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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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세보다 더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 3:1-19
    (1)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3:1
    (2) 사환으로서 충성을 다한 모세보다 우월하신 아들의 충성 3:2-6
    (3) 모세 때와 같이 거역하지 마라 3:7-11

7절:
    "성령이 이르신바"는 시편 95편 7-11절의 말씀의 인용으로 성령의 이르신 말씀이다. 즉 [성령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라는 의미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신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은 시편 기자의 시대 즉 다윗 왕의 때라 이해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 시편 95편은 작자에 대한 표제가 붙어 있지 않으나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 7절에서 본 시를 인용하면서 다윗의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4장 7절의 [다윗의 글에]라는 말은 다윗의 이름을 붙인 시편의 책에 관련되어 [시편의 글]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의 이와 같은 표현만 들어 시편 95편의 기록자를 다윗으로 확정하는 데는 다소 문제가 있다.

 

    "그의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그의 음성을 듣거든]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든이라 말하며 그 다음에 오는 듣는 자의 행위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 시편 기자의 권면 내용인데, 이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는 인용하여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종을 종용하고 있다.

 

8절:
    "노하심을 격동하여"라는 말은 므리바에서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와 다툰 일(민20:13)을 말함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여 주신 은혜를 잊은 채 불순종의 모습을 보이다가 하나님의 노하심을 불러왔다. [시험]이라는 말은 맛사 즉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일(출17:7, 고전10:1-13)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여 노하심을 격동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던 것을 히브리 크리스챤들에게 상기 시키고 있다. 즉, 우리는 그들처럼 그러지 말자는 말씀이다.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는 말씀 가운데서 [강퍅]이란 말은 본래 완강하고 고집한 마음을 가진 것을 의미하는데 모세 때에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좀처럼 놓아 보내지 아니하고 오랫동안 압박하고 고생을 더하므로 결국에 가서는 자기와 자기의 백성들이 더욱 무서운 재앙과 죄벌을 받게 하였던 것과 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여 출애굽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한 강퍅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9절:
    "거기서"는 아라바 광야를 말함인데, 과거 [너희 열조]는, 다르게 표현해서 다윗 왕 시대 사람들의 조상 곧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라바 광야에서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즉 하나님을 시험하였고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하나님의 권능있는 행사를 보았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는 결코 신앙적이지를 못했다. 한 두 해가 아니라 무려 40여 년간 광야 생활을 하며 보였던 이스라엘 민족의 행위는 참으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진노케 할만큼 악한 모습들이었다.

 

10절:
    "이 세대"는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의 세대를 가리킴인데 흔히 인생의 한 세대를 동양에서는 30년이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한 세기 곧 백 년을 한 세대라고 계산한다. 하나님은 그 세대를 향하여 노하셨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다는 말씀은 사람의 지식이 부족하고 신앙이 결핍되어 마귀의 끄는 대로 끌려가는 까닭에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바른 길을 찾을 줄  모르고 허황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11절: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노하여 맹세하는 것도 그 결과는 무서울 터인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나 민족에게 노하셔서 맹세하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본문은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이 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노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한 번 맹세하신 다음에는 다시 변할 길이 없다(민14:21-25, 신12:10, 히6:13-17). 

 

    (4)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3:12-19
12절:
    창세에 하나님이 처음에 지으신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후에야 비로소 살아 있는 생령이 되었다(창2:7). 그러므로 첫째 아담과 같이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악심을 품고] 이 말은 원어적인 의미로 볼 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악심과 불신앙이 그것으로 결국 이와 같은 악한 마음의 불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스스로 떨어져 나가게 만듦으로 그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악심-NIV-sinful, unbelieving).

 

13절:
    시편 95편 7절에 오늘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이라는 표현의 말은 아주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몇 십 년이라는 세월도, 몇 백 년이라는 세월도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을 모아놓아 된 기간인데, 그 오늘이라 일컫는 그 날을 매일이라는 시간대로 생각을 옮겨 한 시도 빼놓지 말고 [피차 권면]하라고 했다. [피차 권면]한다는 것은 귀중한 도덕적 교훈의 한마디다. 거기는 겸손은 있을지언정 교만은 없고, 평등주의가 있을지언정 계급주의가 없으며, 민주사상이 있을지언정 독재권력이 없으며, 사랑이 있을지언정 시기와 분쟁이 없다. 우리가 만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겸손과 사랑으로 피차 권면할 수 있으면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할 수 있다.

 

14절:
    만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은 성도들에게 좌우명이 될 만한 보배스러운 교훈의 말씀인데,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확실한 것을 견고히 잡으면, 평생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 안에서 살 수 있으나, 확실치 않은 믿음의 행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면 처음부터 그리 평탄한 성도의 삶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에베소 교회에는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하였고(계2:4), 두아디라 교회에는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하였으며(계2:25), 사데 교회에는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했고(계3:2),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하였다(계3:11). 이와 같이 확실하신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참여]라는 말을 NIV 성경에서는 [SHARE] 로 번역해 놨는데, 이 말뜻은 [나눈다] 혹은 [공유한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믿음 위에 굳건히 선 자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은혜도, 부활의 영광과 영혼의 가나안인 천국에서 안식의 축복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15절:
    본 절의 말씀은 시편 95편 78절에 있는 말씀의 인용으로 [성경에 일렀으되] 즉, 이미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인용하여 너희에게 전하는데, 그러므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즉 오늘날 너희들이 하나님의 음성 혹은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음성을 듣거든으로, 과거 너희 조상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순종하여 구원받은 백성의 특권을 잃지 말라 하심이다.

 

16-18절: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의 특징은 세 번 묻는 말과 또 그 묻는 말에 대한 묻는 형식의 답변으로 구성 되 있다는데 있다. 그 첫 번째 묻는 말은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다. 그런데 이 말씀의 본래의 의미적 해석이 필요한데, 이 말씀의 근본적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치 않고 거역한 자가 누구냐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쁜 감정을 일으킨 자 또는 격분하는 자가 누구냐]란 의미의 물음이다. 또는 번역성경이 암시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말씀을 듣고 거역함으로 하나님을 격노케 한 자가 누구냐]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어쩌면 문맥상 이와 같은 이해가 본래의 의미와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전문용어로 의문 불변사(아니냐)로 답변되고 있는데, [모세를 좇아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다. 즉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광야에까지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와 필경 멸망하게 된 것을 말함이다.

 

    두 번째 묻는 말은 [또 하나님이 40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인데 이에 따른 답변 역시 첫 번째 답변처럼 의문 불변사 형식으로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라고 답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나오기 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만들었고, 이제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또 다시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여 광야 길로 돌아 40년을 유리 방황하게 됐는데, 그 광야 40년의 세월 역시 끝없는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 시체들이 광야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말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그 장본인들이 아니냐는 뜻이다.

 

    세 번째 물음은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인데,  이 물음에 답변은 역시 의문 불변사 형식으로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까지 하신 것은 끝까지 순종치 아니한 까닭이라고 단념형식의 의문답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함으로서 유대인 크리스챤들에게 순종적 믿음을 촉구하고 있다.

 

19절:
    본 절은 3장의 결론 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대변자였던 모세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었고, 이것이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한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로 인하여 무서운 형벌을 받고 안식세계에 들어갈 약속을 잃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한 까닭이다. 이처럼 모세의 전한 말씀에 대한 불순종[믿지 않음]의 결과가 하나님의 진노요, 안식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의 박탈인데, 하물며 모세보다도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영원한 세계인 하늘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겠는가? 깊이 생각하고 경성하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세의 말을 거역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다면,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믿음을 거역한 불순종으로 일관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영원한 안식 대신에 영원한 형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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