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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6/7/17 내가 지은 인생의 집

관리자 2016.07.16 11:46 조회 수 :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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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고린도전서 3:10-15

    우리네 인생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해서 설명하는 글귀들이 참 많습니다. 성경에서도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지어야 할 인생의 집이 있습니다. 인생의 집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싫든 좋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남겨야 할 흔적이 있습니다. 이 인생의 집은 그 사람만의 독특성을 지닙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만의 고독과 싸우며 걸어가야 하고, 때로는 질병의 고통으로 인해서 몸부림 치며 걸어 가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슬픔을 안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과연 이제까지 지어온 나의 인생의 집은 어떤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인생의 집을 짓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스럽고 성령께서 거하실 만한 집을 짓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건축하면 몇 가지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건축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짓고자 하는 집의 설계 도면이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집이 들어설 터가 있어야 하고, 집을 세울 건축 재료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그 집 제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인생집 건축에 대해서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1. 내 인생집의 건축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집은 자신이 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문말씀 10절 하반 절에 보면 닦아 논 터 위에 사람들이 각각 집을 짓게 되는데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한 번 세워진 인생의 집은 다시 헐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세울 것인가 조심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집을 많이 지었어도 모래성 같은 집을 지어서는 칭찬 듣지 못하는 겁니다. 잘했다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풍파가 몰아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네 마음은 너무나도 뭐든지 쉽게 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도 쉽게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편법을 생각합니다. 집도 쉽게 짓다 보니 무너지는 것이고, 일도 쉽게 쉽게만 하려고 하다보니 부정부패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융통성 있는 것같아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처럼 불의하고 불안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무너 지게 됩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 인생의 집, 내 신앙의 집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지어야 하는 겁니다. 부모님이 내 인생 대신 살아 줄 수 있는 것 아니고, 부부사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는 개인별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는 단체 출발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개인 출발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내 인생 집의 건축자가 되어서 어떤 모양새의 집을 지어오고 있었는가 이 시점에서 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중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자신이 지은 집에 대해서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 기억하여 인생의 건축자로서 신앙 가운데 충실히 살아가심으로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우리 인생의 설계 도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야 합니다.
    설계가 잘못된 대로 집을 짓다 보면 나중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다시 다 헐어 버리던가 아니면 총체적으로 다 뜯어 고치기 전에는 제대로 된 집 나오기가 힘이 들 겁니다. 그래서 집을 짓는 건축가들은 설계 도면을 중요시 여깁니다. 또 설계 도면대로 집을 지어야 튼튼한 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설계 도면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짓기만 하면 튼튼하고 견고한 집이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 순종에 대해서 늘 강조합니다만 순종의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만 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따라 임의대로 집을 짓다가 보니 이것은 신앙의 집이 아니라 불신앙의 집이 되는 것이고, 순종의 집이 아니라 불순종의 집이 되는 것이며, 사랑의 집이 아니라 미움이 가득한 집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가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선뜻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지나놓고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지름길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거기까지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져 있지 않을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육신의 안목으로만 보려고 그러니 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남들이 볼 수 없는 축복의 길을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생의 집을 지읍시다.  

    내 생각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어야 하는 겁니다. 내 계획대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따라 살아가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길이고 그것이 축복의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을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11절)고 했습니다. 건축가들이 집을 지을 때에 중요시 여기는 것은 어디다 집을 짓느냐 하는 겁니다. 그 터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터를 잘못 잡으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반이 튼튼하지 못한 곳에 세우면 얼마가지 않아 벽에 금이 가고 조그마한 지진만 나도 무너져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고, 기가막힌 설계도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집을 세울 터가 좋지 않으면 그 집은 제대로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터 위에다 내 집을 짓고 있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경위에 자신의 집을 지으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터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라는 터 위에 집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이라고 하는 터, 어떤 사람은 물질이라고 하는 터, 명예나 자신의 외형적인 어떤 조건을 터로 삼고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을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시편 95편 1절의 말씀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고 했습니다.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위에 견고한 인생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성도 됩시다.

4.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을 재료는 신앙을 기초로 한 재료들이라야 합니다.
    집을 지을 때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지을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말씀에 보니 어떤 사람은 금으로 짓고 어떤 사람은 은으로 짓고, 어떤 사람은 보석으로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나무나 짚으로 짓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을 어떻게 해서든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중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심판 때의 심판 방법은 불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불에 다 타 버리기 때문에 세운 공력이 나타날 수 없어 결국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에 보니까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터 반석되시는 예수님 위에 우리들의 인생의 집을 말씀대로 지으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셔서 잘했다 칭찬듣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십시다.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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