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성경 아카데미

Add movie file / 동영상 추가  
본문말씀: 하박국 2:2-4                "소선지서: 나훔/하박국"

1. 나훔서
    나훔이라는 이름은 "위로"라는 의미입니다. 나훔은 유다의 적국인 앗수르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로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철저히 심판하시어 멸하실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멸망은 개인의 감정에 의한 소원이 아니라 나훔은 앗수르의 정책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만국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나훔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서두에 밝히고 있습니다.
    1. 불의를 행하는 이들을 향한 의로움으로의 전환을 바라는 강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2. 창조의 질서를 따라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3.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이 당하는 고난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4. 하나님의 뜻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이들이 느끼는 고통과,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이 당하는 충격등을 허용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거스림으로 당한 징조가 보일 때 스스로를 점검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훔 1:2

2. 하박국서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꼭 붙잡다", 혹은 "씨름하는 자"라는 의미로 봅니다. 정치적 상황으로 신 바벨론이 크게 일어나고 있을 때 앗수르가 아직 그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바벨론을 치러 갈 때 독립을 원하는 유다 왕 요시아는 므깃도에서 애굽과 전쟁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이 시기에 하박국은 어찌하여 요시아 같은 의인이 이런 슬픈 일을 당할 수 있냐고 한탄을 합니다(대하32:25, 슥12:11). 선지자는 풀리지 않는 신앙적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곧 "무자비한자들이 의인보다 부흥하고 불의한 방법이 잘되는가"하는 것입니다.

    1. 선지자의 갈등과 하나님의 대답
    "어찌하여", "어느 때까지"라고 시작되는 선지자의 질문은 탄식이며, 호소며 시대의 아픔이었습니다. 이는 선지자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갖는 갈등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훈련하시며, 연단하시고 계셨습니다.

    (1) 선지자의 첫번 째 갈등(1:2-4).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거스리는 모든 이들을 벌하시고 제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 대한 반대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을 때 선지자는 갈등합니다. 어찌 악인들을 그대로 두시는가? 오히려 의로운 사람들이 악인들 같이 고난을 당하는가?

    (2) 첫 갈등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1:5-11). 선지자로 하여금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보게 하십니다. 악인이 득세하는 것은 자기의 악으로 채우는 것을 말하고, 악인은 자기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나 교만해지고 죄를 쌓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악인의 출세가 빠른만큼 하나님의 심판도 앞당겨 질 것입니다.

    (3) 선지자의 두 번째 갈등(1:12-17).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갈등입니다.
    (4) 하나님의 대답(2:2-4). 역사의 심판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자기들의 힘을 자랑하고 의지하며 교만하여 악하게 행하는 모든 이들은 이미 정직하지 못한 자들이며, 결국 멸망 당할 것이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선언하십니다.

    2.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선언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가져 봐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표어같이 사용되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믿습니다"만은 아닙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미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신념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변치 않는 신념입니다. 창조주 이시며, 전능하시며, 공의로우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신념의 고백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선언에 들어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고백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고백한 믿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의 마음으로 어려운 시대를 신앙고백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믿음의 방법을 따라 문제를 해결하며, 믿는 자 답게 사는 존재입니다. 하박국 2:4, 히브리서 10:38-39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느끼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민족의 고난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서 갈등을 호소합니다. 그 갈등은 이전에 경험하고 알았던 하나님과는 무엇인가 다른 하나님의 모습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악인이 득세하는 것 같고, 의인이 핍박을 받는 아이러니한 세상사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갈등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믿음으로 삽니다.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에 이런 방법도 있답니다. 어린 자녀가 성장하여 차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시기가 되면 아이들과 즐겁게 놀던 아버지가 갑자기 그 아이를 들어 던져 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선답니다. 같이 신나게 놀던 아이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친밀하고 다정했던 아버지로부터 처음 당하는 배신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 어린아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과 배신감이지만 이것을 딛고 또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면 다시 냉정하게 밀쳐 버린답니다.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버지로부터의 버림 당한 어릴 적 경험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유대인들은 인간에게는 이유 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이렇게 가르쳐 준답니다.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는 아버지까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고 교육한답니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를 노래하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