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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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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누가복음 5:18-26

 

    요한복음 1장 29절 하반절의 말씀에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님을 본 세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외칩니다. 이 한 마디의 외침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이 설명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하신 말씀은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신다"는 의미를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상을 들여다 보면, 오늘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듯 보입니다. 얼마나 산다고 아끼며 사냐 말하며, 자기 인생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맛집을 찾아 다니고, 취미에 몰두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마치 죽음 뒤의 세계는 의식하지 않는 듯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을 위해 올인합니다. 사업을 위해 올인합니다. 자식들을 위해 밤잠 설쳐가며 올인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개미는 겨울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며 삽니다.

 

    특히 내세를 준비하며 오늘을 사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교훈을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누리며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편히 쉬며 먹고 마시자" 했을 때, 하나님이 "이 어리석은 부자야 오늘 밤 내가 네 생명을 취한다면 쌓아 놓은 이 모든 것들이 뉘것이 되겠느냐"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죽음이 아직은 내게서 멀다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사도행전 3장 10절이하 12절까지의 말씀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는 그 죄인들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오늘 말씀을 대언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 유월절 어린양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 12:3절에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모든 장자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어린양을 잡아 문좌우설주에 바르고 그 밤에 아무도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유월절 밤에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게 될 때에 문 좌우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건너뛰어 장자의 죽음을 면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어린양의 피가 장차 죄로 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그래서 죽음이 뛰어 넘어가게 하는 표식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전서 1:18-19에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인생들이 저들의 죄악된 행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우리를 죄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 하는 것이고, 예수를 전하라 하는 겁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 짐을 대신 담당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예수님에 대해 여러 모양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사도행전 8장32절에서는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5절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53장6절에서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피로 죄가 용서함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가운데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그런 은혜를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여야만 하고 예수만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겁니다. 예수 바르게 믿고 사는 성도 되십시다.
 
2. 중풍병자 사건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함께 봉독한 본문 누가복음 5장 18절 이하 16절까지의 말씀에 중풍병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침상에 메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고침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포인트에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그 중풍병자를 메고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에 그 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when Jesus saw their faith) 치료하셨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에게 믿음이 있든 없든 그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 사람이 치료받고 못받고는 전적으로 예수님이 하실 일이었습니다. 된다 안된다의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도가 중요한 겁니다.

 

    두번째는 이 사건이 단순히 중풍병자의 치료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3. 예수님에게는 죄를 사할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병자를 향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죄의 문제를 언급하셨을까?  원문을 보면 "αμαρτιαι-기본형은 αμαρτια"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복수격입니다. 즉 이 중풍병자의 병은 단순히 육신의 병적증세로 인해 나타난 병이 아니라 많은 죄로 인해, 그 심령이 눌려 있어서 그것이 중풍병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병이든 병의 근원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해 집니다.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의 병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죄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병이 나았느니라" 말씀하시지 않고, 먼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심으로 그 병의 근원이었던 죄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시게 된 겁니다. 마음을 짓 누르고 있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니, 질병으로부터도 자유로워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 사하실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는 말씀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항변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의 이 항변 한 마디가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답변에서도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하신 말씀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항변에 보충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고 가시는 속죄의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신앙의 유일한 대상이 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여야만 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구속주 되시는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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