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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4/16 부활의 첫 목격자

관리자 2017.04.15 11:24 조회 수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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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태복음 28:1-10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새벽 일찍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큰 지진과 함께 무덤의 돌이 옮겨지고 천사가 나타나서는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부활 사건에 대한 사복음서의 기록은 서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회의론자들은 이 기록들을 근거로 부활의 전 사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복음서의 기록들이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은 기록자들이 서로의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기록했으며, 근거 자료로 하나로 통일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록자들이 자기 의도에 따라 적합한 상황들만을 소개하여 불완전한 줄거리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건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때의 상황을 완전히 순서대로 안다고 하면 이 사복음서의 차이점은 분명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고 있는 복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부활 주일의 아침에 부활 사건의 첫 목격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안식 후 첫날 동트기 전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소식을 천사로부터 가장 먼저 들은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두어가지 사실에 주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들이 비록 부활의 첫 목격자들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부활 신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 그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마태는 그들이 무덤을 보러 간 이유를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마가는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막16: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의 장례 풍습에 따라 시신에 바르기 위한 향품을 준비해 두었고, 부활사건이 있는 그 날 새벽에 그 향품을 가지고 주님의 무덤을 찾았다고 하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또 부활에 대한 소망도 가지지 못했음을 말해 줍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라고 부활에 대한 소망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며, 최후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그러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예수님의 살아 생전에 그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것에 감사해서 이스라엘의 전통을 따라 시신에 기름이라도 발라 드리려는 소박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자 성전을 찾아 나오기는 하나 우리 심령 가운데 만일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이 여인들의 발걸음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2)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죽은 시신을 보러 가는 자가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은 그들의 마음은 이미 예수님을 망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무덤을 찾아가는 이 여인들에게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 버린 마음에는 기쁨이 머물 수 없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로 여인들 가슴속에 남아 있는 한 그들에게 기쁨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지 못하므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들의 신앙은 어려움에 부딪히면 쉽게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운 고난과 시련이 닥친다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활은 소망이며 영원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2. 이 여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된 시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1) 그 날은 안식 후 첫날이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원문적인 의미는 "안식일이 끝날 무렵"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말은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갈망의 표현이었습니다. 보고싶어도 안식일이기에 율법 신앙안에서는 그 어떤 행위도 행할 수 없어서, 안식일이 지나기만을 고대하고 기다리던 여인들은 보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을 억누루고 있다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그 이른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보고자하는 갈망의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 심령가운데 소원처럼 일렁거려야 합니다.

 

    2) 새벽 미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여인들이 어두컴컴한 때에 무덤을 찾아간다는 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무릅쓰고 무덤을 찾는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열정 때문에 가장 먼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부르는 자가 하나님의 응답의 음성을 듣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원리를 성도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복을 누리며 사는 길 또한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이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하나님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만 소유하고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찬 심령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무덤을 찾은 이 여인들에게 천사는 부활의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1) 그런데 부활의 소식을 들은 이 여인들은 무서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했습니다. 이 여인들이 무서워 한 이유는 (1) 믿음이 적은 탓이었습니다. 두려움은 불신의 소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굳건한 믿음은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2) 이성의 범주를 초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 여인들은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 재능, 지혜의 한계를 벗어난 상황에 처하는 경우 무서워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러한 이성을 초월합니다. (3)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앞에서는 인간이 무서워 할 수 밖에 없으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기쁨이요, 은혜요, 축복이 되야 합니다.

 

    2) 수직하던 자들은 두려워한 나머지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인들은 비록 무서워 하였지만 부활의 소식을 들려주는 천사들의 나타남은 기쁨이요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지키는 자, 즉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은 죽음의 공포와 절망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땅을 치고 애곡하며 공포에 떨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어떤 소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3) 천사가 전하는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는 은혜요 축복의 소식이 되야 합니다.
    천사가 전하는 말씀은 두려움이나 공포의 소식이 아니라 위로의 말씀, 기쁨의 소식이 되야 합니다. 천사를 통해 "무서워 말라"라는 위로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소식은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소식이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는 소식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는 부활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무덤을 열고 부활하셔서 천국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 주셨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 심령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이 살아나,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곱 살 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그만 그 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딸을 마지막 보내는 자리에서 그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얼굴과 손을 만지면서 말합니다. "잘 가거라,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구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이 딸 아이를 신앙으로 키웠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지 7년을 너와 함께 살았지만 네가 있었기에 우리의 삶은 훨씬 소중하고 아름다웠단다. 잘 자거라. 약속하신 그 날의 아침이 되면 주님과 함께 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당장은 잠시 헤어짐의 슬픔으로 눈물을 짓고 있었지만, 부활의 소망이 있었던 이 아이의 엄마는 천국을 바라보며 사랑하던 아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의 부활의 소망은 너와 나 우리의 것입니다. 또한 이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이 땅 위에서의 삶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과거 2000년 전 실의에 빠져 있던 제자들에게만 영향을 주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힘, 생명의 힘으로 생각하고 일어나 행동으로 옮겨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아침 예수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세상 근심, 걱정, 고통으로 마치 죽은 자와 같았던 우리의 심령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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