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 movie file / 동영상 추가 |
---|
본문말씀: 사무엘상 30:1-6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입니다.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동시에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10대 청소년의 나이(15세정도)에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2m 93cm 여섯규빗 한뼘-1규빗 약 45cm, 한뼘 약23cm)을 물매돌로 물리치고 위기에 처해 있던 나라를 구함으로 일약 대 스타가 되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다윗을 맞이하던 사람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하면서 열열히 환영을 했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 카 퍼레이드라도 벌였을 겁니다. 나라를 구한 영웅 아닙니까? 그런데 이 일로 인해서 다윗은 사울왕의 시기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수년에 걸쳐서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다윗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특단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 결심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였던 블레셋으로 망명하는 거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치적 망명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블레셋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긴 했지만, 타국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눈치밥 먹는 신세였습니다. 전쟁의 영웅이었던 다윗은 블레셋의 군대에 편입되서 전쟁터마다 나가게 됐고,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을 공격하고는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는 환심을 사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고 거짓 보고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한 번은 전쟁터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아말렉이 침공해서 다윗의 가족들과 다윗을 따르던 부하들의 가족들을 모두 사로잡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이웃 나라에 망명했던 다윗인데 가족들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역경과 죽을 고비를 넘겼던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극심한 절망감에 빠지게 됐습니다. 사로잡혀 간 가족들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 듯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원수들에 의해 사로잡혀 간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큰 슬픔과 절망 속에 떨어진 다윗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과 그 부하들은 모든 가족이 아말렉 군대에게 사로잡혀 간 사실을 확인한 후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슬피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낙심한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고 까지 했으니 다윗의 형편이 얼마나 다급해 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슬픔도 잠시뿐 이제는 자신의 측근에 의해 죽임을 당할 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살기 위해 망명의 길을 선택한 것인데 그 길은 사는 길이 아니라 죽을 길이었습니다.
이때 신앙의 사람 다윗은 자신이 사울 왕을 피해서 블레셋 땅으로 피신하여 온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자리였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신앙 하나로 살아왔던 것처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어야만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원수의 땅인 블레셋으로 피신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숱한 역경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이 도우시고 보호하셔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다윗이 이국 땅에서 이제 절망한 부하들의 손에 의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크나큰 비애를 느꼈을 것입니다.
신앙의 길이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생활에 어려움을 만나면 나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 보다가, 안되면 다른 살 길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다윗이 살기 위해 블레셋을 선택했던 것처럼, 성도들도 살기 위해서 인간적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 우리는 살 길인 줄 알고 인간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인간적 선택은 살길이 아니라 멸망의 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살 길은 어려움 중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고, 맡기고 사는데 있습니다. 다윗이 아말렉 군대에게 식구들을 다 빼앗기고 나서야 영적 각성속에 깨닫게 된 진리였습니다. 절망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 서 있습니까? 그 문제를 피해 도망치려 하지 말고, 살 길을 찾아 인간적 선택을 하는 다윗같이 사람에게 매달리는 성도가 되지 말고,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내려 놓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입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2. 절망가운데 있던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어 다시금 용기를 얻었습니다(6절 하-16절).
본문 6절에서 증거하기를 가족들을 다 잃은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치자" 함으로 큰 위기와 슬픔과 절망 속에 떨어졌던(군급-깊은 슬픔과 근심) 다윗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돌로 치려는 부하들 앞에서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었을 겁니다. 하나님 앞에 두손을 들면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바꿔 놓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다윗이 취한 다음 행동은 부하들과 어떻게 할까 의논하거나, 블레셋 왕을 찾아가 도와달라 청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다윗은 하나님의 종 제사장을 불러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입는 에봇을 가져다 달라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즉시로 응답하시기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기도가 우선입니까? 한시라도 빨리 적들이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쫓아가는 것이 우선이겠습니까? 당연히 지체없이 더 멀어지기 전에 쫓아가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다급한 와중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쫓아가면 가능하겠습니까?" 묻고 "가라 된다"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동으로 옮긴 다윗입니다. 신앙의 길은 상식의 길이 아닙니다. 신앙의 길은 탈 상식의 길입니다. 신앙의 길은 상식을 뛰어넘는 길입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그와 부하들의 가족을 사로잡아 간 자들을 뒤 쫓아 갔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행동으로 옮기게 되니 하나님은 가족들을 사로잡아 간 아말렉 사람들이 버린 병든 애굽 소년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이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망의 순간에 우리가 바라 보아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할지라도, 분초를 다투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을 찾는게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는게 우선되야 합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다급합니까? 하나님은 나보다 더 간절하게, 더 다급하게 나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3. 위기와 절망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17-30절).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아말렉 사람을 쳐서 파하고 그들의 가족은 물론 많은 전리품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오히려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 부하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구하고 전리품도 챙겨서 돌아올 때 다윗과 함께 아말렉을 치러 올라갔던 부하들이 가족들을 되 찾는데 함께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족들만 돌려주고 그 어떤 전리품도 나눠주지 말자 했습니다. 다윗을 원망하면서 가족을 찾아 나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고, 도중에 가족 찾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었지만 다윗은 자기와 함께 한 부하들에게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족들 뿐만 아니라 모든 전리품을 거두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비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들도 우리의 형제라 하며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례가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윗은 아말렉 사람으로부터 취한 전리품의 일부를 유다의 장로들에게 선물로 보냄으로 몸은 비록 블레셋 땅에 있으나 마음은 늘 조국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있음을 전할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절망감이나 환란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어떤 축복으로 변하여 오게 될지 누가 계산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내가 당하는 억울함이나, 고통이나 궁핍함이나, 문제들로 인한 근심이 "그럼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믿음의 고백을 하는 성도들에게 어떤 은혜와 축복으로 보상되어질 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음이 곤하여지고, 근심스러운 일들이 쌓여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심으로 다윗과 같이 전화위복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게 될 때, 우리의 힘이 되시는 "그"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그" 하나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날짜 |
---|---|---|
146 | 2017/12/17 후회없는 인생의 집을 짓고 있습니까? | 2017.12.16 |
145 | 2017/12/10 무너진 인생의 성벽을 재건하라 | 2017.12.09 |
144 | 2017/12/3 성찬과 주시는 은혜 | 2017.12.06 |
143 | 2017/11/26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 2017.11.25 |
142 | 2017/11/19 은혜를 아는 자가 됩시다(추수감사주일) | 2017.11.18 |
141 | 2017/11/12 신앙과 바른 봉헌 생활 | 2017.11.11 |
140 | 2017/11/5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 | 2017.11.11 |
139 | 2017/10/29 교회성장과 가정축복 | 2017.10.28 |
138 | 2017/10/22 왜 무엇때문에 사십니까? | 2017.10.21 |
137 | 2017/10/15 말씀대로 믿어 보자 | 2017.10.14 |
136 | 2017/10/8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 | 2017.10.07 |
135 | 2017/10/1 추석명절과 신앙 | 2017.09.30 |
134 | 2017/9/24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 | 2017.09.23 |
133 | 2017/9/17 국난 극복의 신앙 | 2017.09.16 |
132 | 2017/9/10 화목하게 하는 직책 | 2017.09.09 |
131 | 2017/9/3 아! 그리스도인 | 2017.09.02 |
130 | 2017/8/27 근심에서 안정된 생활로 | 2017.08.26 |
129 | 2017/8/20 최고의 행복은 어디에 | 2017.08.19 |
» | 2017/8/13 힘이 되시는 하나님 | 2017.08.12 |
127 | 2017/8/6 성공을 위한 제안들 | 2017.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