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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9/10 화목하게 하는 직책

관리자 2017.09.09 18:58 조회 수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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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고린도후서 5:16-21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는 사도뿐만 아니라 모두가 새로운 피조물이요, 하나님과 화해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도는 화해의 직책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중생한 사람, 즉 거듭난 성도를 말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죄악에 물들었던 옛 사람을 벗어 버린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화해하는 자, 사랑하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은 그러므로 이제까지 자기 중심으로 생활했던 것을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로 전환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의 천국에 들어갈 자는 먼저 율법 주의, 지상주의, 우상숭배를 비롯한 모든 죄악된 이전의 모든 냄새나는 모습들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이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교회의 원수였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아 그 율법주의 마음이 녹아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후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하여 화목케 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위로 하나님과 화목한 성도는 아래로 사람과도 화목해야 되고, 또한 화목케 하는 일을 해야 성도로서 마땅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근본 원인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크게 여기시는 죄악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 마음이 온갖 죄를 짓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먼저 화해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한 우리의  몸짓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무릎를 꿇는 겁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야 합니다. 이는 항복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세상 사람과 하나님을 화해 시켜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화해의 시작이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8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에게 "우리 이제 그만 서로 화해 하자" 손을 먼저 내민 쪽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온갖 죄악에 물든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우리의 죄악들인데, 하나님이 먼저 우리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화해의 몸짓이 하나님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과 화목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삼으신 겁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화해의 삶은 순종의 생활입니다. "아니오" 아니라 "예"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생들이 하나님앞에 "예"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신앙은 불순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신 말씀을 거역한 불순종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순종하는 성도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받는 복입니다.

 

2. 성도는 가족과 화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족간의 불화는 불행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성도이면서도 혈육과 화목한 삶을 살지 못하고 서로 원수간 같이 지낸다고 하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여라도 부부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날마다 불편한 모습으로 대하며 사는 가정이 있습니까? 부모와 자식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형제와 형제간에 화목하지 못한 가운데 사는 성도가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빠른 시간안에 서로 화해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족간에 있어서 화해의 길은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을 꺾는데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너부터 태도를 바꾸고 생활이 바뀌면이 아니라 나부터 말과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마음을 가질때 가족간의 화목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3. 성도간에 화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사람인고로 때로는 오해하기도 하고, 서운한 감정이 들때도 있습니다.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으로 인해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이 오해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간의 화목은 하나님안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다툰 사람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가서 화해한 후에 와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화해는 하나님의 축복을 여는 문이 됩니다. 성도간의 화목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용서에서 이루어 집니다. 자기 주장을 꺽을때 화해가 이루어 집니다.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위선이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곁에 있는 형제와 먼저 화목하라 하시는 겁니다.

 

4. 이웃과도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과 고립된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수도원적인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웃과 화목하고 더불어 살면서 그들에게 예수의 향기를 전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종교적 지도자들을 맹렬히 공격하셨습니다. 위선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의복에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았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신부들처럼 사람들과 자신들을 의복으로 분리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음식을 잡수셨고, 옷을 입으셨고, 동일한 집에 머무셨습니다. 고통도 함께 나누셨고, 기쁨도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웃과 화해의 삶을 사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나는 성도요 너는 아니라고 하는 구분은 결국 세상과 나를 다른 세계로 분리 시키는 결과 밖에는 주지 않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본문 19절 하반절에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화목"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살리시려 화목제물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그 말씀, 독생자를 죽이시며 죄인된 우리와 화목하시기를 원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나도 너희와 화목하고자 내 독자 예수를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으니, 너희도 서로 화목하라"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가족과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와 서로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과도 화목하셔서 날마다 예수 향기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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