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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갈라디아서 강해8

관리자 2017.10.14 21:38 조회 수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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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갈라디아서 3:15-22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주어진 약속에 대해 살펴보았고, 핵심은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으매 이것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으며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축복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약속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약속의 축복이 임하지만 약속을 버리고 율법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결국 저주밖에는 돌아갈 것이 없다.     

 

3:15-18  "율법과 약속(예수 그리스도)의 관계"
    3:15 본 절에서는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한 예를 들고 있는데, 사람들도 자기들이 한 약속은 아무나 함부로 폐하거나 더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하믈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어떠하겠는가? 영어 성경은 보다 분명한 표현법을 쓰고 있는데, 첫째로, let me take an example 이라고 표현을 해서 한 예로 사람들의 관습을 들고 있고, 둘째로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so it is in this case 라고 표현해 즉 사람들도 자신들이 세운 언약을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처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도 같은 경우로 폐할 수 없고 폐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같이 사람들끼리 세운 약속도 중요시 여기거든 하믈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은 어떠하겠느냐는 것인데 이와같이 언약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으로 사람이 무엇이관대, 율법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이 정하신 이 약속을 폐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다.

 

    3:16 이 말씀은 조심스럽게 살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여기서 먼저 지적하고 있는 "약속들"은 무엇인가? 창세기 12장과 15장 그리고 17장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신 약속으로, 1) 네게 한 후사를 주리라, 2) 너로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3) 너와 네 자손을 통해 이방이 복을 받으리라(참고, 갈 3:8), 4) 너의 후손을 통해 즉 그(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으리라(행 13:22)는 언약들이다.

 

    그런데 본 절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 모든 약속들이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만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아브라함에 관한 언급에는 문제가 없으나, "그 자손" 언급에 관한 이해가 문제가 되고 있다. 영문 성경에서는 "The Scripture does not say 'and to seeds' meaning many people, but 'and to your seed' meaning one person"이라고 번역해 놓고 있는것과 같이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의 상속자가 복수가 아닌 단수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창 13: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2:18 "또 네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헬라어 성경에서도 σπερματι(dat. singular)가 σπερμασιν(dat. plural)과 구별되게 사용되고 있는데, 그러면 도대체 이 말씀들이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 다음 구절이, "곧 그리스도라(who is Christ)",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대신해 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모든 축복의 말씀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본다면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한 자손"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약속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이 말이 맞는 해석이라면 3장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축복이 어떻게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16절 말씀의 핵심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것인데,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하신 약속으로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라 할지라도 약속 되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를 통해 아브라함과 맺으신 축복의 약속이 곧 우리의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4장 6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이었던 우리도 믿음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양자의 영)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믿음으로 의인된"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으니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하신 약속의 축복이 곧 우리의 것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3:17 본 절은 16절 말씀 언급에 대한 의미 설명이다. NIV 에서는 이 문장을 "What I mean is this:..."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는데,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이것인데..."라는 뜻이다. 도대체 바울이 말하고자 한 의미는 무엇일까? 17절 중후반 말씀이 이를 설명해 주고 있다. 바울이 유대인들이나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기억 시키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 아니라 율법이 생기기 430년 전에 아브라함과 맺으신 은혜의 언약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세운 언약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임의대로 폐기할 수 없는 것인데, 하믈며 하나님께서 직접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430년 후에 주어진 율법이 폐하거나 변경 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 바울의 강력한 주장이다.  

 

    17절에서 바울이 강조하여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약속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는데 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더욱 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διαθηκην(a covenent) προκεκυρωμενην(perf. pass. part. προκυροω-to confirm previously) υπο(후포) του θεου" 라고 기록하고 있다. 직역한다면 "하나님에 의해서 전에 정해진 한 약속을"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이 약속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성립된 언약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약속이 율법보다 앞서서 주어졌다는데 있다.

 

    3:18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말씀 가운데 문제가 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유업"이라는 단어인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κληρονομια(유업) 를(을) 영문 성경에서는 inheritance로 번역을 해 놓고 있다. 의미는 "상속"이나 "유산"이다. 한글 성경에서도 비슷하게 "유업"이라는 말로 번역해 놓고 있으나 원 의미상 무엇인가 애매한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κληρονομια 라는 단어는 물론 소유, 재산, 상속 이나 유업 등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본래의 뜻은 "구원"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즉 유업은 유업인데(상속은 상속인데) 구원의 유업(상속)을 가리키는 말이다.

 

    같은 말이 사도행전 20장 32절에서는 "기업"으로 해석되어 있고, 골로새서 3장 24절에서는 "유업"으로, 에베소서 1장 14절에서는 "기업"으로, 히브리서 9장 15절에서도 "기업"으로 각각 해석 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그 의미는 하나인데,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의미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주장은 이 구원의 유업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약속을 은혜로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는 것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브라함과 더불어 믿음안에 거하게 되면 이 은혜의 약속인 구원의 유업을 얻게 된다는 소망의 선언이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분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믿음만이 유일한 조건이 된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만일"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가정법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 문법상으로 가정법을 사용할 때는 강한 부정을 의미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데 본 절의 경우가 그러하다. 즉 "만일 그 구원의 유업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이 구원의 유업이 약속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 유업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신 것이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을 참고하면 문법적으로도 분명하게 설명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τω δε Αβρααμ δι επαγγελιαs(by means of promise, abl. of means-약속이라는 수단 또는 방법) κεχαρισται(to give graciously) ο θεοs" 직역을 하자면 "약속이라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는 의미다.

 

3:19-22  "율법을 주신 목적"
    3:19 본절 말씀에서는 율법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율법을 주신 목적이 범법함을 인하여 더하셨다고 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των παραβασεων(παραβασιs - transgression stepping over the boundary) χαριν(because of with Genitive) 라고 표현하고 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울타리를 넘어서다"라는 뜻을 지닌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시는 즉 하지 말라고 하신 일들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역할은 이와같은 "울타리" 역할을 하는것으로 누구든지 이 울타리를 넘으면 즉 율법을 범하면 죄인이 된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진 것은 "무엇이 죄인가" 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틀림없이 죽을 죄인이라는 사실만 분명해 진다.

 

    여기에 난해한 구절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율법을 주셨는데 본문에서 지적하기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이라 했다. 다시 말해서 "through angels by a mediator 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난해한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중보자는 누구인가? 다시 조심스럽게 읽어 보자. 원문 그대로 직역을 하자면 "천사들을 통해 율법을 주셨는데, 율법을 전해 준 그 천사들도 중보자에 의해 율법을 전해 주었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 중보자가 누구일까? 이 문제를 다루기전에 다른 성경 구절들을 찾아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디모데전서 2:5절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말씀하고 있고, 히브리서 12:24절에서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 말씀들이 말하고자 하는 공통분모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외에도 히브리서 8:6절과 9:15절을 보면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면 율법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천사들을 통해 이 세상에 주어졌단 말인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불완전했던 율법이 완전해 졌다. 즉 율법은 죽이는 법으로 살리는 법이 그 안에 없다. 따라서 살리는 법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는 논리다.

 

    이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주어진 것이라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은 완성되어졌다. 영문 성경에서는 "the seed had come"이라고 과거 완료형을 사용하고 있다는데 유의하자. 즉, 이 말씀은 너희 유대인들이 죽인 예수가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였고, 그 분은 이미 오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율법으로 부터 자유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게 됐다는 말씀이다. (Hellenistic Judaism - 눈으로 보고 듣고 주어진 즉 지혜와 표적에 하나님은 한분, 중보자를 통해 율법을 주심)

 

    3:20 이와같이 중보자에 의해 천사들을 통해 율법을 주셨는데 이 중보자는 한편만을 위한 중보자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즉,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는 중보자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결국 올바른 중재가 이루어 질 수 없다. 더욱 놀라운 말씀은 이와같이 중보자는 (ο-호- μεσιτηs) 양쪽을 위하고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선언이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결국 율법을 주신이도 하나님이시고, 구원케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21절의 이 율법이 결코 하나님의 약속을 거스릴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말씀이 암시하는 것은 결국 율법을 잘 안다는 유대인 자신들이 그 율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주시겠다 하신 약속을 거스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결국에는 누가 율법을 범한자들이 되는 것인가? 할례를 행하지 않는 이방인인가 아니면 약속의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인가?

 

    3:21 본절의 말씀은 19절 말씀과 이어지는 문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예수님의 오심은 율법을 폐하려 함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곧 율법을 통해서 무엇이 죄인지는 깨닫고 알게 됐지만 21절 말씀이 이야기 하듯이 율법을 통해서는 살게하는 의가 주어질 수 없으니 불완전한 율법이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율법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으니 이 율법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결코 거스릴 수 없다.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다시 하나님께서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이라는 가정법 문장을 쓰고 있다. 만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살게하는 율법이었다면 아브라함의 의가 반드시 믿음을 통하지 않고 율법을 통해 주어졌을 것이라 한다. 그런데 "만일"이라는 가정법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율법에는 살리는 능이 없다. 죄지은 사람들을 살리는 율법이 아니라 22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죄를 죄라 정죄함으로 죄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 지은 죄로 율법을 통해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살리는 법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3:22 왜 율법을 통해 생명을 주시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죄아래 가두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21절이 지적하고 있듯이 1) 율법에는 살리는 능이 없고, 2) 22절에서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 위함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으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율법인가? 결코 생명을 주지 않는 율법을 통해서는 주어질 수가 없고, 생명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근거로 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구원으로 가는 길이시고, 말씀이 되시는 진리이시고,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시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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