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수요강단

수요강단-거라사 사건의 교훈

관리자 2017.11.11 10:12 조회 수 : 32

Add movie file / 동영상 추가  

2017/9/27    
본문말씀: 마가복음 5:1-15(20)

 

    예수님이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 서편에서 동편으로 건너가 거라사 지방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주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시게 되는데, 이 사람을 고치는 기적의 현장과 사건을 통해 거라사 지방에서 일어나게 된 일들에 대해서 본문은 증거함으로 오늘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1. 성경은 귀신 들린 사람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앞에 나와 선 귀신들린 사람은 사람의 신분에서 살지 못하고 마치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거하는 거처가 무덤 사이였고,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는 자학 행위를 일삼았으며,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돼지무리 속에서 돼지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시니 자신은 무리가 많은 연고로 "군대"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는 귀신이 한둘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군대라 부를 정도로 많은 귀신이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여러 귀신이 들어갔던 터라 이 사람의 형편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죄는 어떤 면에서 군대라 할 수 있습니다. 분노, 악의, 무절제, 살인, 훼방, 불결, 신실하지 못한 것, 부정하게 사는 것, 위선된 모습, 거짓말, 속임수, 외식, 배은망덕, 불순종, 조급함, 불만, 시기, 질투, 탐욕, 거짓맹세, 더러운 말, 형식주의, 미신, 우상숭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경건을 경멸하는 행위, 무신론 등 그 수가 많기 때문에 죄를 가히 군대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죄는 이 세상에서 고통의 원인이고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죄가 머무는 곳마다 오염되고 하나님과 원수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마치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았던 것처럼, 죄많은 우리의 모습을 주님앞에 내어 놓고 회개함으로 씻음받아 참된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은 이 귀신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해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되 있지는 않지만 마치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주시기 위해, 유다지방으로 가실 때에 사람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를 지나가시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 주님은 이 불쌍한 사람을 만나사 고처 주시기 위해 거라사 지방에 가시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신 주님은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의 명령에 벌벌 떨던 귀신은 애걸하며 그 지방에서 쫓어내지 말기를 구하고 돼지에게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간청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허락하셔서 이 사람은 온전하여지고 대신에 돼지 2천 마리가 물에 빠져 몰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에게는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에 돼지 2천마리를 희생하고 이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군대 귀신들렸던 사람은 이제 온전하여 져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 15절에 보니까 귀신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져 주님앞에 앉아 있었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귀신들렸던 사람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 것처럼, 성도들도 성도라는 이름의 본래의 위치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의 본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의 신분을 되찾게 될 때 우리의 삶에 참된 은혜와 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기적의 현장에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은 인본주의 그 자체였습니다.
    거라사인들은 귀신들렸던 사람이 온전해졌으니, 위험거리가 제거되었음으로 크게 기뻐해야 할 일인데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주님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에게서 떠나가기를 간청하게 됩니다. 왜 이런 반응들을 보이게 됐을까요? 크게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첫째로, 이들이 주님을 두려워 하게 된 것은 저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물에 빠져 죽은 돼지 떼로 인한 두려움이 저들을 놀라게 하였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 예수라는 사람이 우리와 함께 있다가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겠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들은 사람의 건전한 인격 보다는 돼지를 더 귀중하게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거라사 지방 백성들은 생명의 주님을 그들이 머물고 있는 지방에서 떠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근본적으로 저들을 죄로 부터 구속하실 생명의 주님을 버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물질을 위해 예수 복음을 버린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한 미련한 자들입니다. 마치 예전 19세기에 복음을 들고 우리나라 서해안에 상륙했던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은 배척하고 그들에게서 감자만 받았던 서해안 사람들과도 같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만일 이와 같은 놀라운 사건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게 된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반응으로 주님앞에 서게 될거 같습니까? 나의 죄가 드러날까봐 주님을 거부하는 자가 되지는 않을지, 아니면 예수 복음으로 인해 물질적 손해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해서 손익계산을 신속하게 따져보고 주님을 저버리는 거라사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신앙의 양심으로 우리 자신을 진단해봐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비록 물질 세계에 살아도 물질보다 생명이 더 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물질속에 사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물질보다 더 귀한 복음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질 않겠습니까? 오늘도 세상 가운데서 물질의 지배를 받고, 온갖 죄악의 올무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일지라도, 우리에게 찾아오신 생명의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생명의 주님을 만나뵙고, 예수 안에서 죄로부터, 모든 물질의 욕심으로 부터 자유케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