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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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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느헤미야 2:1-5

 

    본문의 말씀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서의 기록자 느혜미야는 술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북 이스라엘왕국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남 유다왕국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여 대부분의 남북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야 제국에 전쟁 노예로 흡수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즉 페르시아시대였고, 아닥사스다 1세가 통치하던 기간이었습니다. 주전 442년경입니다.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유다민족을 해방시킨 이후, 스룹바벨의 통솔하에 1차 귀환이 이뤄졌고, 에스라에 의해서 2차 귀환, 그리고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3차 귀환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듯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던것처럼 때로는 우리 인생의 성벽이 무너질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우리의 삶의 성벽들이 자기 태만에 의해서 폐허가 되는 때가 자주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무너진 인생의 성벽, 폐허가 된 삶의 성벽들을 다시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기도의 사람이 되야 합니다.
    문제를 사람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먼저 하나님께 아뢰는 신앙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불에 타 파괴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느헤미야는 왕에게로 달려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을 재건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슬피울며 하나님앞에 엎드렸습니다. 1장 4절에서 느헤미야 선지자는 수 일동안 "하나님앞에 금식하며 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1장 6절에서는 "주야로 기도하오며...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기도하는 느헤미야 선지자의 간절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도 느헤미야는 바로 일을 진행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2장 11절 말씀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일에..."라는 말씀이 있는데, 3일간 느헤미야 선지자는 무엇을 했을거 같습니까? 분명 하나님께 기도하는 느헤미야였을 겁니다. 그런 까닭에 2:12절에서 "하나님이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화하였더라" 했습니다. 진실한 성도의 특징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기도는 나로 하여금 기다리게 만듭니다. 기도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기도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나의 믿음에 생명력을 더해 줍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다.

 

2. 소원을 갖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처음 느헤미야의 이야기가 시작된 때는 '기슬르월(12)' 이라고 했는데, 2장의 새로운 사건의 전개는 '니산월(4)' 에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하나님앞에 소원을 갖고 기다렸던 기간이 대충 따져봐도 무려 4-5개월이 지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4-5개월 후인 어느날 느헤미야 선지자에게 왕 앞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이르기를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2:2) 네 마음을 근심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왕앞에 고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21장 1절의 말씀에서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보'란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 마른 땅에 공급하는 관개용 수로를 말합니다. 즉 '물을 품고 있는 관개용 수로처럼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소원을 갖되 구체적이고 계획적이며 간절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왕이 선지자에게 무엇으로 그렇게 근심하느냐, 내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느냐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간절한 소원을 이야기 합니다. 2장 5절에서 느헤미야는 왕에게 고하기를 "나를...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허락해 달라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2장 6절에서  "내가 기한을 정하고..." 허락만 해 주신다면 성을 증건하고 돌아오겠노라고 소원을 이야기 합니다. 놀라운 말 아닙니까?  4개월동안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왕으로부터 허락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2장 7절 이하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강 서편 총독에게...조서를 내려" 무사히 통과하게...해 달라고 계획속에 있었던 생각을 말합니다. 2장 8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왕의 삼림 감독에게도 조서를 내려..." 재목을 쓸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왕에게 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든 구체적인 계획도 제대로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음" 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몹시 기분이 상합니다. 무조건 믿습니다 하고 밀어 부치는 신앙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마음의 자세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하더라도 구체적으로 계획적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인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느헤미야는 도착하자 마자 무너진 성벽을 쌓겠다고 무계획적으로 무모하게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2장 12절에 보니 두어사람과 함께 한밤중에 나가 성벽 상태가 어떤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차근차근 어떻게 쌓을 것인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성벽 재건 역사가 단 52일만이라고 하는 아주 짧은 기간에 끝났다고 했습니다. 계획없이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백성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방해꾼들에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재료들은 어디서 구할 것인지...등등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렇게 하리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여 소원하는 일을 빠른 시일안에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줄 아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인내의 사람이 되야 합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은 인내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인내의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만 신뢰하는 신앙을 요구합니다. 구십구퍼센트의 신뢰가 아니라 온전한 백퍼센트의 신뢰를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방인들이 비웃을 때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2:20)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가 "저들이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비웃을 때에도 묵묵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건축에 매진했습니다. 이웃 이방인들의 끊임없는 방해가 있었으나 느헤미야와 함께 한 이들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신뢰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만 않으면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게 바뀐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내부에도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습니다.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은데 우리에겐 힘이 부족하니 성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4:10)했습니다. 곡식과 물질이 다 떨어져 형제간에 서로 자식들을 종으로 팔아 식물을 사는 처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5:1-). 자연적으로 느헤미야를 비방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6:13).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던 일을 중단함이 없이 계속했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을 가지고 걸어갈 때 때로는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비웃는 무리도 있을 것이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우리의 일을 막아서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믿음으로 행하던 일을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편이 되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집니다.

 

4.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모이기에 힘쓰는 사람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고,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형을 피해 도망을 가던 야곱도 도망길에 있었던 루스 들판에서 하나님께 돌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세태가 점점 하나님 앞에 모이는 일에 소홀해 지고, 개인주의 사회로 변한다 할지라도, 성도의 본분은 모여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데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성도입니다. 기도와 기다림은 항상 병행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을 동원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어떻게 해야 되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기다리는 동안 세울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고 기다리되 계획을 세우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성도를 사랑하시고 행복해 하십니다.

 

    소원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응답받고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성도입니다. 인내의 신앙으로 목표를 이루기 까지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성도입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을 재건하는데 단 52일만에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무너진 성 건축을 마치게 된 것은 자기들의 희망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무너져 내린 우리의 인생 성벽을 재건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폐허가 된 우리 가정을 새로이 세워 주길 원하십니다. 파산 지경에 이른 우리의 사업을 다시 일으켜 주기를 원하십니다.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신앙 성벽을 든든하게 세워 주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성도 되셔서 주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교회와 나아가서는 세워진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의 가정과 사업장위에 넘처나게 되시기를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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