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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8/2/4 보호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8.02.04 09:00 조회 수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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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이사야서 31:1-9

 

    누군가를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속성이 혼자서는 살 수 없도록 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지하며 살되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처음에는 부모님을 의지하여 성장해 나갑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친구들을 사귀며 의지합니다. 장성한 다음에는 결혼을 해서 서로의 배우자를 의지하며 삽니다. 그러다가 나이들면 나이든 부모세대는 자녀들을 의지해서 살게 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인생여정이고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일까요? 사는 삶의 이와 같은 순서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고 고아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늙었으나 의지하고 살 자녀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의지할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다고 해도,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의지하며 사는 세상이 이제는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세상입니다. 누군가를 의지하며 사는 존재이나, 의지하고자 하는 인생 자체가 의지할 대상이 못됨을 현실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반복된 주제로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새가 그 새끼를 날개로 보호하듯 지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 하십니다(1-3절).
    성경에서 말씀하는 애굽은 오늘날의 이집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집트는 세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리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 할지라도 이집트를 의지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번 반복 되었습니다. 애굽의 말들, 병거와 마병들이 강한 것 같지만 저들은 육체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본문은 애굽을 육체로 하나님은 영적 존재로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3절 상반절에서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애굽은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을 상징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육체를 신뢰하며 세상을 의지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 지혜로운척 판단하는 상황을 하나님의 지혜로 다스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나 세상을 바랄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님 예수께 모든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대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세상입니다. 밤사이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모르는 세상 가운데서 매일 매일을 불안속에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살 길을 찾아 자신들의 방법대로 살아가고 있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십니다.

 

2. 하나님이 보호하시리라 하십니다(4-5절).
    하나님은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을 보호하신다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보호하실까요?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능력일까요? 우리 인생들은 그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어진 성경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능력은 젊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다고 했습니다. 사자의 으르렁 거리는 그 위엄과 두려움 없는 용기를 성경은 표현하면서 여호와의 능력은 그와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용기로서 택하신 백성들을 도우십니다. 사자와 같은 능력으로 택하신 성도들을 위해 세상과 싸워 이기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경은 여호와의 보호하심은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다고 했습니다. 5절 말씀에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어미새가 새끼를 보호할 때 어떻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성도들을 도우시고 구원하실 때 어미새의 세심함과 강렬함의 모습으로 도우시리라, 구원하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서 새 잡으러 다녀본 추억들이 한두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새중에서도 기들이기 쉬운 새가 때까지라는 샙니다. 중학생시절 건대부속 중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뒤가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봄만 되면 새집 꺼내러 다니느라고 온 산을 다 헤메고 다녔는데, 때까치라는 새는 모성애가 무척 강한 새입니다. 새집을 꺼내려 나무에 올라가면 둥우리를 떠나지 않고 필사적으로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에게 덤벼듭니다. 어느때는 마치 전투기가 기총사격하듯 위에서부터 다이빙하며 달려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세가 얼마나 무섭던지 쪼일까봐 기겁을 하고 나무에서 내려오곤 했는데, 하나님은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새처럼 예루살렘을, 성도들을 호위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그렇게 보호하시리라 했습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6-9절).
    하나님이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단 한가지 조건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라 하십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본문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데,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리"라 했습니다. 어찌 은이나 금으로 만든 우상 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은 돌을 다듬어 우상을 만들고, 흙을 빚어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서 복을 빌고 있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고자 하는 그 날에 이러한 것들 부터 던져 버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던져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신해서 의지하고자 했던 것들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해 왔고, 또 의지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며, 영이 아니라 육체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썩어질 것들"이라 하시며 그러한 것들을 던져 버리고 돌아서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은 범죄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멸망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죄를 뉘우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섬기던 우상을 버리지 못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게 된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들의 허물을 가리워 주시고, 용서하시며, 도우시고, 축복하신다는 말씀을 듣고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하고 의심이 생겨서 도리어 겁을 먹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들은 말씀을 의심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은혜에 따라 오래 참으시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도우시리라 하십니다. 세상이 불안합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성도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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