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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8/6/17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안에

관리자 2018.06.20 21:23 조회 수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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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전도서 2:12-26

 

    인생의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돈이 많으면 근심걱정 사라지고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집안이 좋은데서 태어나면 행복할까요? 많이 배우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배우자 만나가정을 이루고 좋은 직장 들어가면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솔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날로 강성해 지는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무진 애를 쓴 사람이었습니다. 행복해 지려고 별의별것을 다 해 본 솔로몬이었습니다. 한번은 학문을 배우고 연구함으로 만족을 찾으려 하고, 감각적 쾌락을 통하여 만족해 보려던 솔로몬이 이 둘을 절충하면 얼마나 더 행복해 질까 싶어 시도를 해 봤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잠시나마 솔로몬은 만족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오래가질 못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의 만족은 영원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솔로몬 스스로가 세상 학문과 세상 쾌락이라고 하는 중간길에서 지치고 허덕이며, 인생에 대해서 다시 재 조명해 보다가 결론에 가서는 인생 자체가 덧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솔로몬은 인생 허무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전도서 전반에 걸쳐 솔로몬이 반복해서 외친 말이 "헛되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다 헛되더라" 이것이 인생 말년에 솔로몬이 깨달은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안에 진짜 행복이 있었다는 것을 뒤 늦게서야 깨달은 솔로몬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인생고백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도 솔로몬이 찾은 행복으로 가는 진리가 뭔지를 발견하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우매자보다는 그래도 지혜자가 우월하다고 말합니다(12-15절).
    전도서를 통해서 솔로몬왕은 지혜의 헛됨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래도 망령된 우매함보다는 지혜가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못한 지혜라도 우매자 보다는 뭔가 다르고 나은 법입니다. 마치 어두움 보다는 빛이 더 좋듯이 어리석음보다는 지혜 있는 삶이 좋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지혜자는 삶의 좌우를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살아가는 우매자에 비하면 지혜자의 삶이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만족도 잠시뿐 솔로몬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지혜에 대해서도 환멸을 느끼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외치기를 "지혜를 따라 사는 것도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는 잠언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혜와는 뭔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잠언서에서는 세상을 살아갈 때 지혜를 얻으라 했고, 총명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 지혜가 어떤 지혜냐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잠언서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 지혜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이 잠언서의 지혜설교 내용입니다. 그런데 잠언서와 동일한 기록자인 솔로몬이 전도서에 와서는 "지혜도 헛되다" 말하고 있는 것은 전도서가 말하고 있는 지혜는 "세상 지혜를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 학문을 통해 얻는 지혜의 헛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매자 보다는 지혜자가 낫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의 영원성이 좌우되고, 결과의 선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다. 악한 지혜는 사람을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죄악된 지혜는 자신의 삶을 죄악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가고 맙니다. 소위 말할때에 사기치는 사람은 사기치는 일에는 천재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 부분의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토대로 해서 살펴 볼때에 이것은 참 지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참 지혜는 시작도 좋고 과정도 올바르며, 결과는 더욱 좋은 것을 말합니다. 그 지혜의 시작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지혜와 지식 가운데서 만족을 찾으려 했던 솔로몬은 학자들을 모으고, 책들을 연구해서 지혜의 삶을 추구해 보기는 했지만 오히려 세상 지식의 한계성과 죄악성으로 인해서 실망하고 인생의 환멸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지혜는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하나님을 떠난 공부는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고, 때로는 사람을 해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지식도 하나님안에서 얻어야 합니다. 공부도 신앙이 기초가 된 상태에서 할 때에 그 지식은 여러사람을 살리고 유익케 하는 창조적인 지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먼저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그 안에 참된 진리가 있습니다. 사는 길이 있습니다. 승리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죽음앞에서는 누구나 동일하다고 말합니다(16-23).
    본문 말씀중 16-2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솔로몬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어리석음보다 낫다고 하더라도 죽음 앞에 이르게 되면 지혜나 어리석음이나 다 동일하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아무리 지혜자가 지혜의 성을 높이 쌓아도 우매자와 함께 무덤의 망각지대로 가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은 솔로몬은 몸부림 치면서 그러므로 "세상 지혜도 죽음앞에서는 나에게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과 영혼의 만족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는구나" 절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혜가 있다고 하는 자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우매자도 죽음 앞에서는 지혜자와 똑같이 어두움의 그늘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현실은 지혜의 왕이라 하는 솔로몬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허무를 외치며, 세상 쾌락을 따라 사는 것도 헛된 것이고, 물질을 많이 쌓아 두고 그 가운데서 만족을 얻으려는 삶도 헛된 것이며, 취미를 통해 얻어지는 기쁨도 일시적인 것이고, "따라서 세상 것으로 부터는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허무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믿는 자들이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믿음이 있는 경건한 자의 죽음과 사악한 죄인의 죽음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진리입니다. 솔로몬은 죽음을 육체의 죽음만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의 의미를 육체의 죽음을 떠나서 "하나님과의 분리"를 원칙적인 죽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에 대해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1) 육체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다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나 육신적 죽음은 필연입니다. (2) 영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영혼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 신앙이 없이 죽은 영혼들이 맛볼 죽음의 형벌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이 죽음의 강을 건너지 않습니다. 그리고 (3)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이 죽음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영원한 형벌, 즉 지옥의 형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결론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죽음의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절망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진 삶은 영원한 멸망의 죽음앞에서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죽는 죽음은 영원한 절망적 죽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

 

3. 참된 행복은 하나님안에 있음을 말합니다(24-26절).
    드디어 솔로몬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평생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떠난 가운데 쾌락과 인간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결국 인간은 공수래공수거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오히려 인간 고통만 가중 시킬뿐 영원한 기쁨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것 보다도 더욱 중요한 발견은 "모든 인생의 기쁨과 참 행복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는 진리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인생의 허무에 대해 한탄하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불신앙적인 삶에 대해 해 아래서 행한 이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이었다고 하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복은 세상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라고 하는 고백으로 그의 인생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있습니다.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은 정말 절대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거나 부족할 때마다 백성들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광야길을 가는 모세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해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주시는 하나님을 알고부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달라, 마실 물을 달라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 마시는 것도, 먹는 것도 그 원천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장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다 해도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된다고 하는 것이 모세의 믿음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솔로몬은 그의 인생 말년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 이제 보니 모든 인생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아웅다웅 매달린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 학문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인생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돈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기 원하십니까? 권력안에 인생의 참 행복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취미나, 오락에안에 인생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본문의 10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솔로몬은 자기 눈에 좋은 것 안해 본 것이 없고, 자기가 기뻐하는 일 이루지 못한 것이 없었는데, 그리고 그 때에는 그것이 자기가 누리는 복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11절에 가서 그런데 알고보니 그 모든 수고가 해 아래서 바람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과 일반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에게 당부하는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안에 있다" "평생을 찾아 헤매이던 행복은 처음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구나" 솔로몬이 마지막에 내린 결론입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참된 기쁨도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참된 만족도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 행복을 잃지 않기 위해 신앙위에 바로 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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