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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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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미가서 1:8-16                               찬송: 384/382

 

    어느 시대건 시대가 바라는 인물상이 따로 있습니다. 요즘같이 혼란하고 질서가 파괴된 사회에는 뭔가 힘이있고, 강한 지도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한 때라고 여겨집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그때 그때에 필요로 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오늘날 이처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혼탁한 사회속에 이시대가 바라는 기독교인상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절대 신앙과 정의로운 성도가 필요한 때인줄로 압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성도상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상고 하겠습니다.

 

1. 도움자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는 성도상이 확립될 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여러 지형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지형 이름들마다 지닌 의미는 모두가 도움과 의지함에 관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이는 세상 그 어느것도 우리의 진정한 도움자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요즘 대선주자들이 서로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데, 이는 서로가 도움이 되고자 노리는 정책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모습은 세상 정치나, 세상 풍조에 밀려 이리 저리 흔들 거리는 신앙자태가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유일무이의 도움자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사회건 성도가 신앙으로 바로 서 있으면 그 사회 문제가 없어집니다. 문제는 성도의 신앙줏대가 흔들 거리기 때문에 사회가 흔들 거리고, 결국 한 국가가 흔들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도움자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고 그 은혜 가운데 승리하시는 복된 구역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죄에 대해서는 우리 심령속에 애곡하고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민감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에 대한 불감증은 한 개인만을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와 나아가서는 한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한 나라를 볼때 그 나라가 장래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은 경제력이나 정치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는 경제적으로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 할지라도 도덕성이 살아 있으면 그 나라 반드시 일어서고 잘사는 나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경제력으로 세계를 흔드는 힘을 지녔다 할지라도 가정과 사회와 나라안에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죄악이 관영한 사회가 되었다면 그 나라 오래지 않아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이는 역사가 그렇게 증명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는 죄에 대해서 민감하여 우리 심령속에서부터 죄에 대한 애통함과 돌아서고자 하는 회개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 성도 되어 주시는 축복 누리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자녀를 믿음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성숙한 신앙적 부모가 되야 합니다
    오늘 본문중 16절에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이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기뻐하던 자식이 결국 부모에게 수치가 된다는 말씀인데, 이처럼 귀한 자식들이 부모에게 수치스러움이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는 자녀들에게 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저 오냐 오냐 해 줄줄만 알았지 어떤 것이 옳고 그른것인지 매를 들어서라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부모들 가운데 자식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해서 교회가자는 말 함부로 못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되게 하려 한다면 말씀과 믿음으로 바르게 양육하는 신앙의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학문 아무리 많이 가르쳐 봐야 자기 머리만 커져서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자식으로 키우게 됩니다. 통제력을 잃은 교육은 자녀들의 장래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 점을 성도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잠언서에서는 자녀들 교육에 대해서 엄격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성교육에 모든 초점을 마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어려서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신앙교육은 늙어서도 떠나지 않게 된다 했는데, 무엇보다도 우리 성도님들은 자녀들의 장래를 걱정할진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으로 양육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소망과 기쁨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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