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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히브리서 강해 17

관리자 2017.02.15 16:22 조회 수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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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의(17)

 

3) 생활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13:1-19


    (1) 형제간에 서로 사랑할 것 13:1-6

1절: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히브리인들이 당시에도 형제를 사랑하였으나 형제 사랑하는 것을 그치지 말고 장래에도 영원까지 계속하라고 권면한다.

 

2절: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손님을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은 아브라함의 행한 일과(창18:1-22) 그 조카 롯의 한 일을(창19:1-11) 가리키는 말씀인데, 그러므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했다.

 

3절:
    자기도 갇힌 자들과 함께 갇힌 것으로 여기라는 것은 체휼하라는 말씀이며(히4:15, 10:34),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것은 자기가 신체를 가졌는데 남에게 학대를 받으면 아프고 괴로운 것을 느끼는 것처럼 다른 형제의 학대받는 것을 동정하고 체휼하라는 것이다.

 

4절: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라는 말씀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혼인을 주장하셨은즉(창2:21-25) 인간 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인데,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혼인의 약속이 바르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는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일이 된다.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번역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처음 번역에서는 [침소를 더럽다]고 하지 말라 하였던 것인데 개역에서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로 고쳐 번역하였다. (1) 처음 번역대로는 당시에 남녀의 성생활을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결혼생활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딤전4:3)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이다. (2) 그러나 개역대로 생각하면 침소는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된 정당한 부부간에 순결하고 정절이 있는 성생활하는 곳인데 거기서 그와 반대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한 말씀은 그만큼 무겁게 경고하는 말씀이다. 음행과 간음을 굳이 분간하자면 음행은 더러운 성적 행동의 총칭이요 간음은 남녀가 뜻이 맞아 상합한 것을 가리킨다.

 

5절: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는 말씀은 경제문제에 관한 교훈으로 욕심을 경계하시는 말씀인데, 예수께서도 거기에 대한 교훈을 주셨고(마6:24-34, 눅12:13-34) 바울도 종종 권면하였다(딤전3:3, 6:7-8, 빌4:11, 골3:25).

 

6절:
    구약에서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신31:6, 수1:5)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 것인데, 본 절에서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한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도움자 되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즉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신뢰함으로 담대해지는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시27:1, 118:6) 이해할 수 있다.

 

    (2) 복음의 일꾼에 대한 사랑 13:7-17
7절: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일러주고 [형제 자매들을 인도하던 자들] 곧 사도나 선생들을 (1) [생각하며] (2)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3)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권면하였다.

 

8절:
    본 절은 그리스도의 (1) 영원하시고, (2) 변치 아니하시는 것을 주장하는 유명한 표제라고 할 수 있는데,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9절:
    [다른 교훈]은 복음이 원수되는 이단사상을 가리킨 것으로 디모데전서 1장 3절과 6장 3절에서도 언급되어 [여러 가지]가 있다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할수 있고 식물로써 좌우할 것이 아니라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물질적 식물을 가지고 사람을 끌기도 하고 끌리기도 하는 일이 없지 않다고 개탄하는 뜻으로 말한 것 같다.

 

10절:
    [우리에게 제단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제를 드린 십자가를 가리킨 것이요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 것이다.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인 즉 그들은 땅위에 있는 성전에서 제단 위에 드린 보통 제물은 음식으로 취하였지만(고전10:18, 레7:15-18) 신약에 있는 제단 위에 있는 제물 곧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참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십자가의 제단이 있고 십자가 위에는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셔서 제물로 드린 바가 되었는데,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바 되었다(요6:53, 고전10:16-21). 그러나 구약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씩 7월 10일에 드리는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을 수 없었는데, (레6:30, 16:27) 죄를 위하여 보통 드리는 제물은 제사장들이 응식으로 먹었거니와(레6:25-29) 특별히 속죄하기 위하여 드리는 속죄 제물은 그 전부를 불에 사르는 법이었으므로 먹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예수의 살과 피도 그들은 먹을 권리가 없다.

 

11절:
    유대인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일인 7월 10일에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린다. 이 희생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리는 속죄제의 모형이요 그림자요 예표다(히2:17, 4:14-16, 5:1-10, 8장, 9장, 10:1-18).

 

12절: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은 골고다로 나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받으심을 말함인데 부활하심으로 속죄사업을 완성하셨다.

 

13절:
    예수가 성안에서 심문과 능욕을 당하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시며 영문 밖에 있는 골고다로 가셨은즉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들도 예수의 잡히심과 정죄받으심과 같이 받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듯이 나아가야 한다. [능욕]이란 말은 부끄러움이란 말과 비슷한 말로 십자가는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수치는 십자가의 영광으로 변하여 그 가치는 전환되었다.

 

14절: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는 땅 위의 생활을 가리킨 것으로 현상 세계이니만큼 영구한 도성이 있을리 없다. [오직 장차 올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로 인류사회의 최후이상세계에서 이루어진다

 

15절: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란 말씀을 생각하면 [예수로 말미암아]란 것은 우리가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지마는 자기의 명의나 공로로는 감히 기도할 수 없느니만큼 예수의 명의와 공로으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항상]이란 말은 언제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찬송하는 제사를 의미한다. 만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찬미를 드리면 그보다 더 낫고 더 아름다운 제사는 없을 것이다. 찬미의 제사를 정의하여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표현하였다.

 

16절: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는 행위의 열매다. [선을 행함]이란 말을 [인자]라고 옮긴 사람도 있고, [자선]이라고  옮긴 사람도 있는데, [구제]하는 일과 관련되는 말이다. [입술의 열매]가 되는 찬미의 제사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찬송하는 제사로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사이며, 행위의 열매가 되는 구제하는 제사는 사람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제사로 하나님의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사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이므로 교리의 근거도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든 제사는 예수의 십자가에 집결되어 속죄제를 완성한다.

 

17절:
    인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며 [근심으로 하게 말라]하였는데, [순종]하란 것은 그들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요 [복종]이란 말은 좀더 강한 말인데 지도자의 시키는 것이 내 마음에 꼭 맞지 않더라도 자기를 억제하고 그 지도에 굴복하라는 것이다.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한다]는 것은 교회 지도자는 성도들의 영혼을 바로 인도하고 구원 얻게 하기 위하여 자기가 경성한다는 의미다. [경성한다]는 것은 목자가 양들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과 같이 항상 생각하고 살펴보고 가르치며 위하여 기도하고 권면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 같이]한다는 것은 빚진 자에게 대한 보증인의 책임과 같이 성도들의 빚진 것을 지도자인 자기가 대신 회계할 의무가 있는 줄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심정이요 책임감이다.

 

    (3) 기도에 나타나는 사랑 13:18-19
18절:
    편지 끝에 와서 문안을 전하게 되었는데 피차에 위하여 기도하자고 하는 부탁을 겸하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였다. 선행과 선한 양심은 관계가 깊은 것으로 선한 일은 [선한 양심]에서 나타나고 선한 양심이 있기 때문에 [선하게 행하려]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이 말과 같이 우리도 이따금 자기 양심대로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는 마음이 나는 것을 느끼고서는 마음속에 선한 양심이 있어 성령이 계신 줄 알아 하나님께 감사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확신이 있어 피차에 위해 기도하자고 담대하게 청하였다.

 

19절:
    이 말씀을 볼 때에는 히브리서 기자와 편지를 받는 히브리인과는 과거에 친밀한 교제가 있었고 또 얼마 되지 아니하여 서로 만나기를 약속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한 것을 보면 기자가 편지받는 히브리인에게 전에 같이 있었고, 또 가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추측하기는 기자가 감옥에 갇혀 있지도 않은 듯 하다.

 

    5. 고별 축도와 마지막 권면 13:20-25
20-21절: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하는 목사를 목자라고 칭하는 일이 있으므로 예수를 [큰 목자]라고 구별하였다.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으셨다]는 말씀은 히브리서의 중요한 논제인 예수의 드린 속죄제는 단 한 번으로 창세이래의 모든 제사장들의 희생을 드린 속죄제와 세상 끝 날까지의 많은 성도들의 드리는 기도들을 집대성하신 속죄제로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히10:29, 눅19:11).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부활을 가리킨 것으로 만일 부활이 없으면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으므로 부활은 구주의 극히 필요한 조건이요,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신앙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6장 2절과 13장 20절 밖에는 부활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 없기는 하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하여 모든 성도에게 확신하는 조건으로 되어 있었다. 이는 히브리서의 주요 논제가 예수의 한 번 죽으심이 모든 제사와 기도를 완성한 것으로 논증하는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22-23절:
    히브리서에 디모데에 관한 말이 여기 나왔기 때문에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람]은 바울이나 바울의 친구이거나 바울의 가까운 제자일 것으로 믿게 된다. 디모데가 옥에 갇혔던 것은 여기서 명확하게 언급을 하고 있지는 하지만 무슨 이유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갇혔는지는 밝힐 수 없다.

 

24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는 히브리인 교회의 목사인줄로 짐작할 수 있겠으나 이름이 무엇인지 조사할 수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 편지를 받는 교회의 인도자이었고 기자의 문안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란 말을 가지고서는 편지  이가 누구인지 편지 받는 자들이 어디 있는지는 분간할 수 없다.

 

25절: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앞장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믿음에 대하여 열정으로 권면한 말씀에 비교한다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축도는 간단한 축도로써 위대한 히브리서, 보배로운 교리서의 마지막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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