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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히브리서 강해 13

관리자 2017.02.15 17:18 조회 수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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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소와 제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9:1-28

 

    1) 세상에 있는 성소 9:1-10

1절:
    옛 언약 혹은 첫 언약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 있었고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고 거기서 봉사하는 레위 지파에 소속된 이스라엘인이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새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고 거기서 봉사하는 성도인 그리스도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2절:
    첫 언약에 관한 성소에는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것을 성소라 일컫는데 성소 안에 있는 등대는 불을 켜서 성소를 밝혀 제사를 드리기에 편리케 한 것이요, 상은 진설하는 떡을 차려 놓는 곳이요, 진설병은 상위에 떡 열두 개를 진열한 것인데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처음 익은 열매로 바친 곡식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렸다가 제사장들의 응식으로 제공되었다.

 

3-4절: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는데 지성소에는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다고 하였다. 성소는 많은 제사장들 중에서 제비를 뽑아 번갈아 들어가 섬기는 곳이지만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매년에 한 번씩 들어가 속죄제를 드리는 곳이다.

 

    [금 향로]란 언급에 있어서 집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구약 성경에는 금 향로라는 말이 없고[향단]이란 말만 있는데 금으로 쌌고 금테를 둘렀기 때문에 금 향로라고 기록한 듯 하다. 향로는 계시록에서는 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언약궤는 법궤를 가리킨 것인데 그 안에 있는 금 항아리는 만나를 기념으로 담아 넣은 그릇으로 생명양식의 상징이요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 말씀의 실천실행으로 주어지는 생명력을 상징한 것인데, 죽어 말라 버린 나무 지팡이에 생명력이 주어져 싹을 내고 꽃을 피우듯 죄로 인해 죽을 인생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인해 살게 되는 소망을 말해준다. [언약의 비석들]은 십계명을 새긴 비석 두 개를 가리키는 말로 하나님의 율법을 표시한 비석이다. 총괄적으로 지성소는 전부 하나님의 말씀에 비유한 것이므로 기독교의 진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5절: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소와 속죄소 위에 놓여 있는 그룹들은 다 하나님의 내리시는 은혜와 영광을 상징한 것이다. 그룹은 좌우에 둘이 서로 마주 서서 있는 모양새인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낱낱이 다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6-7절:
    6절은 2절의 말씀을 설명하고 7절은 3-4절을 설명한 것인데 특별히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첫 장막인 성소와 둘째 장막인 지성소에 들어가 봉사하는 일을 해석하는 말씀이다. 특히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없이는 아니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은혜를 입을 수 없다. 즉 [일 년 일차씩]은 그리스도의 단번을 의미한 것이요 [피없이는 아니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뜻한 표현이다.

 

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위에 올라가 계시고 성령이 강림하셔서 교회가 설립된 후에 누구든지 교회에 들어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침례를 받아 거듭난 후에야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난다. 이런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때까지는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이라고 하였다.

 

9절:
    이 첫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요] 또 그림자이기 때문에 실체이신 그리스도는 장막의 완성자요 세상 죄를 청산하여 없이 하려 오신 분이시다. 때문에 [여기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땅에 있는 성소에서 봉사하는 것은 예표와 모형이 되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도 아직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것은 결론적으로 불신앙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는 오직 실체이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서만 성소로 들어갈 수 있다.

 

10절:
    신약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모든 제도를 완전히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임시의 [육체의 예법만] 되고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것은 실효도 없는 번거롭고 까다로운 예절만 되고 말았는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런 의식을 행하고 얻는 안심과 위로는 순전히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양심상으로 온전하게 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2) 하늘에 있는 지성소 9:11-15

11절:
    하늘에 있는 진짜 지성소 즉 집대성적 지성소에는 참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 즉 성소에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으로 활동하였다.

 

12절: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 피를 가지시고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셨지만 결코 보통 대제사장과 같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셨다. 다시 말해서 아론의 반차를 따라 된 제사장들은 일회적인 제물로 제사를 드렸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속죄 제물로 자신을 드려 영원한 제물 되게 하셨고, 따라서 그의 속죄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 가셨]다.

 

13-14절:
    구약 율법에 의하면 염소와 황소의 피와(레16장) 암 송아지를 불사른 재는(민19:1-10) 부정한 것을 깨끗이 하는 표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일회적인 의미를 지닌 완전치 못한 짐승의 재로도 부정한 자에게 뿌려 [거룩하게]하는데, 그렇다면 [하물며]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성도들의 부정한 행실을 깨끗하게 못할 것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냐고 반어적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는 은혜에 대한 당연성을 전하고 있다.

 

15절:
    [이를 인하여] 즉 정결케 함과 다르게 표현해서 [죄를 속하]시려 [죽으사] [그는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셨는데,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량 할만한 능력이 만일 첫 언약의 중보 노릇을 한 모세에게 있었더면 다시 새 언약을 필요로 할 것이 아니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시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롬8:28-30) 즉 성도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하셨다. 모세나 아론이나 아론의 자손들은 다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예표요 그림자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니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는데(롬8:28-30), 하나님께서 옛날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부르시며 구원하시고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다.

 

    3) 유언과 죽음과 피 9:16-22

16-17절:
    언약이란 말과 유언이란 말은 뜻이 가깝다고는 할 수 있으나 꼭 같지는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히브리어는 언약이라는 뜻을 지닌 [베리트              ]로 사용됐는데, 이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사실  [쉰데케            ]이나 70인역은 이를 모두 [유언] 이라는 뜻이 더 강한 [디아데케               ]로 번역했다. 유언도 일종의 약속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유언은 유언자가 죽은 후에야 그 효력이 발생한다는데 있어서 언약 혹은 약속과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18-19절:
    그 말이야 어찌 번역 되었든 약속이 약속되는 데는 반드시 피가 있어야 한다. 모세가 처음 언약에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선포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림으로 정결의식을 행하게 되었고, 그리함으로 언약이 확증되었다. [모세가 율법대로] 이행했다 함은 구약에 기록된 대로 이행되었음을 가리킴이다(레14:4-7, 민19:6-17).

 

20절: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고 한 말씀은 출애굽기 24장 8절에 의거한 말씀으로, 예수께서 새 언약을 세우시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는데(마26:28) 예수께서 흘리신 희생의 피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다.

 

21절: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그릇에 뿌린]것은 구약 여러 곳에서(출29:12,36, 레8:15,19, 16:14-16, 대하29:22) 언급되고 있는데, 모세가 율법대로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정하게 한 것처럼 [또 이와 같이]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도 뿌려 정결케 하였다.

 

22절: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율법을 좇아 희생의 피의 필요를 역설하면서(레17:11)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사람들의 죄를 씻는데 절대적인 것을 밝히되 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다고 못을 박고 있다. 즉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흘림이 없었다면 인류의 죄 사함도 없다는 말씀으로 해석 이해됨이 옳다.

 

    4) 그리스도의 이상적 봉사 9:23-28

23절:
    하나님은 하늘 위에 있는 실체를 잠깐 모세에게 보이시면서 삼가 산 위에서 본대로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이렇게 만든 모형은 짐승의 피로써 깨끗이 할 수 있으나, 하늘 위에 있는 그 본 것을 즉 실체를 모형과 같이 땅 위에 있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는 깨끗이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그런 일시적인 짐승의 피보다 더 좋은 제물이 있어야 했는데,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고 하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복음적 설명이다.

 

24절:
    모든 그림자와 같은 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신 실체, 곧 참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실]리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레위지파 자손으로 나실 능력이 없어서 유다지파의 자손으로 나신 것이 아니다. 그림자와 같은 땅의 성소에 들어가셔야 할 이유가 없으시므로 레위인이 되지 않으셨다. 또 그리스도는 참 지성소인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좌정하셔서 이상적 제물인 자기의 피를 가지시고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25절:
    세상에 있는 대제사장은 해마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매번 다른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고 그 이듬해에는 또 다른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 짐승의 피는 완전한 속죄의 피가 되지 못하였고, 그 피로 죄 속함을 받는 사람은 모두 불완전하고 부족하여서 거듭되는 죄악 가운데서 살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영원히 살 수 없으므로 그렇게 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또 만족하시며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으시다.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셨다.

 

26절:
    사람 중에는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따라서 속죄의 제사는 필연적이었다. 그 수요를 충족시키자면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사장들도 많아져야 했고, 희생의 제사도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져야만 했다. [그리하면] 만일 그 때에 그림자와 같은 제사장이 없고 그림자와 같은 제물이 없고 그리스도가 매번 속죄해 주신다 할 것이면 그리스도는 [창조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인데,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의 모든 그림자와 같은 속죄제를 한 몸에 집대성적으로 속죄의 성과를 거두시기 위하여 [세상 끝에] 즉 말세에 나타나셔서 단번에 자기의 몸을 드리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까지 막혔던 것을 헐기 위하여 자기 몸으로 장막을 삼으셔서 아래 위 두 조각으로 찢으심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의 취하신 이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준비해 놓으신 최고 최후의 이상적 방법이 아닐 수 없다.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한 번 출생한 사람은 반드시 사망하게 마련이다. 만일 세상에 한 번 났던 사람은 반드시 한 번 죽는 것이 확실한 사실이라면 또한 확실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죽은 [후에는 심판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의지에 대한 자유(혹은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긍정하면 의지자유에(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에 대해)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28절:
    본 절에 있어서 상반 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신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심인데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고, 하반 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는 내용으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하기 위하심임을 증거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는 자들을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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