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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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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야고보서 4:11-12

    자기도 허물이 많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피차 허물과 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면 서로 죄를 용서하고 허물은 덮어 주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는 본문의 교훈은 대단히 귀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차에 비방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본문의 말씀을 통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성도는 믿음으로 된 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야고보는 서로 비방하는 자들을 형제라고 부름으로써 모든 성도는 서로 밀접한 형제 관계에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한 아버지로부터 피를 나누어 받은 형제가 서로 다투고 허물을 들추어낸다면 서로 수치요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이듯이 성도가 서로 잘못을 비방하는 것은 곧 자기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세상에서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끊임없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한 형제가 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자녀된 도리를 다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헐뜯고 비방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고 쓰리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성도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형제가 미워도 아버지를 공경하는 아들은 형제를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않듯이 성도들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다른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2. 우리는 다 허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7:1)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실수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실수 없이 살기를 노력해도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 세상을 죄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따라서 형제를 비방하는 자는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겠다고 달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겁니다. 우리는 형제를 비방하기에 앞서 자기의 허물을 돌아볼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는 남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향해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본문 11절 상반절에서 훈계하고 있습니다.

3. 재판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가운데 12절 상반절에서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고 말씀하시며, 그 입법자와 재판자 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오직 하나이신 재판자가 되십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서는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라고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아무런 흠도 없고 티도 없이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핍박자들을 향해 아무런 비난 없이 그 심판을 하나님께 부탁하셨음을 성경은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의 말씀은 성도들이 왜 형제의 잘못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좋은 답을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원수 갚는 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아무리 원한이 깊더라도 직접 형제를 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자기를 원수로 여기고 찾아다니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를 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모든 인간사를 판단할 수 있는 재판관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헤아리는 대로 우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몇몇 가르침은 마지막 날의 심판이 "행한 대로 보응"이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따라서 성도가 형제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하고 죄를 묻고 비난하고 보복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철저히 우리의 죄를 묻고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본문 12절 하반절에서 야고보는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질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한 심판받기를 원한다면 성도들은 형제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와 허물을 책망받기 싫은 성도들이 있다면 형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 주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원리에 입각해서 단언적으로 말하기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4,15)고 했습니다. 미움이나 비난이 아니라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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