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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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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태복음 13:31-35

 

    함께 봉독한 본문 내용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가지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천국에 관한 겨자씨의 비유 말씀이고, 둘째는 역시 천국에 관한 그러나 이번엔 누룩의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는 우리에게 외적인 변화와 내적인 변화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비유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무엇인지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천국에 관한 겨자씨의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겨자는 배추과의 일년생 또는 이년생 풀로, 약 1m 정도까지 자라는데, 그 씨는 맵고 향기로워서 양념과 약재로 쓰이고,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비유를 보면 문법적으로 볼 때 비교급이 사용 되었습니다. 즉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은 씨"라는 말과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라는 말로 비교 표현되었습니다. 무엇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씨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인 겨자씨를 들어서 천국에 빗대어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것일까요?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으로 묘사될 만큼 아주 작은 것이 특징적입니다. 그런데 작은 것도 작은 것이지만, 그 작은 씨앗을 그것도 "한 알을 심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씨가 가장 작은 씨인 반면에 일단 싹을 티우고 자라나게 되면 모든 채소류 보다 훨씬커져서 보통 1미터 정도까지 크게 자라는데, 특히 팔레스틴지방에서는 약 3미터이상 자라나 마치 나무와 같아 보일 정도로 크고 무성해 진다고 합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천국의 확장성입니다. 겨자씨가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에는 그 나라 백성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잘것 없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설사 한 알의 겨자씨라 할지라도 다 자라면 마치 나무처럼 커져서 많은 새들이 깃들일 정도까지 되는 것처럼, 보잘것 없을 정도로 시작한 천국 복음의 역사는 점차 급속도로 확장되어 종국에는 수 많은 영혼들이 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를 영적인 의미로 해석을 하자면 이는 교회의 외적인 성장변화, 즉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시작되어진 천국 복음은 어느새인가 모든 무리들 가운데 퍼져서 확장되어진 외적인 변화를 가져와 수 많은 영혼들이 거하는 처소가 될 것을 말씀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비추어서 오늘날의 교회는 당연히 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외적인 변화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첫째가 양적인 변화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는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확장 되어야만 합니다. 두번째 의미의 변화는 영향력적인 측면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 가운데서 성도들을 "방안의 빛"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개인 가정의 소금"이라고 하지를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태워서 세상을 밝게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희생을 의미합니다. 예수 복음안에서는 자기 희생이 따르지 않고는 변화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습니다. 소금은 녹아야 제 맛을 낼 수 있는 겁니다. 이 또한 자기 희생을 의미합니다.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사용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양적인 변화 뿐만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적인 변화도 있어야 합니다. 양적 질적 변화가 없는 교회는 생명력이 없는 교회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님들이 출석하시는 이 초대방주교회는 성장해야만 한다는 명령입니다. 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남여 선교회를 비롯해서 주일학교, 학생회, 성가대등 각 기관내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즉 성장해야 합니다. 각 코이노니아도 변화가 일어나 양적 확장과 질적인 변화에 따른 헌신의 모습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작디 작은 한 알의 겨자씨가 되어서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수 많은 새들이 깃들이게 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 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헌신자가 되야 합니다.

 

2. 천국에 관한 누룩의 비유는 또 무엇을 말씀하심일까요?
    예수님께서 겨자씨의 비유를 마치신 다음에는 설명하실 겨를도 없이 곧 바로 또다시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볼 것 같으면 "가루 서말과 적은 양의 누룩"이라고 하는 비교급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루 서말에 비교해서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그 누룩이 들어가기만 하면 들어간 그 전체를 부풀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누룩에 해당되는 헬라어 "주메-ζυμη-효모,효소"는 빵을 만들 때 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거나 술을 만들 때 알콜 성분을 발생케 하는 발효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누룩의 비유적 의미는 "부풀게 하거나 점진적인 내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작용"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누룩의 비유는 앞에서 언급한 겨자씨 비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겨자씨 비유가 천국의 외적 확장 및 성장을 상징"한 반면 "누룩의 비유는 내적 변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 내적인 변화를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째, 내면의 질적인 변화입니다. 거칠기만 했던 밀가루도 누룩이 들어가서 부풀게 하면 부드러워집니다.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겁니다. 성도님들도 빵을 먹어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같은 밀가루라도 그냥 생 밀가루 반죽으로 빵을 만들면 말 그대로 개떡이 됩니다. 그러나 그 밀가루안에 누룩을 넣고 부풀게 한 다음에 빵을 만들면 속속들이 부풀어서 부드러워 먹기도 좋고 맛있는 빵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가 교회안에서도 또 성도들의 심령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성도들의 내면 생활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거칠고 난폭하기만 했던 마음이 부드러워 져야 합니다. 시기심과 미움으로 가득찼던 마음이 사랑으로 바뀌어 져야 합니다. 욕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주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이 되야 합니다. 저주하던 마음이 변화되어 용서하는 마음이 되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의 능력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야 하는 겁니다.

 

    두번째 의미는 내적으로 영향을 주는 변화입니다. 마치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온 가루에 영향을 주어서 부풀게 한 것처럼 세상을 부풀게 만들어야 합니다. 즉 나 한 사람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 시켜 나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야 하는 겁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부풀게 하는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가 있겠어" 할지 모르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변화되어진 나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변화 시켜 나가는 능력입니다. 그게 회복되어야 할 성도의 본 모습입니다.

 

    누룩이 가루를 부풀게 하려면 어떻게 되야 합니까? 먼저 가루속에 잘 섞여 들어가야 합니다. 겉 돌아서는 누룩의 역할을 다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가루속에서 먼저 자신이 녹아져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다"하신 말씀처럼, 썪어질 때 열매를 맺는 법이고, 녹아질 때 제 맛을 내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자신의 형태는 변하지 않으면서 상대방만 변하기를 바라고, 주변이 변화 되기만을 바라고 기다린다면 변화의 역사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각자의 삶에 있어서 누룩과 같은 영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권하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새로워 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된 성도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내립니다. 성도님들이 출석하시는 초대방주교회는 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장해야만 합니다. 남여 선교회를 비롯해서 주일학교, 학생회, 성가대등 각 기관내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각 코이노니아도 변화가 일어나 양적 확장과 질적인 변화에 따른 헌신의 모습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작디 작은 한 알의 겨자씨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앞장 서시는 성도님들이 되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도님들의 내면 생활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거칠고 난폭하기만 했던 마음이 부드러워 져야 합니다. 시기심과 미움으로 가득찼던 마음이 사랑으로 바뀌어 져야 합니다. 욕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베풀고 나누는 마음이 되야 합니다. 저주하던 마음이 변화되어 용서하는 마음이 되야 합니다. 또한 내적으로 영향을 주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나 한 사람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 시켜 나가야 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부풀게 하는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게 성도가 갖추어야 할 모습이고, 그것이 예수의 능력이며,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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