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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6/4 내 눈이 바람을 보면

관리자 2017.06.03 15:03 조회 수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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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태복음 14:22-33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이 사건의 이야기는 주일학교에서 참 많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이 말씀을 들을 때면 그 때 그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마치 내가 베드로가 된 양 짜릿한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바다 위를 걷는 것 상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흥분되고 가슴 벅찬 경험입니까?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절대위기 속에 예수님의 손을 잡고 극적으로 일렁이는 파도 위를 걸어 배로 올라서는 모습을 상상할라치면 내가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양 그렇게 가슴 뿌듯하니 흥분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살면서 육신의 눈을 가지고 많은 것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봐서는 안될 것을 볼 때가 있고, 어느 때는 꼭 봐야 되는 것을 지나치며 살 때도 있습니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봄으로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죄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 분들의 눈은 어디로 향해 있습니까? 세상 풍랑입니까? 예수님이십니까?

 

1. 바람이 불어 풍랑이 이는 것은 자연 현상입니다.
    아무리 잔잔한 바다라 할지라도 작게 일렁이는 풍랑조차 없는 바다는 없습니다. 심지어 그리 넓지 않은 강에서도 우리는 약한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됐든 강이 됐든 일렁이는 물결과 파도가 무서워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강으로 나가지 못하는 어부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물론 바람에도 강한 바람이 있고, 순풍이 있습니다. 일렁이는 파도에도 큰 파도가 있고, 작은 파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저들의 직업이 어부였던 점을 감안해 볼 때 작은 바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왔던 어부 제자들이 힘들어 할 정도의 바람이었고, 파도였다면 상당히 거센 바람이었고, 거친 파도였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센 바람과 파도였다 할지라도 그 바람과 파도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 있습니다.

 

    파도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큰 파도를 기다립니다. 큰 파도는 우리를 더 큰 세상 더 넓은 바다로 인도해 줍니다. 큰 물고기는 육지 가까운 곳에는 없습니다. 큰 물고기를 잡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파도와 바람을 가르고 먼 바다까지 나가야 합니다.

 

    인생 풍랑이 일어날 때 그 풍랑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풍랑 속에는 고난이 있지만, 성공도 숨겨져 있습니다. 인생 풍랑 속에는 이전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축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탓하지 말고 그 풍랑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렁이는 파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파도를 두려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생속에 일렁이는 시련의 풍랑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의 풍랑을 두려움으로 대하고 있는 자신의 불신앙적인 태도가 문제입니다. 인생의 파도를 더 큰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2. 눈이 바람과 파도에 머물러 있으면 두려워집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 가는 사탄의 도구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고, 파도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믿음은 곤두박질을 쳐 불신으로 인한 두려움이 밀려 들어오게 됐고, 풍랑 속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풍파를 보면 좌절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보면 마음은 근심으로 어두워지게 되 있고, 그 근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좌절감이라고 하는 구렁텅이로 잡아 끌어 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풍랑 속에서 인생을 비관하게 되고, 결국에는 실패자가 되 버리고 맙니다.

 

    풍랑은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두려움만 생깁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보면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오게 되 있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몰라 두려움만 생기게 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려움은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실수는 바람을 봤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그의 눈을 돌렸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면 세상이 보입니다. 세상이 보이는 순간 우리는 세파에 휘말려 빠져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렁이는 파도 저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능력이요, 축복이며 성공입니다. 예수님 안에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파도를 잠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파도와 바람을 잔잔케 하실 뿐만 아니라 정복하고 다스릴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로 세상 풍랑을 잠재우며 승리의 삶을 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어떤 상황속에서든 예수님의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
    불신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손을 내미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내미시는 주님의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세상 줄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 설사 우리의 두 발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손을 붙드는 자는 살게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시련이라고 하는 파도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 어디 있습니까? 세상 풍파로 인해 마음에 상처 한 두 가지씩 간직하지 않은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옛 말에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베드로는 불신으로 인해 그의 두 발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됐지만, 그 위기 속에서도 그에게 내미는 예수님의 손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손을 붙듦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이 성공했다 실패했다 하는데 있지도 않습니다. 내가 헤어 나오기 어려운 수렁에 빠져 있다는 그 자체도 오늘 말씀의 핵심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내가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내가 오늘 누구의 손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데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생김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의지하면 배신으로 인한 실망과 좌절 밖에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일렁이는 세상 풍파 속에서도,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어떤 처지에 있든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실패를 맛 보았든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런 것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다만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주님이 내미시는 손을 잡는 용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의 문제 중심에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영접할 수 있는 신앙의 용기를 주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 분들에게 기대하고 계십니다. 주님만 바라봅시다. 주님의 손을 붙들고 살아가십시다. 거기에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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