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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7/16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관리자 2017.07.15 13:37 조회 수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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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로마서 8:5-8

 

    소속이라고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되 있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나눌 본문의 말씀은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육신의 일만 좇아 다니게 되고 결국 육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면 당연히 영의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의 자아 존재 가치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수준을 말해줍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자신이 육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주님의 날입니다. 전국에 있는 교회들마다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 성도님들에게 어리석은 듯 보이는 질문하나 던지려 합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배를 관람하고 있습니까? 예배의 동참자입니까? 아니면 예배의 구경꾼입니까? 예배를 드린 사람에게는 인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니 인격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1. 육신을 따라 사는 또는 육에 속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특징은 종일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는데 있습니다. 자기 관심분야에 집중되는 생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예배 드리러 나와 앉아 있어도 머리 속에는 자기 관심분야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얼굴과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얼굴만 뜯어 봅니다. 무엇을 입었는지에 집중합니다. 메이커인지 비메이커인지 단번에 스캔해 버리고 맙니다. 어디가 예쁘고 미운지 어디를 고치고 고치지 않았는지 그것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뭘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나, 이걸 하면 얼마를 벌까, 어떻게 해야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 머리속에는 돈 버는 생각으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권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모든 관계를 권력관계로 파악합니다. 누가 힘 있는 실세인가, 누구편에 서야 유리한가, 내가 붙들고 있는 줄이 제대로 된 줄인가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가 그러한 계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모두 육신의 일만 생각하는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육의 생각은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둔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집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기준이어서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보든 자기 중심적으로 비판하고 판단하고 비교합니다. 이렇듯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자기 자신에게 중독된 사람들의 특징은 모든 관계와 관심의 중심에 자기가 놓여야만 만족해 하고 안심합니다. 그래서 만일 하고 있는 모든 일의 중심에 자신이 놓여있지 않으면 불안해 하거나 화를 내거나 파괴적으로 변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는 것도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는 한 방편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날 까봐,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까봐 늘 불안해 하고 불평하고 항상 갈등과 시비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 육에 속한 육의 일만 좇는 사람의 결국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6절 상반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만 중심이 되어 살고자 하는 것은 사는 생각이 아니라 죽는 생각이요, 발전이 아닌 퇴보, 퇴락, 쇄퇴의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이 육에 속한 삶을 사는 사람은 설사 믿는 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자기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오래 있어도 예수님안에 있지는 않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 자신의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불신앙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자기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려고 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또한 자기 힘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불안과 불평, 불만, 비교가 곧 죽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 영을 좇는 또는 영에 속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래전 신학생 시절 워치만 리가 쓴 "영에 속한 사람"이란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시리즈로 나와 있는 책이었는데, 당시 신학생들이라면 필수처럼 읽었던 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었습니다. 본문은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 한 문장의 말씀이 영에 속한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영에 속한 성령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집중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나, 어디를 보고 계시나, 나는 과연 하나님의 편에 서 있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습니다. 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내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내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을까 복된 고민을 합니다. 영의 사람은 그야말로 마음에 하나님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평안합니다. 갈등과 번민이 없습니다. 아니 갈등과 번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갈등과 번민 때문에 마음의 평강을 잃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빛으로 계시기 때문에 어둠이 틈 탈 수 없습니다. 물론 영의 사람이라고 해서 이 세상과 무관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문제를 만나고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 속한 사람은 문제 뒤에 계신 주님의 섭리하심을 바라보며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생명력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영에 속한 사람들을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평강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설사 기대한 대로 모든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심에 오히려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위기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주님과 동행하고자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3.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삽니다.
    무엇을 생각하든 생각이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고 이끌게 되 있습니다. 세상에 보면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으로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이끄시는 분이 성령님이고 그분에게 자신의 생각을 맡겨 드리면 더 이상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영에 속한 성령의 사람이란 성령님이 내 생각의 방향을 육신의 일에서 영적인 일로 바르게 전환시키신 그대로 살고자 몸부림 치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육신의 일에 사로잡혀 있었던 내 생각의 방향을 바꿔 주십니다. 기존의 육에 속했던 내 생각들을 갈아 엎으시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고자 달음질 하던 삶의 방향을 틀어 영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살아가게 힘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람이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요? 먼저 기도하게 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오히려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의 사람이 되면 자신을 낮출 줄 알게 됩니다. 내가 점점 더 작아지고 낮아지며 겸손해집니다. 비로소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일생 너그럽게 베풀며 갈등과 다툼을 은혜로 잠잠케 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의 사람이 되면 진정성을 지닌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결코 앞뒤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환경이 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므로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의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육에 속한 사람이십니까? 육에 속한 사람들은 점점 더 교만해지고 갈등하게 되고 불안해 하고 속이게 되고 근심하게 됩니다. 안그런 체하고 살려니 갈수록 더 힘듭니다. 얼마 가지 않아 폭발하고 맙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성령의 사람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애속에 이런저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에 나와 있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맺히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ο δε καρποs του Πνευματοs εστιν" 이라고 되 있습니다. 즉 성령의 열매는(be 동사 εστιν 역시 단수인 is) 아홉가지로 표현되 있으나 하나인 nine in one 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영에 속한 성령의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또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해서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성도는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격이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닮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고. 예수님 안에 들어감으로 자신의 자아가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이란 더 이상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 수 없게 된 성령의 사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우리에게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을 따라 살라고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13세기 중반 당시 교황이었던 인노켄티우스 4세에게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있었는데, 오늘날 교회는 금과 은은 있으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영에 속한 성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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