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주일예배 말씀

Add movie file / 동영상 추가  

본문말씀: 마태복음 21:1-9 

 

    오늘은 예수님께서 3년간 행하시던 전도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주일을 일주일 남겨 놓고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신 날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종려 주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던 사람들이 종려 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종려 주일로 이름이 붙여져 지켜 오게 된 것입니다. 또한 고난주간의 첫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오늘 예루살렘 성에 입성 하심으로 고난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과연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 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떤 중요성이 있는것일까요? 단지 행사로만 지켜져도 될 그런 날일까요? 말씀을 통하여 깊이 상고하는 시간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의 입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수 천년 전통에 의하면 이것은 왕이 대관식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행하는 예식이었습니다.

 

    나귀를 타셨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겸손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본문 5절은 구약성경 스가랴서 9장9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이미 예수님의 탄생 수백 년 전에 장차 오실 메시아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것을 예언해 놓고 있었습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찾아 오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한 없으신 겸손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나귀는 전쟁터에서 장수들이 타는 말과는 다릅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입성은 전쟁이 아닌 세상의 평화를 주시기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우리에게 세 가지의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는데, 첫째, 예수님은 승리의 왕으로 입성 하셨습니다. 둘째, 평강의 왕으로 입성 하셨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예수님은 왕 중 왕 즉 만왕의 왕으로 입성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호산나"의 주인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 하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께서 감람산을 시작으로 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수 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외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호산나"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의 근본적인 뜻은 "우리를 지금 구원하소서"(save us now)입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때 "호산나"만 외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폈다는 것은 "절대복종"을 의미합니다.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 절대 복종 하겠습니다. 왕으로 섬기고 모시겠습니다. 이런 뜻으로 옷을 벗어 길에 펴게 된 겁니다. 또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왕을 맞이하는 풍습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모든 원수를 물리치기 위해 들어오시는 개선 장군이라는 말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대와 흥분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하심을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오늘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영접했던 동일 인물들이 닷새 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외치며 열렬히 환영하던 그들이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오실 메시아의 사역을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 민족을 외국의 속박에서 구원해 줄 정치적인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예수님은 무저항 주의자였습니다. 비폭력 주의자였습니다. 대항하고 쳐부숴 주실 줄 알았던 원수 로마인들을 용서하라 가르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원수를 용서할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예수님의 메시지를 거부했습니다.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실망이 변하여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곧 흥분으로 그들을 몰아 결국 "호산나"찬송하면서 우리 구세주라고 환영하던 그 입으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게 된 겁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영접하고 믿어 왔는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혹여 예수님을 정치수단으로 믿어 오지는 않았는가? 사회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바꾸는 삶을 살지는 않았는가? 사업성공의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가정행복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희생양으로 영접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외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예루살렘 입성은 십자가를 예고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전주곡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유월절 양의 역할입니다. 유월절의 유래에 대해서 잘들 아실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의 이집트인 애굽에서 탈출하게 된 날을 가리켜서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광복절과 같은 날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이라는 단어의 뜻은 "뛰어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죽음의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뛰어넘어 살리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무 집이나 다 살려 주셨던 것은 아닙니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흔적이 있는 집만 장자를 죽이지 않고 뛰어 넘어가 살려 주셨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희생의 죽임을 당했던 양을 가리켜서 유월절 희생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주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신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주님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수백 년 전에 오실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사53:5)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입성 행사를 마치신 다음에 본격적으로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담대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면서 장차 닥칠 십자가의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신앙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길, 가시밭길과 같은 고난의 길을 우리도 묵묵히 따라갈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이 사건을 통해 부활의 승리 이전에 겟세마네 승리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복음 전파 사역을 하시기 이전에 광야에서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기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신 후에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3년의 세월이 흐르고 마지막 모든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께 십자가의 희생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는 마지막 유월절 양의 희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서 마지막 만찬을 드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해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라 부탁하시고, 예수님 자신은 더 멀찍이 떨어져 바위 앞에 엎드려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기도 드립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임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을 앞에 두시고 하나님께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도 세상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 달라고 인간의 고뇌를 나타내 주시고 있는 겁니다. 어찌나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성경말씀에 보니까 그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러나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는 한마디로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상에 달려 돌아가시는 마지막 유월절 양이 되 주셨습니다. 이 겟세마네 기도의 승리가 없이는 십자가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큰 시험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했던 예수님은 비로소 죽음의 길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최후의 승리의 길임을 알고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십자가의 승리로 이어지게 되었고, 십자가의 승리는 부활의 승리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기도 생활입니다. 평탄할 때에도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힘이 들고 고난이 닥칠 때에는 더욱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시험 중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2000년전 오늘을 시작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표하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고난의 시작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줄 아는 믿음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 또한 지고 묵묵히 주님 가신 발자취를 따라 걸어갈 줄 아는 성도님들의 생활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신앙 안에 예루살렘 입성같은 승리의 환호가 없으면 헛된 신앙일 수 밖에 없습니다.예수 신앙 안에 겟세마네 기도가 없으면 헛된 신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신앙 안에 십자가가 없으면 그것은 생명없는 신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신앙 안에 부활의 증거가 없다면 그 신앙은 소망이 없는 죽은 신앙입니다.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신앙을 통하여 날마다 주님의 은총 속에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고, 행하시는 일들마다 형통케 되시며, 기도하는 제목마다 응답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여러 성도님들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질병의 고통과, 근심 걱정으로 인한 고통을 예수 십자가 아래에 내려 놓고 해결함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시기를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