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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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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태복음 13:1-9(18-23)

 

    마태복음 13장 안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8가지의 천국에 관련된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성도들이 가져야 할 천국관에 대해서 분명히 해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나눌 본문의 말씀을 보면 똑같이 뿌려진 씨앗이 어떤 것은 싹을 내고 어떤 것은 열매를 맺고 있지만, 반면에 싹도 내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 씨앗도 있음을 말씀 하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할 것을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다음 몇주간 1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8가지 천국 비유에 대해서 하나 하나 강해 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화법으로 말씀 하실 수도 있었을 터인데, 왜 굳이 비유를 사용하셨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귀 있는 자들만 들으라 하심입니다.예수님께서 본문에 나와 있는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끝으로 하신 말씀이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천국에 관한 복음의 말씀은 귀 있는 자들만 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아무나 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입니다. 전도해 보신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사람을 만나서 아무리 복음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권면한다 할지라도 마치 귀가 꽉 막힌 사람처럼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마치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왕처럼 세례요한이 전하는 말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달게는 듣는데 그대로 지키지 못하여 방황하기도 하고 거역하기도 하여서 결국 그의 인생이 아름답게 마무리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유로 전하는 말씀에는, 딱딱한 설교 보다는 부드러운 이야기체가 더욱 재미 있고, 예화로 들은 설교는 오랫동안 기억속에 남아 있게 되고, 두고 두고 오래 생각할 수 있다는 유익이 있습니다. 13장에서 우리에게 주신 8가지의 천국 비유중 오늘의 말씀은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비유"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본문적인 의미에서는 "마음 밭 비유"라고 하는 것이 더욱 타당한 제목 설정이 될 겁니다. 본문은 네 가지 종류의 마음밭의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1. 길 가에 뿌려진 씨앗과 그 운명
    사람들을 보면 길가와 같이 메마르고 딱딱하고 사람들에 의해서 짓밟히듯 완고해진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긴 세월을 살다 보면 별의 별 일들을 다 경험하게 되는데, 말 그대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보며 살다 보니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그 마음이 마치 사람들이 밟고 다녀 단단해진 길가처럼 되 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하게 되는 두 가지 요인 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외부적인 것인데, 외적 요인들 때문에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살아남기 위해서 악착같이 살다보니 그렇게 변하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꼭 외부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 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악조건 속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외부 환경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째 요인은 내부에 있습니다. 외부적인 환경을 핑계로, 마음의 두 귀를 막아 버리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닫혀진 마음의 귀가 열려지지 않는 한 아무리 복된 말씀이 전해진다 해도 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길 가에 뿌려진 씨앗의 결과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씨앗을 먹어 버린 새는 악한 마귀를 뜻하고 또 그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 곧 생명의 말씀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그 듣는 사람의 귀가 막혀 있으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주지 않기 위해 마귀가 그 귓가에 머물고 있는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 가 버림으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겁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전하는 말씀을 처음부터 들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면 우연히 그러는것 같지만 실상은 그 귀가 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한 마디로 불쌍한 영혼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갖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 마음밭에 떨어지는 말씀의 씨앗을 받아 들이고 싹을 내며 열매를 맺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그 운명
    흙이 얇은 돌밭에는 그래도 흙이 있기 때문에 씨앗이 발아를 합니다. 싹을 내고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더 이상 뿌리를 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말라 죽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세상에서 만나는 환난과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이라고 말 합니다. 마치 밭에 돌들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자라나는 싹의 기운을 막는 것처럼 인생살이 속에서 만나는 환난이나 핍박으로 인해 그 마음이 돌작 밭과 같이 되어 스스로가 말씀의 씨앗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싹은 나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곧 햇빛에 타 말라 죽게 됩니다.

 

    돌작밭 길을 걸어가기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돌작밭과 같은 사람이 되고 또 더나아가서는 그 가운데서 자라나는 그 사람의 처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동정이 가는 인생입니다. 측은하기 까지 한 인생입니다. 그래도 말씀을 듣고 기쁨이 있어서 말씀대로 살아 보려 하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어려움들이 태산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그만 자포자기 식으로 쓰러져 자라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이 싹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돌작밭 가운데 떨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말씀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말라 죽게 된 겁니다. 그리고 더 본질적인 이유는 그 자신의 마음이 말씀의 씨앗이 싹을 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 기운을 막는 돌작밭과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싹을 내고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3. 가시떨기 가운데 떨어진 씨앗과 그 운명
    본문에 보면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내고 얼마간은 자라긴 했는데, 그만 가시가 자라서 자라나는 싹의 기운을 막아 더 성장하지 못하고 결실할 수 없게 되었더라 했습니다. 마치 가시처럼 이리 삐죽 저리 삐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성도들이 있고, 사회 생활을 하다가보면 직장안에도 가시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시처럼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는 사람들이 주변이웃 가운데도 있습니다. 본인도 괴롭겠지만 곁에서 찔리는 사람들 또한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이제까지 자기 인생에 있어서 늘 걸림이 되었던 가시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으로 그것이 결국에는 말씀의 씨앗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세상적인 유혹들이 우리의 신앙을 가로막기 때문에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세상 일로 염려하는 가시가 마음속에 자라게 되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가시가 자라나는 싹의 기운을 막고 찌르게 되니 자연 잎은 부르더라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같은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가시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야 합니다. 미움의 가시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질투의 가시를 뽑아 내야 합니다. 인색함의 가시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혈기의 가시를 뽑아 버리고, 지나친 염려는 불신에서 오는 건데 이 불신의 가시를 뽑아 버리고, 교만과 죄를 짓게 만드는 모든 가시들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가시들을 제거할 때 마음 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이 아름답게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4.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과 그 운명
    좋은 땅은 옥토를 말합니다. 옥토는 씨앗이 싹을 내고 잘 자라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는 땅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왜 옥토가 아닌가? 내 마음은 왜 좋은 땅이 되지를 못했나?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지어 놓으셨나? 하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들려 주셨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옥토는 그냥 옥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옥토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길가와 같이 딱딱한 땅이었습니다. 울퉁불퉁 여기 저기 돌이 섞여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가시나무도 있고, 잡풀도 무성하고,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악 조건들이 얼마든지 있는 그런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땅이 옥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는 그만한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길가와 같이 딱딱해진 마음의 땅을 갈아엎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발에 채이는 돌들을 골라내는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씨앗이 자라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뽑아 내야 하는 겁니다. 농사는 직접 지어보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 어느 정도의 시골 풍경에 대해서 기억을 합니다. 농번기가 되면 농부들은 수시로 논에서 자라고 있는 잡풀인 피살이를 나갑니다. 밭매러 나가서는 호미로 밭을 고르고, 흙을 돋구워 주고, 돌이 있으면 놀라 내고, 잡풀이 나 있으면 뽑아서 길가로 던져 버립니다. 풍성한 가을 수확을 위해 농부들은 이런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처럼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되 그저 적당히 맺는 것이 아니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굳이 숫자에 의미를 두지는 맙시다. 풍성하게 더 많이 열매를 맺게 됐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 말씀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신 우리 성도님들은 길가와 같은 마음이면 갈아 엎으셔서 옥토 되게 하시고, 돌작밭 같은 마음에서는 돌을 골라 내시고, 가시 덤불과 잡초도 뽑아 내심으로 성령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옥토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천국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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