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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20   
본문말씀: 예례미야 애가 1:19-22

 

    예례미야 애가서는 예례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으로 성경전체 말씀들 중 가장 비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멸망당하는 자기 나라와 백성들을 보면서 슬픔의 노래를 적은 말씀입니다. 예례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눈물로 호소한 선지자였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부패한 현실을 보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경고의 메시지를 계속 전했지만 누구하나 듣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울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우리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을 생각하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례미야 선지자 되어 나라를 위한 눈물의 기도를 드리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위로할 자가 없도다(1-7절).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들고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주변에 그것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 슬픔의 깊이는 몇배로 깊어질 것입니다. 예례미야 선지자가 애가서를 기록할 때의 정황은 그러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위로할 자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나라가 썩을대로 썩었습니다. 정치인들만 부패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제사장들도 한결같이 신앙적으로 부패했고, 물질로 인해 부패했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누구하나 예외 없이 나라 전체가 부패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피를 토하듯이 외쳤습니다. 왕궁 뜰에 갇혀 있는 처지가 됐을 때도 그가 전하는 회개의 메시지는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듣질 않았습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그토록 경계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음으로 마침내 그의 경고가 눈 앞에서 구체화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예례미야는 망연자실 주저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 자기의 깊은 비애를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도 없는 비참한 처지가 되다 보니, 선지자는 그저 넋을 놓고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현실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니다. 정치인들을 향해 바른 말을 해도 누구하나 듣질 않습니다. 그저 표와 인기만 얻기에 급급해서 옳고 그른것을 떠나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발언들만 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인권을 이야기 하며 오히려 정상적인 다수의 인권을 유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짓이 진실처럼 되고, 진실이 뭍혀 버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도 돈과 명예에 눈이 멀어 올바른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도들의 귀에 달콤한 감언이설을 속삭여 성도들의 영혼을 도적질 하고 있습니다. 사니 못사니 해도 유명한 식당들이나 맛집들에는 먹으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절약하자는 말은 현실에서 사라진지 오랩니다. 절약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현실성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전쟁의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면서도 안나겠지 하는 안일함으로 오늘도 자기 인생을 즐기기에 급급하기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며, 불신앙으로 살다가 나라가 망하게 되었듯이, 이 나라도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가다가는 재앙이 닥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2. 내가 우나이다(8-17절).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미래를 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닭이 날개 아래 병아리들을 품으려 하듯 너희를 품으려 한 것이 몇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였다"하시며 눈물을 흘리신적이 있습니다. 이 날의 예례미야 선지자는 비극을 현실로 보면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멸망과 폐허가 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니 "내가 우나이다"하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8절 이하의 내용에는 그의 슬픔의 모습들이 겹겹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그가 죽음의 골짜기에 홀로 떨어져서 한탄하는 모습을 보는 듯 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히 느끼고 지나가야 될 일은 그의 슬픔과 눈물이 자기 자신의 불행을 통한히 여겨서 나오는 것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데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슬픔의 강도는 그러한 개인적인 슬픔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또 깊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 이 강토에 육이오와 같은 전쟁이 또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겠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시대의 심각성을 깨달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심장이 터지는 듯한 고통속에 나라의 장래를 바라보며 우는 예례미야 같은 성도들이 된다면 우리 나라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이 되 살아나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이런 점이 진정 하나님과 백성에게 같은 자세의 눈을 돌리고 있는 믿는 자들과 그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의 참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시시때때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18-22절).
    예례미야의 이 탄식이 범인의 넉두리와 다른 점은, 그가 골수에 사무치는 슬픔을 짊어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참혹한 현실이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의로우셔서 행하시는 일이며, 백성들의 무지와 죄악 위에 필연적으로 임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공의임을 분명히 읽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번뇌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아프심을 함께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의로우신 분인지를 더욱 깊이 깨닫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우시도다"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벌하면서 증오심을 배제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벌하시며 함께 눈물을 흘리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종 예례미야 선지자의 애통함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죄악을 눈감아 주실 수 없으시고, 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망하는 백성들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의로우시기에 이 나라 지도자들을 위시해서 온 백성들이 철저하게 죄악된 삶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한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철퇴는 필연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대의 심각성을 깨달아 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신앙을 붙들고 살 수 있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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