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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강단

수요강단-직분의 권리와 자제

관리자 2017.11.29 18:22 조회 수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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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고린도전서 9:15-19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직분의 권리와 그 권리를 누릴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제하는 모습이 성도들에게, 특별히 직분자들에게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권리"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까 '특별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법률상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자제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을) 괴롭히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을 크게 낮추는 겸손이나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민수기 30:13). 복음전파의 효율성을 위해서 사도바울의 사도직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는 말씀을 상고함으로 모쪼록 하나님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는 것은 왠만한 결심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요즘 정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어린애 같은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근본적 이유가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지키려하는 마음이 지나치다 보니 여러 가지로 마찰이 빗어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전파의 좋은 결실을 위해서라면 혹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적 권리라 할지라도 포기할 줄 아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1. 직분에 관한 권리는 분명히 있습니다(1-14).
    9장에서 바울은 스스로 모범이 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그는 누구보다도 능가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복음 증거를 위해 이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권리는 첫째, 사도적 권리입니다. 그는 사도로서 먹고 마시는 권리도 있고, 교회를 치리하며, 관리할 권리도 있고, 다른 사도들처럼 동부인하면서 봉사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둘째, 율법적 권리입니다. 그는 이것을 군인과 농부, 목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 신령한 군인이요 농부요 목자인 성직자가 보수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신 25:4, 딤전 5:18). 셋째로는 육신적 권리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학자요, 베냐민 지파요 등등을 따져 볼때 그는 사회적으로나 가문적으로나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배설물 처럼 버렸습니다.

 

    당시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었듯이(레 10:12-15, 민 18:8-19, 신 18:1-3)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마 10:10, 눅 10:7).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서 직분을 맡은 분들은 직분에 맡는 권리를 찾을 수 있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집사나 기관장으로서 인정받고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또 그럴만한 자격과 권한이 있습니다. 장로나 권사는 또 그에 맞게 예우와 대접을 받을 권리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와 예수복음을 놓고 생각할 때 어느것이 우선이냐 하면 당연히 예수 복음이 우선 되야 하는 겁니다. 때론 지나치게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다 보니 예수 복음은 뒷전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 누릴 수는 있으나, 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권리를 포기하고 노예적 태도를 취하는 직분자가 되야 합니다(15-23).
    바울은 전도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자급 전도를 했고, 자유인의 특권도 포기하고 모든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노예적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본문 19절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다는 선언입니다. 복음 전도자로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같이 할례를 주었고(행 16:3), 머리를 깎고(행 18:18)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는 은혜 아래 있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는 이방인과 같이 행세하였고, 또한 약한 자를 얻기 위해서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자기 주장을 견지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을 취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는 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행위 보일 수가 없습니다.

 

3. 직분자에게는 자제하는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24-27).
    경주자가 상을 얻기 위하여 달리는 것처럼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십자가를 바라보고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경주자는 규약에 복종해야 되고, 코치의 지도와 훈련, 식사, 잠자는 거, 휴식, 오락 등 기타 일체에 통솔을 받아야 합니다. 경기에 승리하려는 선수는 많이 참아야 하고, 많이 노력해야 하며,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극기와 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남을 비난하는데 자신의 힘을 낭비하지 말고,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자기 훈련이 있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우리가 다달아야 할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이 밤에 본문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자기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신앙 배워 주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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