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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가복음 1:14-20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것(14-15)과, 처음 제자 네 명을 부르신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16-20).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복음을 믿어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사회 전반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지배를 말하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때 비록 그 사람의 삶이 아직 이 땅에서 사는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천국의 삶은 오직 거듭나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만의 특권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진정 거듭난 사람은 그 심령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그 안에 성령이 거하시므로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한 곳에 모여서 천국의 삶을 나누는 곳이 지상에서 볼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을 맞이할 때, 그리고 심판의 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이뤄지게 됩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초기 제자 네 명을 부르신 모습을 살펴 봅시다.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시다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안드레 형제를 보고 부르셨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아버지와 일꾼들과 함께 그물을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이들은 한 지역에서 같은 직업을 가지고 서로 동역하던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부인 이 사람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현재를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주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시고 주님은 그 사람들을 훈련시키셔서 쓰실 계획을 가지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들처럼 주를 따를 준비가 되있을 때 주님은 그 사람을 새롭게 하시어 소명하십니다.

 

1. 신속히 결단을 내렸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저들을 부르실 때에 그 누구하나 주님의 부르심에 주저하지를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를 따르라 하며 물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에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는 "곧" "그믈을 버려두고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at once"라고 번역을 해 놓고 있습니다. "즉시"라는 뜻입니다.

 

    주저 하는 마음 가지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리저리 재는 마음을 가지고는 예수님을 따르기 어렵습니다. 예수가 누군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의심하는게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의심없이 따라 나서는 행동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 즉시 부르심에 따라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영적 권위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 권위에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는 조금도 의심없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2. 그들은 모든 것(배, 동료들, 아버지)을 버려두고 좇았습니다(눅 9:23).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믈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고 했습니다. "버려두고" 라는 말은 말 그대로 내동댕이 치듯 버렸다는 뜻의 말씀이 아닙니다. "미련없이 떠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일겁니다. 하나님을 모든 우선순위에서 제일 위에 모시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부들에게 있어서 그믈과 배는 그들의 재산 목록 1호입니다. 생계수단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에 이 어부들은 그들의 생계수단의 전부였던 그믈과 배를, 심지어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일하던 일꾼들 마저 "미련두지 않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일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단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본 사람은 이들의 결단이 이해 됩니다. 예수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주님을 따르기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도 주님을 따르기 어렵습니다. 이해타산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가룟유다 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3. 그들은 결코 뒤돌아 서지 않았습니다(빌 3:13).
    빌립보서 3장 13절의 말씀에서 바울은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좇아가노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뒤에 미련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 어렵습니다.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해야 하고, 부친상을 치러야 하고, 이 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송 가사중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일단 한번 부르심에 응답했던 제자들은 뒤돌아 서지 않았습니다. 앞만 보고 전진해 나갔습니다. 주님은 주의 일을 맡은 자가 뒤를 돌아 보는 것은 합당치 않은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그 옛날 제자들을 부르신 것과 같이 오늘 우리를 부르심에 있어서 주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복음을 전하려 하심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우리 주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았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현재 주어진 삶속에서 오직 주님만을 좇아가는 삶, 결코 뒤돌아 서지 않고, 과실을 많이 맺어 드리기 위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 영생의 삶을 삽시다. 천국갑시다"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신실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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