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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8/1/7 예수 심장 가지고

관리자 2018.01.06 15:51 조회 수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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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로마서 1:9-15

 

    로마서 1장 9절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그리고 말하기를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그리고 하나님이 증인 되 주시는 내용을 말하는데 "...항상 너희를 기억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증인 되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절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항상 기억하되, "기도가운데 기억했다"고 했습니다. 로마 교회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너희(로마교회)에게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지기를 기도"한 바울입니다. 그 목적이 본문 11절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로마서 1:11). 직역을 하자면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기 원했던 것은 영적인 은혜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라" 다르게 표현해서 "너희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영적인 은혜를 나누어 주고자 한다. 그것이 너희에게 그토록 가기를 갈망했던 소원의 목적이다"는 말씀입니다. 로마 교회가 잎만 무성한 신앙이 아니라 뿌리까지 깊이 내려가길 원했던 바울의 소원을 이와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나누어 주고 싶었던 "신령한 은사" 또는 "영적인 은혜"가 무엇이었을까요? 로마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울의 신앙과 신학을 미루어 볼 때, "오직 예수"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도 자신이 만난 예수, 자기가 그토록 사모하는 예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던 예수, 그 분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에게는 신령한 은사의 전부였고, 영적인 은혜의 본질이었습니다.

 

    신령한 은사 또는 영적인 은혜는 바울이 받은 바, 체험한 바 예수의 은혜요, 복음으로 구원얻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어떤 신비스러운 은사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 분이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신령한 은사, 영적인 은혜의 본질이었습니다. 로마서 1장 15절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 교회가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일까요? 로마교회도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이와같이 이야기 하고 있는 이유를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 로마교회는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에 신앙의 기본 교리를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함이고, 둘째는 유대인 성도들의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인한 혼란을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14:1-6).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였고, 현재도 진행형으로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하기를 "예수를 위해, 예수를 얻기 위해, 예수를 위해 죽고 예수를 위해 살고자 모든것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울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바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자아를 죽인 바울의 가슴에 있는 심장은 더 이상 바울의 심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었습니다. 예수를 위해 죽고, 예수를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죽고, 복음을 위해 산 바울의 생애가 신령한 은혜요 선물이었습니다. 로마교회에 나눠주고 싶었던 신령한 은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수 심장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은 어떤 삶일까요?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가서 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워 주고 싶었습니다. 오직 예수 복음의 은혜를 그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로마서 1:10절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바울의 생애는 예수님을 닮아 가고자 하는 삶이었었는데,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바울은 선포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이 선언은 본질적으로 바울을 본 받으라는 말이기 보다는 바울은 죽고 이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바 되었으니 이는 바울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화 된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의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됐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바울을 통해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바울이 지나가는 곳에는 복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생명을 심었고, 생명이 싹을 티웠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의 열매를 맺는 역사가 바울이 밟는 땅마다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신령한 복을 나누어 주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신령한 복은 예수 향기입니다. 이 신령한 복은 우연히 저절로 생겨나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택하고 육신의 것을 버릴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입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으려고만 하고 나누어 주는데는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나 형편을 이해해 주기는 바라면서도 다른 이들의 허물은 이해하려 하지를 않습니다. 축복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시고, 이해받는 것보다 이해해 주는 삶을 사는데 촛점을 맞출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로소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사역자의 자질을 우리도 갖출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너무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다 보니, 매번 매 순간 인식하지 못하며 살 수도 있지만, 우리 크리스챤들의 삶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 신앙안에서 아름다운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 신령한 은혜의 전달자들이 되시기를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새해 첫 예배에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세 가지를 제안하려 합니다.

 

1. 그럴 수도 (있겠구나)
    누군가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했을 때 그를 비난하고 정죄하기는 쉽습니다. 우리 모두 지난 해까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올 해는 비난이나 정죄는 땅속 깊이 묻어두고 누군가를 판단하기에 앞서서 "어쩌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수도 있겠다" 이해 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정을 안 후에도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그렇게 살면 되나" 보다는 "그 상황, 그 처지가 되면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먼저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져 보시고, 좀더 지경을 넓혀 이웃과 직장 안에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예수 심장,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모습입니다.

 

2. 그런것도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고린도전서 8:12에서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 사도 바울은 전하고 있습니다.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에서 비롯된 시험 거리와 상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내가 내 입 가지고 내가 먹는데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언행은 믿는 자라면 삼가해야 할 모습입니다. 먹는 것도 내 자유고 버리는 것도 내 자유인데, 하라 마라 할 권한이 너에게는 없다는 식의 대화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되기도 합니다. "약한 양심을 상하게 만드는 것도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8: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상제물에 관련된 논쟁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자유로 내 의지대로 내것 가지고 내가 사는 것인데,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은 지금까지 우리가 품고 행해왔던 일반적인 생각이요 행동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9절 말씀을 통해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먹을 자유도, 사서 누릴 자유도 있지만, 먹고 싶어도 사서 누리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내가 누리는 이 자유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 씀씀이를 갖는 것이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믿는 자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새해에는 보다 더 남을 배려하며 사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그렇게 하면 (안되지요)
    끊임없이 유혹과 욕망이 우리 속사람에게 속삭입니다. 물질에 대한 유혹이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유혹이 있습니다. 명예나 권력에 대한 유혹이 있습니다. 적당한 타협만 하면, 사회에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교차로에서 노랑불에 지나가던데, 다른 사람들도 길 가에 휴지를 버리던데, 요즘 세상은 교회 다니는 집사들도 권사나 장로들도 심지어는 목사들도 술담배 크게 개의치 않고, 피우고 마시고 사는데, 나 한 사람 지킨다고 해서 세상이 달리지겠는가 하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면, 안되겠지요. 남들은 다 해도 옳은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생활이라면 "그렇게 하면 안되지" 하면서 우리의 신앙, 우리의 마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예수의 마음,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사는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런것도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그렇게 하면 안되지요, 이 세 가지의 제안을 되새겨 올 한 해 실천하며 살아봅시다. 그 안에 바울이 우리에게 그토록 나눠주고 싶어하는 신령한 은혜, 나를 살리시는 예수의 복음이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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