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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8/2/25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관리자 2018.02.25 07:31 조회 수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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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태복음 8: 23-27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 전도여행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피곤하셨는지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때 마침 불어오는 광풍으로 인해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우리가 죽을 위기에 처해 있으니 일어나셔서 우리를 도우소서" 했습니다. 일어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잠잠하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주시는 은혜를 발견하고 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두려움은 연약한 믿음의 결과입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배가 곧 뒤집힐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려워 하는 것, 무서워 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겁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을 하셨습니다. 두려워 해야 할 상황에 놓이면 두려워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심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두려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은 1)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무서워 하느냐는 뜻입니다. 2) 왜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걸 알지 못했느냐, 믿지 못하느냐는 책망이기도 합니다. 3) 모든 염려를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의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했습니다. 믿으면 바람도 풍랑도 잔잔하게 됩니다.

 

    인생의 풍랑이 일어납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이 곳 저 곳에서 일어나 삶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육신의 질병이 심신을 고달프게 만듭니다. 물질 문제와 사업 문제가 하루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질 않습니다. 풍랑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지를 않습니까?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습니다. 믿지를 못해서 안 되는 겁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주님께 고해야 하는데 고하지를 못해서 주님의 능력을 잠재울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위기 상황에서 "주님을 깨우며 우리를 구원해 주옵소서" 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고쳐 주시고, 채워 주시고 살려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2. 의심치 않는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마태복음 14장 22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재미있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께서는 이번에는 물위를 걸어 오심으로 제자들을 또 한 번 놀라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든 제자들이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 떨고 있을 때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했습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베드로는 생각하고 주님께 요구하는 그런 대단한 신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물 위로 발을 내 디뎠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신앙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무모하다 할 정도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라면 바로 실천으로 옮기는 참으로 대단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그의 신앙의 정도였고 한계였습니다.

 

    발 밑에 부는 풍랑을 보는 순간 베드로는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됐습니다. 무서워 살려 달라 소리치는 베드로를 향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뭡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계속 걸어 올 것이지 왜 바람을 보고, 풍랑을 바라 봄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스스로 시험 들게 했느냐 하시는 책망의 말씀이었습니다. 환경을 보면 시험 듭니다. 환경을 보면 의심하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시험 듭니다. 사람을 보면 의심하게 됩니다. 볼 것만 보고 들을 것만 들으면 되는데,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다 보니 믿음은 사라지고 의심의 안개가 앞을 가리게 되는 겁니다.

 

    안 되는 일이라고 누가 말을 해도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면 그게 믿음이요, 그 믿음이 자신을 살리는 능력이 됩니다. 누군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을 해도 주님이 된다 하시면 되는 줄 믿고 행할 수 있는 믿음, 그것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 됩니다. 바다 위를 걷는 것이 무모해 보여도 주님이 오라하시면 발을 내 디딜 수 있는 믿음, 풍랑 위를 걷더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이 오늘 우리를 살리고, 우리 교회를 살리고, 이 나라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예수가 능력입니다. 예수가 생명입니다.

 

3.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됩니다.
    마태복음 17장 14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주님께 나와 고쳐 달라 간구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이 고치지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고쳐 주셔야 되겠다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세상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고쳐 주셨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간질병을 고치셨는데 우리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을 때 주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단수/한알)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뭡니까? 우리가 할 수 없었던 것은 겨자씨 한 알 분량 정도의 믿음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백날 외치며 예수님을 따라다녔어도 정작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큼 정도의 믿음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고치지를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에서 예수님이 제일 먼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신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노라 말하면서도 정작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언제 알 수 있습니까? 힘든 일이 닥치면 그 신앙의 본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인생의 위기가 찾아 왔을 때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삶을 살아온 성도인지 아닌지 다 드러나도록 되 있습니다. 평안할 때는 다 잘 믿는 것 같습니다.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느브갓네살 왕 앞에 서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수천년이 지난 오늘도 이야기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극한 상황속에서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버릴 수 없다고 하는 불굴의 신앙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으로 이기게 됐기 때문에, 두고 두고 그들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 집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됩니다.

 

    믿으면 홍해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집니다. 출애굽기 14장의 말씀에서 우리는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서서 갈팡질팡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까스로 여기까지 도망쳐 와서 다 죽게 되었다고 울고 불고 아우성을 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게 사람의 모습입니다. 조금 전만 해도 애굽에서 탈출했다고, 이제는 해방됐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해 신이 났던 백성들이 문제에 딱 부딪히게 되니 모든 원망을 하나님께 돌리고, 지도자였던 모세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잘 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다가도 뭔가 잘못되면 예수 믿어도 별 소용이 없다고 모든 원망의 화살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저두 그랬고 여러 분들도 그러며 살아왔습니다. 평안 할 때는 하나님도 안 보이고, 교회도 안보이다가 정작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의 신앙을 돌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어도 소용이 없더라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 앞에 선 모세가 선포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보는 것은 믿음을 의미합니다(출14:13).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구원의 손을 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그 믿음이 우리 앞에 놓인 홍해를 갈라 놓습니다. 

 

    난공불락 여리고 성 앞에 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그 성을 돌라는 겁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조용히 돌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마지막 바퀴를 돌고 난 다음에는 큰 함성을 지르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지른 믿음의 함성이 여리고를 무너뜨렸습니다.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만 믿고 의지하면 우리 생활 속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교회를 성장시키시고, 믿음으로 가정 축복 이루시고, 믿음으로 사업 일으키시고, 믿음으로 육신의 질병 치료받아 건강 회복되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성도 되십시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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