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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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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디모데전서 3:15                                         

 

    초대방주 교회가 설립된지 27주년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셨고,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처음에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뜻의 성취요, 하나님의 은혜였고, 고비고비 때마다 도우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7년이란 세월 지나 놓고 보니 참으로 짧은 세월인 듯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34의 나이에 인천에 내려와 지하 60평에서 교회를 처음 개척하고 95년에 120평 4층 건물로 이전을 한 후 2000년 5월 이 곳으로 건축 이전하고 오늘에 이른 세월이 27년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등록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시다(직분자400명)가 또 그렇게 떠나간 분들과 남은 분들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세월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잠시 회상에 잠겨 봅니다.

 

    27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오늘의 말씀은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말씀인데, 가끔 잊을 때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나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단순하게 사람들이 모여서 교제를 나누는 장소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 세운 생명이 없는 우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동전 바꾸는 사람등 상업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며,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의미를 현대 교회들이 잃어 버렸습니다. 강도의 굴혈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세속적인 장소로 전락 시켜 버렸습니다. 복음이 아닌 변질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장통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전의 규모와 외형은 아름답고 웅장하게 치장해 놓았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던 것처럼, 겉은 깨끗해 보이나 속에는 썪어가는 시체가 들어 있는 위선된 교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거룩한 장소를 사람 냄새가 풍기는 장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기를 얻기 위한 설교를 하고, 세상적인 재물로 고도 비만에 걸린 병든 교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장소가 될 수 없습니다. 잃어 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한 성전되게 해야 합니다. 지난 27년을 지나오면서 초대방주교회가 잃어 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썩어질 세상것을 얻기 위해 소중한 복음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들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2.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교회는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둥과 터가 되게 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안에서 예수가 사라졌습니다. 진리가 사라지고 거짓이 난무하는 이기집단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억합시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외적 성장을 위해 현대 교회들이, 목사들이, 성도들이 예수를 팔아 먹었습니다. 예수를 교회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교리를 가져다 놨습니다. 사람들 머리로 짜낸 온갖 프로그램들을 올려놓고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진리가 사라졌습니다. 진리의 탈을 쓴 사탄의 이론들로 가득차게 만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집은...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진리의 터가 되게 하십시다. 교회안에 진리의 기둥이 세워지게 하십시다.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는 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가짐을 닮으라 혹은 가지라"는 강한 명령입니다. 지난 27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이 전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정말 잘하신 겁니다. 우리가 닮아 가고, 우리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할 예수의 마음이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례미야 29장 11절의 말씀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잘못한다고 해서 재앙을 내리고 어떤 징벌을 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평안과 소망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이 마음이 곧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참 평안을 주노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소망이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명령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그 예수의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2) 예수님의 마음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대한 감사는 조건과 환경을 초월한 감사를 의미합니다. "무엇 때문에 가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 할 수 없는 중에도 즐거워 하고 감사할 수 없는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은 말 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교회와 가정에 존재하게 될 때에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과 순종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 다고 했습니다. 근본이 하나님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되다 하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살리는 진리와 길이 되 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은 예수님처럼 겸손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남을 누르고 그 위에 올라서려 하다보니 사회가 점점 악해지는 겁니다. 낮아지고자 하는 사람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교회 안에 사랑이 식어지고, 행복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 버리고 마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자신을 낮추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십시다.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인류를 위한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그 죽음의 길을 가시기까지 복종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는 것,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4)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은 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유월절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시면서 섬김의 모습이 무엇인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발을 씻기는 행위는 가장 낮은 자가 자기 주인에게 보일 수 있는 최상의 섬김의 모습입니다. 주님이라 부르는 예수님이 그리하셨으니 우리도 그리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서로 섬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심령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회복되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고, 사회가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과 순종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섬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시키십시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자기가 지금까지 자랑거리로 삼아 오던 것들을 다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교회 창립 27주년을 맞이해서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교회의 진리요 진리의 기둥이요 터시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회복되는 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 가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친 여호수아의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날 너희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인지 우상을 너희의 신으로 섬길 것인지 여기서 정하라...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 비장한 각오의 외침이었습니다. 오늘 교회 창립 27주년을 맞이해서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 세월 속에서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오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 왔었는데, 이제 다시 한 번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는 결단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그 결단을 내린 사람들만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다시 한 번 신앙의 결단을 내려야 겠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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