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주일예배 말씀

2016/9/4 주님을 만나야 변합니다

관리자 2016.09.03 11:34 조회 수 : 84

Add movie file / 동영상 추가  
본문말씀: 누가복음 24:13-27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일어났던 사건 중 하나인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체험한 성경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상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제일 먼저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된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지만 반신반의 하면서 불안과 공포 속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자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25리 정도 떨어진 엠마오라고 하는 촌으로 향해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8절과 33-35절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볼 것 같으면 이 두 제자는 11명의 제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슬픔 속에 서로의 앞 날을 걱정하며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로 묻고 답하면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이 두 제자들의 발걸음은 보기에도 무겁기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을 것이고, 또 여인들이 경황없이 전해준 부활의 소식에 대해서도 그 진위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을 것입니다. 그 때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를 자청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이 곁에 서셨으나 워낙 큰 슬픔 중에 있었던 제자들이라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수년동안 들어왔던 예수님의 목소리 마져 인식하지를 못했습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이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측은히 여기사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상하고도 상세하게 가르쳐 주심으로 그들의 감기워 졌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닫혀져 있던 그들의 귀를 열어 주셨고, 실망으로 겹겹이 싸여 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순간 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를 변화 시키셨습니다. 또한 이 변화의 역사는 오늘도 성전을 찾는 성도님들 심령 속에서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고 또 일어나야만 합니다.

1. 감겨진 영적 눈이 열려 밝아져야 합니다.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께서 이 두 제자를 찾아 주셨지만 슬픔과 실의로 인해 저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어서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저들의 눈만 가리워졌던 것이 아니라 저들의 귀까지도 굳게 닫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었지만 저들의 눈이 감겨져 있을 때에는, 또 저들의 귀가 닫혀져 있을 때에는 예수님인줄 발견하지를 못했습니다. 또 저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던 것은 말씀의 무지였습니다. 말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인간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죽은 사람은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주님이 그들 곁에 서 계셔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말씀을 듣는 중에 성경에 관한 말씀의 눈이 띄워지게 되었을 때에 저들은 비로소 부활하셔서 자기들과 함께 걸으시며, 사랑을 나누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닫혀져 있는 우리의 귀와 어두워져 있는 우리의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때로는 근심으로 우리의 두 귀와 눈이 어두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로 인해 찾아오는 좌절감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죄로 인하여 우리의 눈이 어두워 질 때가 있고, 고집으로 인해서, 혈기와 감정으로 인해서 우리의 눈이 가리워져 우리 앞에 서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적인 지식의 교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며 스스로 눈을 가려 우리 앞에 서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영의 눈이 열려지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을 발견함으로 슬픔과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야 합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주님은 다가 가셔서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 내용이 무엇이냐" 물으시게 되었을 때에 저들은 슬픈 빛을 띄며 최근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21절의 말씀을 보면 자신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속자이기를 바랬다"고 했습니다. 허나  그 예수님이 이제 죽었으니 자기들의 기대가 헛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실망했다는 말입니다. 더더군다나 부활의 소식을 전한 여인들을 가리켜서 허망한 소식으로 자기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당한 슬픔이 너무 커서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곁에 서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슬픔속에 있던 이들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자 슬픔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근심과 한숨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사랑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생활과 가정 속에 넘쳐 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주님을 만나 마음이 뜨거워져 열심있는 성도, 불타는 사명자가 되야 합니다.
    박해자들이 무서워 감히 대낮에는 들어내 놓고 다니지도 못하던 제자들이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한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 졌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을 걸고 전하는 열심있는 일꾼, 불타는 사명자들이 되었습니다. 본문 32절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 져야 합니다. 불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을 때에 열심있는 성도, 불타는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직도 우리 곁에 서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은 아닌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 귀머거리가 아닌가 살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있고, 축복 기도가 있을 때 저희 눈이 밝아져 예수신 줄 알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져 새로운 힘을 얻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없던 발걸음을 바꾸어 힘찬 발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뛰 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은혜와 축복의 역사가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님들 생활 속에 넘쳐 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예수로 인하여 삶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한 두 제자들은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주저함 없이 가던 길을 돌아섰습니다. 본문 33절의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이신 줄 깨닫고, 말씀에 대해서 깨닫고, 자신들의 마음이 뜨거워져 있음을 깨닫고는 "곧 그 시로 일어나"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바꾸어 옮겼더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 두 제자들은 자신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여인들과 동일한 부활의 메시지를 다른 제자들에게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 두 제자들은 삶의 방향이 바뀌어 복음을 전하는 용기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우리의 가는 길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질 때만이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주님께로 향해 올라가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마음속에 묻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마음속 신앙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만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서신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의 역사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밝은 영안, 기쁜 마음, 뜨거운 마음, 사명의 발걸음은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변화의 역사를 통해 기쁨을 회복하시고, 열정을 회복하셔서 주신 사명 감당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