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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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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신명기 21:1-9

    2004년 6월경, 벌써 십이삼년이 흘렀는데, 뉴스를 통해 김선일씨가 알카에다 과격분자들에 의해 살해 당했다는 소식 들으신거 기억나실 겁니다. 생명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진지 오래 입니다. 현대사를 살펴보면 과거에도 없었던 학살 사건들이 참으로 많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독일 나치에 의해서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고, 일본군들에 의해서 극동 아시아에 있는 엄청난 사람들이 학살 또는 피해를 입었고, 킬링필드라고(캄보디아-폴 보트) 해서 체제싸움으로 인해 반대체제의 사람들을 백만이 넘게 학살한 참혹한 사건도 우리의 부모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만일 이 엄청난 학살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더라면 이토록 엄청난 일들은 저지르지 못했을 겁니다. 생명을 귀중히 여길 줄 모르다 보니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목숨 처럼 여기는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치의 히틀러가 생명의 귀중함을 모르고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학살 한 것이나, 오늘날 성도들이 지옥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함으로 멸망케 하는 것이나 실상은 다를 바가 없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직접 손을 대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관만 하고 버려 둔다면 우리에게도 죄없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주일은 전도주일로 정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성경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생명 존중 사상이 무엇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해 상고해 보심으로 전도사명의 절대성을 깨닫고, 또한 은혜 나누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는 지를 본문을 통해 절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핵심은 무고한 피를 흘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소홀히 다루지 말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살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누군가가 피살당했으면, 설사 내가 죽인 것은 아니라 해도 생명의 존엄성을 알게 하기 위해서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나타내라 하셨습니다. 만일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 말씀대로 생명의 귀중함을 조금이나마 깨닫고 산다면, 우리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 만은 않을 겁니다.

    제미슨 박사는 본문의 살인에 관한 내용이 그 체계나 정당성에 있어서 당시 고대국가들의 살인에 대한 조항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이며, 오늘날 검시제도의 기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성경의 법률은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철학이나 오늘날의 사회주의는 성경법과 반대되어 인간의 개성을 무시하고 인간 개개인을 하나의 단체를 이루는 집합체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부여받은 엄숙한 책임을 가진 자로서, 존재의 가치가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분이십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은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한 마디로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나 한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이 땅에 보내 주셨고, 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십니다. 이처럼 인간 개개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시는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기본적인 세 가지 사랑을 요구하시는데, 그 첫째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둘째가 부모를 향한 사랑이고, 셋째가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같은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그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생활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 또한 불신자들에게 관심 갖기를 원하십니다. 관심이 없으면 처다 보지도 않게 되 있습니다. 전철을 타 보신 분들은 전철 안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을 만나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물건을 판다 할지라도 내게 관심이 없으면 처다 보지를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불신자들에 대한 신앙의 관심을 갖지 않고는 저들을 찾아 갈 수도 없을 것이고, 더군다나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 될 겁니다. 결국 내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불신자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또는 관심은 있더라도 그 열성이 부족하여 전도치 못하는 것이라 결론 내려도 무리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소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의 기도 소리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의 근심과 걱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주님께 우리의 일생을 맡기고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고, 우리 또한 이웃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관심을 나타내 전도의 결실을 맺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사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적으로 나타나는 재물, 지위, 가문, 학력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의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사랑하십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라고 무조건 미워하시고, 우상 숭배자라고 해서 저주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저들의 불신앙적인 행위는 미워하시지만 그 영혼들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사 언제든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특정한 사람만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 구원받기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이 다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구원에는 숫자적인 제한이나, 신분적인 제한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지를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십 분의 일, 아니 백 분일도 갖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우리와 원수된 사람은 하나님도 미워해 주시기를 원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해 주시기를 원하고, 우리가 버리는 사람은 하나님도 버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용서할 줄 모르는 마음이요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닙니다. 여러 자녀를 둔 어버이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그중 말썽꾸러기가 있다 해도, 다른 형제들이 다 미워한다 해도, 부모님은 어찌하든 그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그의 장래가 잘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은 분이십니다.

    성경의 잃은 양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통해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고자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헤메이다 찾으면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그 한 마리의 찾은 양으로 인해서 더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목자되시는 하나님은 험악한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 영혼이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왔을 때 그 영혼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십니다.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가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것처럼 돌아오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안아 주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불붙는 신앙으로 주의 말씀 부지런히 전하시고, 전도 결실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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