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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8/27 근심에서 안정된 생활로

관리자 2017.08.26 15:33 조회 수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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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요한복음 14:27

 

    세상에는 근심할 일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돈 때문에 근심하고, 사업 때문에 근심하고, 자녀들 때문에 근심하고, 건강 때문에 근심들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 주변 사람들을 만나보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어찌하면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식이 몸에 좋고 어떤 음식은 몸을 망친다 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이론을 이야기합니다. 요즘 살충제 계란과 DDT 성분을 함유한 닭고기 파동으로 인해서 먹거리에 대한 걱정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정부 발표도 몸에 해롭다고 했다가, 매일 하루에 두개 이상 평생 먹지 않는 한 아무 문제 없다고 번복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유럽에서 이 문제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지, 지금까지 우리 모두 모르고 먹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당장 무슨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야단들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동차 매연이 더 해롭고, 사람들이 연실 피어대는 담배 연기가 더 해로운거 아닙니까? 우리 주변에 농사 짓는 분들은 잡풀 깎기 힘들다고 해서 툭하면 제초제를 뿌려댑니다. 이 제초제는 계란속에 있는 살충제 성분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맹독성 물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며 살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해로운 독이 됩니다.

 

    장수한 사람들의 공통점 하나를 들라하면 그들의 성격은 낙천적이라는데 있습니다. 걱정할 일이 있어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고, 힘든 일이 생겨도 잘 되겠지 하는 낙천적 성격을 소유한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말을 합니다. 가만히 듣자니까 그 말은 일리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항상 기뻐하라" 고 말씀하고 있지를 않았습니까? 또한 "범사에 감사 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장수의 비결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날마다 직면하고 있는 근심스러운 일들과 괴로운 일들과 우리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모든 일들을 어떻게 웃어 넘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답은 간단합니다. 그 문제를 나 대신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에게 모두 맡기고 살면 됩니다. 아이들은 당장 먹을 양식이 없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계시니까, 부모님이 다 알아서 해 줄테니까 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같은 어린아이 심정을 갖고, 내 문제와 근심스러운 일들을 맡길수 있는 믿을만한 대상이 있다면 그러면 아무리 힘든 일이 우리앞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웃음으로 넘기며 즐거움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와 해결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외적으로 근심된 일이 쌓여있는 오늘날 본문의 말씀을 상고하심으로 위로하심을 받고 날마다 예수님의 은총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왜 근심하며 살까요? 
    미국의 마운트 사이나이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조지아 위트킨 라노일 박사는 여성의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책에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20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몇가지를 소개해 볼 것 같으면,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죄책감을 떨쳐 버릴 것, 웃을 것,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습관화 할 것...'등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노일 박사가 말하는 방법들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는지 모르나 실제에 있어서는 실천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아는듯 하지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또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죄책감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웃어 넘겨야 할 일을 웃어 넘기지 못하고, 자신감의 결여로 인하여 우울증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자신감 결여로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웃어라, 그리하면 네 병이 고쳐진다'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론과 실재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근심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로, 자신의 문제 때문입니다. 건강, 사업, 가정, 가족관계에서 오는 문제들로 근심합니다. 병에 걸려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사업에 위기가 찾아 오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 마음 조리며 삽니다. 둘째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상황 때문입니다. 전쟁의 소문, 식량부족, 자원 고갈, 대기오염, 핵공포, 이상 기온, 물가상승, 대기업 도산, 자금난 등등 이러한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근심하며 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셋째로, 죽음의 문제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사람을 더욱 겁나게 하고 근심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을까봐 걱정하고 근심을 합니다. 연세드신 분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죽음"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사실 세상에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맞이 할 수 있는 사람 없을 겁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일들로 인해 근심과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회자와 함께 읽으신 본문에서는 "두려워 하지 말라" 하십니다. "근심하지 말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터인데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하십니다.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하시는데, 이 말씀이 힘이 되십니까? 정말 위로가 되십니까? 아니면 그래도 걱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까? 성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도,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면 주변에서 "넌 믿음이 없어서" 그런다고 핀잔을 줍니다. 정말 난 믿음이 없어서 근심하고 있는 건가요?

 

2. 어떻게 근심을 안심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하신 예수님의 고별 설교를 듣고 있던 제자들은 근심과 두려움속에 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 요한복음 14장 1절에 기록하고 있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함께 읽은 본문 27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재차 강조하시는 반복된 권면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 두 절의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말씀들안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근심을 극복할 수 있는 공통분모의 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 안되는 일이 "근심"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것은 곧 불행이요 죽음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왜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힘들다고 옥상에서 뛰어 내립니까? 왜 중소기업 사장들이 부도가 났다고 해서 인생마져도 종지부를 찍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나친 근심 때문에 다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십니다. 우리의 사정을 알지 못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질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근심하지 말아라 하시면 위로가 되는 말씀이겠습니까? 당장 자금난으로 인해 죽을 지경인데 근심하지 말아라 하시면 다 되는 일인가요?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믿음이 적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말씀대로 잘 실천하지를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겁니다." 말하면, 앞에서는 "예" 하지만 돌아서는 모습속에서 "이렇게 큰 일이 터졌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는 표정이 읽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 볼 것 같으면 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지 알게 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근심은 우리를 유익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욱 크게 확대 시키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결국 그 근심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그리고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두번째 이유는,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그분의 말씀속에 근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앞에서 성도님들에게 낙천적 성격을 소유한 사람들이 장수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성도는 낙천적인 성격을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장 하늘이 무너져도 근심으로 우리의 눈을 얼룩지게 할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문제가 크면 클 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야 합니다. 거기에 소망이 있고 승리의 비결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근심하지 말라" 는 말씀으로 우리 성도들이 해서는 안될 것을 당부하신 주님께서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할 것 또한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행하여야 될 말씀입니다. "근심은 하지 말고 신뢰는 계속하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누구를 신뢰하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터이니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리니 걱정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안위함을 주셨던 주님의 모습을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하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주님은 세 마디의 말씀을 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라. 두려워 말라." 그리고는 거센 풍랑을 꾸짖으시고 잠잠케 해 주셨습니다. 몰아치는 폭풍속에서도 안심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도 인생 풍랑 한 가운데서 시련을 당하는 우리에게 동일한 위로를 주십니다. 본문 13절 상반절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말씀하고 있고, 이어지는 14절에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일을 당할 때 미리부터 걱정하여 신앙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병들게 하고, 신앙의 뒷전에서 한숨으로 지새우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근심스러운 일들이 있습니까? 한숨 쉴 일이 쌓여 있습니까? 앞이 캄캄하니 보이지를 않습니까?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죽을 일이 쌓여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에 살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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