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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9/17 국난 극복의 신앙

관리자 2017.09.16 17:43 조회 수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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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에스더 4:9-17

 

    주전 486년경부터 465년경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왕이 있었습니다. 헬라어 표기로는 세르세스왕이라고 하고 히브리어 표기로는 아하수에루스, 한국어 표기는 아하수에로입니다.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 왕국 또는 바사왕국의 왕으로(고래스, 539 바사, 바벨론을 멸망시킴/아닥사스다, 464-423,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 와스디 왕후를 페위 시키고 이스라엘 사람인 에스더를 왕후로 삼은 왕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말하기를 세계의 역사를 알려면 또 세계 역사의 흐름을 감지하려면 이스라엘 역사를 먼저 알라는 말을 했는데, 성경역사를 빼놓고는 세계 역사를 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주전 722년 이후의 역사는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달픈 역사요 피의 역사요, 방황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주전 722년에는 북왕국인 이스라엘이 앗수르 즉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고, 남 유다 왕국은 586년에 바벨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수십년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없는 백성으로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또 바벨론에서 바사왕국인 페르시아로 포로의 신분으로 고달픈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 사건중 하나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절대 권력 주의자였습니다. 독재자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서에도 잘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심지어는 왕비라 할지라도 왕의 허락이 없이 왕앞에 나오면 죽임을 당하도록 되 있었습니다. 오직 그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왕이 왕비의 나아옴을 용납한다는 뜻의 금지팡이를 내밀때만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에스더 전 왕후였던 와스디가 폐위된 것도 왕이 불렀을때 오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독재자, 절대 권력자 아하스에로 왕 수하에 하만이라고 하는 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을 무척이나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하들과 더불어 음모를 꾸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부 몰사 시키기로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그 계획을 거행하기로 제비뽑은 날이 성경 달력으로는 아달월 즉 12월을 의미하는데, 요즘 우리가 지키는 태양력으로는 2월 내지는 3월을 의미합니다. 아달월 13일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자고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아하수에로 왕도 음모에 대한 진위파악 없이 그리하라고 어명을 내렸습니다. 이 소식을 다른 사람이 아닌 에스더를 친딸처럼 양육한 모르드개가 듣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에스더 왕후에게 고하게 됐고, 이처럼 절대절명의 순간 국난 극복을 위하여 왕후 에스더를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후의 결단을 내립니다. 그 결단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포로로 잡혀 온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살려주세요" 삼일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금식하며 기도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살려달라 붙들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를 장황하게 설명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한 사람의 모함으로 국난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나라가 정치의 혼탁함과 경제의 파탄으로 인한 국난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에 에스더와 더불어 이스라엘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살펴 봄으로 넓게는 우리 나라 전체와 작게는 개인의 가정과 사업장이 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 조건을 보면 절망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정녕 망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왕후 에스더는 그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이 나라 아하수에로 왕에게는 왕의 호출이 없이 왕앞에 나아가는 자에게는 오직 죽이는 법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또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앞에 나간다고 하는 것은 불행을 자처하는 행위요 죽음을 부르는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하던 시대였습니다. 여차직 하면 왕후도 목숨을 잃을 판입니다. 그래서 백성을 살려달라고 전하는 모르드개가 보낸 전령의 말을 듣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왕후 에스더는 말하기를 "왕이 자기를 부르지 않은지 이미 30여일이 지났기 때문에 임의대로 왕앞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는 길은 오직 하나,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왕앞에 나갔을 때 왕이 에스더 왕후를 어여삐 보아 금홀 내밀기를 바라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개인도 나라도 세상 조건을 보면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에 대한 소문과 불안감이 고조되 있는 현실입니다. 북한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미사일을 날려대고 있습니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핑계삼아 우리나라에 경제 보복을 하고 있습니다. 뉴스에 롯데가 매장들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이제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거라고 했습니다. 핵무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미국은 군사적 행동을 옵션 테이블에 올려 놨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최대의 국가적 위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암담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라 안팎에서 전쟁을 운운하고 있는 현실인데 국민들은 먹거리에 대한 투정을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노조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파업을 하며 노동 수당 더 올리라고 데모들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도산되건 말건, 물건이 팔리든 안팔리든 챙겨갈 월급은 챙겨가겠다는 겁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정치다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당파싸움에 혈안들이 되 있습니다. 지금 나라 사정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줄로 압니다. 국민 모두가 정신 차릴 때입니다. 특히 예수 믿는 성도들이 솔선수범 매사에 본을 보일 때인 줄로 압니다. 어찌되었든 세상 조건 보면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하루 하루가 불안합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대한민국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래야 공의가 살아나고, 거짓된 세력들이 살아지게 될 겁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심은 바로 이러한 난국을 위함이 아닌가 하는 시대적 사명감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더 왕후가 거절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모르드개가 다시금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합니다. 네가 만일 잠잠하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 백성을 살리시겠지만 정녕 너와 네 집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아하수에로 왕이 보기에 그저 망한 나라에서 끌려온 전쟁 노예에 불과한 보잘것 없는 신분의 에스더를 하나님께서 한 나라의 왕후가 되게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하면서 사명과 책임의식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르드개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왕후인 에스더도 할 수 없다고 하면 모든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더 이상 기댈 대가 없다고 생각하여 포기 모드로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말하기를 에스더가 아니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나라와 민족을 구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도,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인들과 또한 국민들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살펴 보더라도 군사력이 강하다고 해서 모든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했거나 부강한 나라가 된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돕고 돕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 나라를 살리실 것이라고 하는 그 믿음이 아쉬운 때인 줄로 압니다.

 

3. 절대 신앙만이 국난을 극복케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모르드개의 비장한 말을 들은 왕후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익히 조상들을 통해 들었을 에스더입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수많은 대적들을 물리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셨던 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결단을 하고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모든 백성들은 에스더 왕후 자신을 위해 밤낮 삼일동안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금식하라는 말입니까?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전심전력을 다하는 신앙의 마음으로 매달리라는 말입니다. 본문 17절의 말씀에 보니까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온 백성들이 에스더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이 명령은 너와 내가 사는, 더 나아가서는 우리 모두가 살고 나라를 살리는 명령입니다. 이런 명령에는 순복할 때 복이 됩니다. 우리를 살리는 유익된 명령에는 순종할 줄 모르면서 망하게 하는 명령에는 맹종하는 어리석음에서 이제는 탈피할 때가 되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금식으로 기도에 동참하니 어떤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사흘 금식기도한 후 에스더 왕후가 왕앞으로 나가게 됐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녹아진 마음을 가지고 있던 왕 아하수에로 눈에 비친 왕후 에스더는 사랑스럽고 아름답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래서 5장 2절의 말씀에 보면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미니"했습니다. 어찌나 사랑스러웠던지 왕은 묻지도 않은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가 소원한다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했습니다. 이틀간 계속된 잔치에 참석한 왕은 흡족하여 연일 에스더를 볼때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다 주겠다" 호언을 합니다.

 

    7장 3절이하에서 에스더 왕후는 드디어 마음에 품은 소원의 말을 왕에게 고하게 됩니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했습니다. 모함으로 인해 이제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자기 민족이 다 죽게 되었는데, 자신의 목숨과 백성들의 목숨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놀란 왕은 7장 5절에서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진노하게 됩니다. 에스더는 주저하지 않고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라고 고변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기로 한 그날에 그것도 모르드개의 목을 매달기 위해 자기 집 마당에 세운 그 교수대에 하만 자신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신앙만이 이 나라가 살 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이 우리가 살 길이고, 이 나라가 살 길임을 믿는 자들이 먼저 깨달아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기도가 가정을 살리고, 사업을 살립니다. 기도만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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