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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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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태복음 5:5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에게 주어질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삼사 대씩 예수를 잘 믿어 온 집안치고 현세적으로 궁핍한 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단순히 죽어 천국에 가는 데에만 있지 않고, 실제적인 것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오늘 여덟까지 복된 말씀 중 하나인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온유함을 원하십니다.

1. 온유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온유한 자라는 말의 어원적 뜻을 살펴 볼 것 같으면 "성을 내지 않고 자제하며 침착하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예의 범절을 아는 자"라고 하기도 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고 인내력이 있는 자로서 그들이 당한 악행에 대해 복수하지 않는 자"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으며, "격분과 태평 무사의 중간에 해당하는 중용의 의미"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1) 온유라는 말은 결코 무능하고 약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온유하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성격의 온순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라는 말이 온순하다는 성격도 포함하겠지만, 단순히 순함을 뛰어넘는 의미의 말입니다. 무능이나 약함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온유한 사람은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이나 행동에 여유가 있습니다. 반면에 약하고 무능한 사람은 매우 조급합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지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거역하거나 침범할 수 없었던 가장 강하신 분이었습니다.

    2) 온유한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됩니다.
    사람의 성품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중 선천적인 성품을 우리는 "천성"이라고 하며 후천적인 것을 "습관"이라고 합니다. 후천적 성품은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사람의 모든 성품이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는 천성도 아니고 습관도 아닙니다. 온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계신 성품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마11:29).

    온유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배우며 닮아 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온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온유한 성품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훈련을 통하여 온유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2. 무엇보다도 성도는 하나님께 대하여 온유한 자가 되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순종은 복종과는 달리 강제성을 띠지 않습니다. 순종은 따르는 자의 자발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온유한 자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에 인내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고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지 못함으로 실패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유한 성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성도는 이웃을 향해서도 온유한 자가 되야 합니다.
    1) 성을 내지 않거나 분을 내더라도 쉽게 가라앉히는 것을 말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 만큼 상대방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내면적인 불안정과 불편함을 그대로 남에게 신경질적으로 전가합니다. 이런 사람이 가는 곳마다 평화와 질서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약1:20). 온유한 사람은 마음의 분을 자제하고 참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거나 당황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온유함으로 이웃에 대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안을 심어 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2)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을 말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세상 법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용의 행위는 온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능력으로는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로마 군병들의 죄악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를 향한 모든 반대자들의 핍박과 고난과 저주를 묵묵히 감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와 같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행위야말로 이 세상에서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며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온유함에서 비롯됩니다.

4. 온유한 자가 누릴 수 있는 복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땅은 인간의 삶에 있어 그 근거가 되는 아주 귀중한 자산입니다. 모든 동식물의 생존 터전이며 존재의 바탕이 됩니다. 이러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무력으로 땅을 소유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 같은 이들이 무력으로 땅을 얻기 위해 애를 써 보았지만 결국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온유한 성도에게는 그들이 땅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거나 다투지 아니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준비된 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온유한 자들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을 받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들의 영역은 그들을 용납하고 반기는 사람들 만큼 넓혀져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온유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온유함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은혜안에 사는 자 되십시다.

    의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학자 에드워드 요나단 목사와 술집을 경영하여 거부가 된 믹스 슐츠의 5대에 걸친 후손을 조사하여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한 글이 있는데, 상당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요나단 목사의 후손 5대를 살펴보니 총 896명 중 선교사나 목사가 116명, 교수가 86명, 이중 총장이 3명이며, 문필가가 75명, 상하의원이 4명, 실업가가 73명 등이었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술장사로 돈을 번 슐츠의 후손 5대의 내력을 보면 총 1062명 후손 중 전과자가 96명, 알콜 중독자가 58명, 창녀가 65명, 극빈자가 286명, 배우지 못한 무식자가 460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조사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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