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수요강단

수요강단-부러워하는 죄

관리자 2017.07.05 18:44 조회 수 : 5

Add movie file / 동영상 추가  

본문말씀: 잠언 24:19-22                                                                       찬송: 360/364

 

    부러워 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지요? 사실 사람들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느 한 순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현 생활에 100%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금술 좋은 부부라도 때로는 자신의 처한 처지가 넉넉하지 않을 때, 넉넉하고 여유있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갖기도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아 결국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부러워 하다보니 자신에 대한 불만이 싹트게 되고, 그 불만은 결국 자신을 죄 가운데로 몰아넣게 됩니다. 따라서 도에 지나친 부러움의 생활이 죄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상대방을 시기하게 되고 질시로 인해 이유없이 미워하게도 되고, 때로는 자신을 비하시켜 불평을 일삼는 생활을 하게 되니 죄악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 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는 것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말은 사람들의 시기심리를 잘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축하해 주고, 같이 기뻐해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같은데, 이상하리 만치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곱게 봐 주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어느면으로 보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애교적으로 받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더욱 위험한 것은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 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무더운 날씨에도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드린 결과가 무엇인가? 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주말마다 시원한 곳으로, 물가로 찾아다니며 흥청 거리며 살아도 잘 살기만 하던데"라고 하는 생각은 자칫 자신의 신앙을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 하는 유혹을 물리칠 줄 알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의 잘됨을 수단이 좋은 결과라고 잘못 생각해서 흉내 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물의 겉만 보고 판단하여 부러워 하다가는 자신도 어느 순간에 병들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고집을 가지고 더뎌도 신앙의 정도를 걸어가며 살아갈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이런 유혹에 대한 방어책이 있습니다(20절).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종국을 생각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고, 하는 것 마다 다 잘되는 것 같고, 성공하는 것 같아 보여도 악인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게 될 때에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부의 매력은 시들어 버리고, 교만해 하는 인간의 번영은 연기 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막강 군사력으로 수 많은 유태인들을 공포로 몰아 넣어 죽였던 히틀러가 어디에 있습니까? 역사는 그를 가리켜서 살인마라고 합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차라리 좋았을뻔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악인은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위안삼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삼아 자신의 신앙을 돌아 볼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초가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은 내게 없지만..."이라고 하는 복음송 가사를 생각해 봅시다. 값진 재물은 비록 없고, 단칸방에서 온 식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산다 해도 예수님만 모시고 산다면,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남부러울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신앙 가지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만 모시고 바른 신앙으로 사세요. 그러면 행복합니다" 하니까 현실성이 없어 보이나요? 그러나 인생을 살만큼 산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는 말이, 재물이 많고 적고가 행복을 좌우하는 것만은 아니더라고 이야기 합니다. 높은 자리 올라가 보고, 성공해도 그것이 꼭 행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 말들을 합니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되려고 애를 쓰다가 대통령이 되고, 물러난 사람들, 그들의 노년 삶이 행복해 보이던가요? 아마도 그들 모두 살아온 자신들의 개인 역사를 돌아보며, "다 부질없는 일들이었어" "다 헛된 일이야" 속으로 그렇게 고백들을 하고 있을겁니다. 마음이 편해야, 가정이 평온해야, 건강해야 그것이 행복이더라 말합니다. 그 강건과 평강의 축복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3. 하나님 신앙과 도덕성 회복만이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21,22절).
    잠언서 24장 21절 에서 말씀하는 "여호와 경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또한 "왕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도덕성 회복을 통한 충성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충성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축복의 근원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의한 자들에게 충성하다가 패가망신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만유의 주 되시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시는 성도들은, 그 날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영원한 나라에서 영화로운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행치 않는 자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도 행치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인데, 사람인들 두려워 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이처럼 하나님 신앙도 없고, 도덕성도 잃어 버린 물질의 번영과 성공만을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 신앙안에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은 학개서 2장 8절에서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온갖 난국을 극복해 보려고 군사력을 키우고, 이웃 나라와 동맹도 맺어 보고, 경재력도 발전시켜 보고 등등 온갖 방법을 총 동원하며 발버둥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라, 나는 만유보다 크다"하십니다. 악한 자들의 번영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복의 원천이 됩니다. 예수 안에서 이런 행복, 이런 축복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