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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11/5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

관리자 2017.11.11 10:00 조회 수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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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출애굽기 3:1-5

 

    누군가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행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거기에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야 세상 그 무엇으로도 측량할 수 없고, 값으로 따지거나 갚을 길이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인으로서 기본 사항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도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는 누구일까요?

 

1. 자신의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다른 일들 특별히 가정과 자신에게 주어진 생업에 대해 등한시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것은 창조 섭리에서도 잘 읽을 수가 있는데, 하나님은 가정을 위해서 땀흘려 일하라고 하셨고, 일주일의 엿세동안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할 것을 명하신 바가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할 일 없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9절 이하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자기의 후임으로 엘리사를 부를 때, 엘리사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엘리사는 열두번째 겨리 소와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 겨리는 소 두 마리를 말합니다. 소 두마리가 짝을 이뤄 농사일을 돕는데,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 그는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일에 충실한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하는 성도를 부르십니다.

 

    간혹 생활 능력이 있네 없네 하는 말이 오고가는 것을 듣습니다. 생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기본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당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양무리를 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머물때 그의 일은 목축업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에 대해서 충실했던 모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성도를 사랑하시고 부르시며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 되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누리며 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산에 오르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주어진 업에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산을 가까이 하는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의 성전을 가까이 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가까이 하면 세상을 닮아 갑니다. 그러나 성전을 가까이 하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파란색 물감을 가지고 놀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손과 옷에 파란색물이 들게 되 있습니다. 빨간색 물감을 가까이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빨간색물이 들게 됩니다. 이건 상식이고, 삶의 이치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너무 사랑하면 그 심령이 세속화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늘 듣고 보고 배우는 것이 세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닮아가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1대1로 만나는 신앙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산에 오르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신앙이 좋다 하는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 하지 않고, 말씀 듣는 일에 열심을 다하지 않으면 그 신앙 생명 유지해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요, 오만 불손한 태도입니다. 성전을 가까이 하지도 않는데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말씀을 듣지 않는데, 어찌 신앙이 성장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요즘은 미디어 시대라 얼마든지 방송을 통해서도 말씀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척 하는 것 원치 않으십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주의 성전에 나와 말씀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성도를 축복 하십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줄 아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가까이 이른 모세에게 하나님은 "모세야 모세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그 즉시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줄 모르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수가 없습니다.  '너 지금 가는 길이 신앙의 길이 아니니 돌아서라' 하시는 부르심의 음성이 우리의 양심 스피커를 통해 분명 들려올 겁니다. '네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니 버려라' 하시는 음성이 분명하게 들려올 겁니다. '너 지금 하나님 앞에서 손익계산을 따지고 있느냐? 그것은 올바른 성도의 모습이 아니니 버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순간마다 우리의 심령을 두드리고 계실겁니다. 그런데 스스로 거부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신실하게 답변하는 성도 됩시다

 

4. 하나님앞에서 신을 벗어드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은 대답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존전에서 신을 벗으라 명하셨습니다. 사막에서 신을 벗는다고 하는 것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광야 길이 얼마나 거칠겠습니까? 광야길에서는 발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을 신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벗으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신을 벗음은 자신이 의지하던 것을 벗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의지해 오던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물질일 수 있고, 자녀일 수 있고, 남편이나 아내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의지해 오던 것을 주 앞에서 벗을 수 있느냐' 하시는 신앙의 결단을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신을 벗는 것은 종의 신분으로 자신을 낯추는 행위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은 신분을 나타내 주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노예나 종들은 신을 신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축복하십니다. 또한 신발을 벗으라 하심은 인간의 냄새가 나는 신을 신고는 하나님의 성도라, 또 일꾼이라 부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교만과 죄로 얼룩진 신을 벗어 들고 주님을 따르라 명하고 계십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하시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성도 되십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에 응답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벗어 던짐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 되어 이 땅위에서 하나님과 동행 하는 가운데 승리와 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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