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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11/12 신앙과 바른 봉헌 생활

관리자 2017.11.11 13:39 조회 수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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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말라기 3:7-12

 

    성경에 예수님은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과 물질 두 가지를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다른 의미를 살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물질과 함께 하고, 또 물질로도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말씀에서도 곳곳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는 법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데, 그 방법론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신앙과 바른 봉헌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흔히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는 물질에 의한 사랑 표현이 일반적입니다. 물질은 곧 마음의 상태 표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성도님들에게 신앙생활과 헌금 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헌금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그 첫째가 예배 예물이고, 둘째가 감사 예물이며 셋째가 십일조 예물입니다. 성경말씀을 근거로 해서 이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헌금 설교란 쉬운 설교가 아닌줄 알지만 우리 성도님들의 바른 신앙생활과 축복된 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말씀이기에 본문을 기초로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예배 예물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6절로 17절의 말씀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앞에 나와 예배 드릴때에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하셨고, 또한 예물을 준비할 때에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리라"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예배 예물에 관하여 크게 다섯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제물이 있습니다. 번제는 헌신적인 삶을 상징합니다. 번제예배를 드릴 때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나 새를 가져와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도록 되 있습니다. 이 예배와 제물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된 인간의 전인적 헌신이 있을 때에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이 번제가 담고 있는 거룩한 뜻입니다.

 

    소제물이 있습니다. 소제는 순수한 생애로 산제사를 드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소제의 제물은 고운 밀가루입니다. 이 소제의 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금하였습니다. 순수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성도들의 생애가 소제의 제물처럼 순수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화목제물이 있습니다. 화목제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상징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에 성도는 먼저 하나님께 정성된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앞에서 누리는 성도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속죄제물이 있습니다. 죄사함을 위한 제사와 예물을 상징합니다. 즉 죄로 인하여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대신해서 짐승을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드림으로 자신의 죽음을 대신케 하는, 즉  죄사함을 얻게 하는 제사와 예물이 바로 속죄제 예배요 예물이 갖는 의미입니다.

 

    속건제물이 있습니다. 흔히 속죄제와 혼동되기 쉬운데, 분명히 구분되는 것은 속죄가 하나님께 대한 죄의 회개 예배라면, 속건제는 사람간에 지은 죄애 대한 속죄 의식입니다. 즉 남의 권리를 침해했거나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에 그에 상응하는 변상과 아울러 속건제를 드림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속건제의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나 새가 되었고, 상대방에게 입힌 손해의 배상액도 포함시켜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구약성경에는 예배 의식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제사법과 드려지는 예물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회개를 떠나서는 속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회개는 말로만, 또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기에 행동과 보상이 동반되야 한다는 것을 이 예배의식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마음의 감사 표시요, 죄에 대한 회개의 표시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코 봉헌 생활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생활에서 항상 감사의 예물이 넘쳐나게 해야 합니다. 
    감사 예물이란 생활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표현입니다. 흔히들 일반적으로 볼때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으면 자기를 위해 뭔가 큰 일을 해준 사람에게 감사 표시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드리는 것은 받은바 은혜가 감사해서, 주신 축복이 감사해서 드리는 감사에 대한 표현방식입니다. 이 감사 예물에는 절기 예물까지 포함이 됩니다.

 

    신년 감사예물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하는 예물입니다. 부활절 감사예물이 있습니다. 부활의 은혜로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심에 대한 감사예물입니다. 맥추 감사예물이 있습니다. 지난 반년동안 지켜 주시고 돌보시며 축복해 주신데 대한 감사절 예물입니다. 추수 감사예물이 있습니다. 지난 일년동안 모든 소득을 풍성케 하시고 축복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예물입니다. 성탄절 감사예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물입니다. 송구영신 감사예물이 있습니다. 지난 일년동안 지켜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해를 맞이하게 하심에 대해 드리는 감사예물입니다. 그외에도 감사의 이름을 붙여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감사 예물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때에 우리의 정성과 성실한 감사의 마음이 포함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함께하지 않는 예물은 열납하지 않으십니다.

 

3. 십일조 예물에 대한 바른 봉헌 생활이 나타나야 합니다.
    십일조 헌금이란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십일조 예물을 드림에 있어서 간혹 십일조를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십의 일조는 말 그대로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입니다. 예전에 어떤 성도는 헌금에 대해서 상담할 때 세금도 내야 하고, 아이들 학비와 학원비도 내야 하고, 공공기금도 내야 하니까 그런것은 의무적 지출이므로 이런것을 제외한 나머지 소득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 아닙니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십의 일조는 내 생활의 지출을 먼저 떼어놓고 나머지 가운데서 십분의 일을 계산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 예물에 대해서 세분하자면 우선 먼저 소득의 십일조가 있습니다. 레위기 27장 30절의 말씀에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고 했습니다. 곧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첫 열매 감사예물 역시도 사실 따지고 보면 십일조 예물에 속합니다.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듯 모든 소득의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과실과 곡식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의 첫 새끼도 하나님의 것이라 하셨고, 심지어는 자녀들 가운데서도 맏아들은 하나님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미 역시도 여기에 속합니다. 성미란 뭡니까? 성도님들이 식사준비를 할 때에 쌀을 뜨는 과정에서 첫 숫갈을 먼저 떠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모든 첫것은 하나님의 것이라 하신 말씀에 대한 실천입니다. 에스겔서 44장 30절의 말씀에 보면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특별예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미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가정의 복이 임하게 하는 길이 된다 했습니다. 바른 봉헌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그렇다면 성경이 이처럼 봉헌 생활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봉헌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사랑 정도를 알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봉헌 생활을 통하여 만유의 참된 주인은 오직 여호와만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참다운 봉헌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봉헌 생활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수기 16장 10절의 말씀에 보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드리는 예물, 마지 못해 드리는 예물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서 1장 13절의 말씀에 보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즉 형식에 치우친 예배나 봉헌 생활은 결단코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말라기 1장 8절에서는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란 내가 쓰고 난 다음 남는 것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물질적 여분이 있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 아닙니다. 남는 것으로, 여분의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눈먼 희생이 아니겠으며, 병든 예물이 아니겠습니까? 학생을 둔 부모님들 계시죠? 아이들 학원비 떼어 놓기전에 하나님의 예물이라고 먼저 구분해놓고 사용하시는지 신앙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바른 봉헌생활은 하지 못해도 아이들 학원은 보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넘치는 축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주시는 축복이 자신의 기대에 못미친다 생각되면 신앙에 시험이 들고 병든 모습을 보일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처럼 형식에 치우치고 바르지 못하게 드리는 헌물에 지쳤다고 하셨습니다. 신물이 난다 하셨습니다. 다시는 그런 형식적 예물을 하나님께 가져오지도 말고 드리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저 역시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성도로서 이렇게 삽니다. 수입이 생기면, 모든 소득의 십의 일조를 가장 깨끗한 것으로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감사예물을 준비하고, 선교헌금과 헌신예배 예물을 준비하고, 주일 헌금을 준비해 드립니다. 오늘 본문 10절의 말씀에 보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바른 봉헌생활하는 성도를 하나님은 도우시고 축복하사 황충을 금하심으로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으시고, 모든 과실이 기한전에 떨어지는 법이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모든 재앙으로부터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필요치 않는 지출은 하나님이 막아주시며, 나아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을 것이며, 심지어는 가정의 떡반죽 그릇에 까지도 복으로 채워 주시겠다 하심입니다.

 

    성도의 바른 신앙생활과 바른 봉헌생활은 반드시 비례합니다. 바르게 신앙생활하는데 바르게 봉헌생활 못하는 성도 없으며, 바르게 봉헌생활하는 성도인데 신앙생활이 바르지 않은 성도 또한 없습니다. 생활에 늘 물질적인 어려움이 떠나질 않습니까?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께 바른 봉헌생활을 하고 있는가? 둘째는 과한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이 두가지 사항에 거리낌이 없다면 물질적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바른 봉헌 생활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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