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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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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고린도전서 3:10-17

 

    인생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해서 설명하는 글귀들이 참 많습니다. 요즘은 건축술들이 하도 많이 발달되서 건물 모양새도 다양하고 재료도 다양하고 정말 보기에도 아름다운 집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건물은 유럽에서나 볼수 있음직한 모양새를 가춘 것도 있고 옛날 우리나라 초가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집도 있습니다. 그 모양새가 다양화 되었습니다. 요즘 나이든 사람들의 로망은 전원주택을 짓고 노후를 보내는거 아닙니까? 취향도 다양하고 생활 환경도 다양화 되었습니다. 예전의 집들은 담을 높이 쌓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요즘 짓는 아파트나 주택들은 담이라기 보다는 울타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모양새만 내 짓고들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지어야 할 인생의 집이 있습니다. 싫든 좋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남겨야 할 흔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생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만의 독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파트나 집은 건축 설계된 대로 열채든 스므채든 얼마든지 똑같이 지어낼 수 있지만 인생의 집은 한 사람의 설계대로 모양새부터 생각하는 것, 말까지 다 똑같이 지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집과 유형적인 건물과의 그 건축면에서 절대적으로 차이를 나타내는 다른 점들입니다. 그래서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은 때로는 자신만의 고독과 싸워야 하는 길이고, 때로는 질병의 고통으로 인해서 몸부림 치기도 해야 하는 길이고, 때로는 원치않는 슬픔과 눈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지어온 여러 성도님들의 인생 집은 어떻습니까? 혹여라도 부실 공사로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살아온 기간은 짧은데 벌써 얼룩진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제대로 된 각자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인생의 집을 짓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인생의 집을 짓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스럽고 성령께서 거하실만한 집을 짓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건물들은 공정을 단축해서 빨리 짓기도 하고 모양새도 달리 할 수 있지만, 인생집은 지름길이 없고, 같은 모양새로 국화빵 찍어내듯 남들과 똑같이 지을 수가 없습니다. 조그마한 건물이라도 지으려면 건물을 세우기에 앞서서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이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집을 세우게 되면 그것이 곧 부실공사가 되는 겁니다. 먼저는 건축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짓고자 하는 집의 설계 도면이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집이 들어설 터가 있어야 하고, 집을 세울 건축 재료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그 집 제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인생집 건축에 대해서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인생집의 건축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의 집을 대신 지어줄 수 없는 것 처럼 자신의 집은 자신이 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문말씀 10절 하반절에 보면 닦아 놓은 터위에 사람들이 각각 집을 짓게 되는데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한번 세워진 인생 집은 다시 헐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해서 지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세울 것인가 조심하여 세우라고 하시는 말씀을 주의깊게 듣는 시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렸을 때에 모래성도 쌓아보고 모래집도 지어 봤을 겁니다. 저도 어려서 재미있게 놀던 생각이 나는데 손등위에 모래를 잔뜩 올려놓고 단단해 지라고 두들기면서 부르던 노래가 기억 납니다. 성도님들도 아직 기억들 하실 겁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께 새집다오" 하면서 열심히 두드리다가 손을 살그머니 빼면 손이 들어 있던 곳에 자리가 생겨서 두꺼비 집이 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짓굿은 아이라도 나타나면 그 집을 발로 밟아서 금새 무너 뜨려 버리고 맙니다. 두꺼비 집이나 모래성처럼 허무한 집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집을 많이 지었어도 두꺼비 집과 같은 집을 지어서는 그거 칭찬 듣지 못하는 겁니다. 잘했다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없는 풍파가 몰아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요즘 젊은 청년들을 보면 염려스러운 것이 다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너무나도 뭐든지 쉽게 할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도 전과는 달리 학원 의존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지 않습니까? 시대에 뒤 떨어진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가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으면 그에 맞게 열심히 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꼭 1등을 해야만 하는 겁니까? 꼭 최고의 대학만 가야하는 겁니까? 자신의 인생목표를 위해 착실하게 준비해 나간다면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해도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 아니겠습니까? 짧은 시간내에 더 큰 효과를 거두게 하려는 공부 방법, 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단 한 가지 예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약은 수단으로 생각속에 자리매김해서 인생 또한 그렇게 살아가려 할까 염려 스럽습니다. 집도 쉽고 빠르게 지으려 하다 보니 무너지는 것이고, 일도 공부도 좀더 쉬운 방법을 찾아 하려 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세계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쉽게 하려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요령있어 보이고, 좋아 보일런지 모르지만 그것처럼 불안한 것은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 인생의 집, 내 신앙의 집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지어야 하는 겁니다. 부모님이라고 내 인생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고, 사랑하는 부부나 애인 사이라고 해도 대신 지어줄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는 개인별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는 단체 출발이 없습니다. 설사 사고로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같이 죽는다 해도 결국 죽음은 개인의 몫입니다. 이제까지 내가 내 인생 집의 건축자가 되어서 어떤 모양새의 집을 지어오고 있었는가 이 시점에서 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혹여라도 기둥이 튼튼하지 못하다 생각되면 믿음의 보조 기둥을 세워서라도 세월이 더 흘러가기 전에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벽이 부실하다 생각되면 말씀의 벽지를 붙여서라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나중 하나님 앞에 서게 될때에 자신이 지은 집에 대해서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 기억하여 각자에게 주어진 각자 인생의 건축자로서 신앙가운데 충실히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인생의 설계 도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야 합니다.
    설계가 잘못된 대로 집을 짓다가 보면 나중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다시 다 헐어 버리던가 아니면 총체적으로 다 뜯어 고치기전에는 제대로 된 집 나오기가 힘이 들 겁니다. 그래서 집을 짓는 건축가들은 설계도면을 중요시 여깁니다. 또 설계 도면대로 집을 지어야 튼튼한 집이 됩니다. 오래전 사고 이야기이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진 이유도 설계 도면대로 건축하지 않아서 온 결과가 아닙니까? 삼풍 백화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포항지진 피해가 컸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설계 도면대로 짓지 않다보니 또 설계도면에도 없는 모양새로 개축을 하다가 보니 무너져 큰 참사를 불러오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설계 도면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지어야 튼튼하고 견고한 집이 완성됩니다. 순종에 대해서 늘 강조합니다만 순종의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만 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씀은 저만큼이나 멀리두고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따라 임의대로 집을 짓다 보니 이것은 신앙의 집이 아니라 불신앙의 집이 되는 것이고, 순종의 집이 아니라 불순종의 집이 되는 것이며, 사랑의 집이 아니라 미움이 가득한 집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기가 힘들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선뜻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지나오고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지름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에게는 거기까지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육신의 안목으로만 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면 남들이 볼 수 없는 축복의 길을 볼 수있고,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축복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믿음의 눈으로 보려하질 않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생의 집을 지읍시다. 하지 말라 하면 하지 맙시다. 잠시 잘못된 생각이 틈타서 원치 않던 길로 들어섰더라도 깨달았으면 돌아서서 하나님의 길로 들어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생각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마추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속에 우리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따라 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길이고 그것이 축복의 길입니다.

 

3. 인생의 집을 지을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본문 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집을 지을 때에 중요시 여기는 것은 집지을 터입니다. 터를 잘못 잡으면 집에 물이 생기고, 지반이 튼튼하지 못한 곳에 세우면 얼마가지 않아 벽에 금이 가고 조그마한 지진만 나도 무너져 내려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고, 기가막힌 설계도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터가 견고하지 않으면 제대로 집을 지을수가 없습니다. 세웠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해 무너지거나 금이 가버리고 말 겁니다. 마태복음 7장 24-27절의 말씀을 가사로 삼아 지은 찬송에도 있는 것처럼 "모래위에 세운 집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게되면 그 집이 무너지게 되는데 그 무너짐이 심히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터가 든든한 반석위라면 그위에 설사 재료가 별로 좋지 않은 초가집을 짓는다 할지라도 그 집은 반석위에 지은 연고로 든든히 서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내가 지을 집의 터가 중요합니다. 어떤 터위에다가 자신의 집을 짓고 있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백그라운드라는 터 위에 자신의 인생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식이 최고지 해서 자식을 터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권력이라는 터위에 집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터위에다 집을 짓기도 합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터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예나 자신의 외형적인 어떤 조건을 터로 삼고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을 터는 오직 반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시편 95편 1절의 말씀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고 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 되신다고 했고 바위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인생 집을 지을 재료는 신앙입니다.
    집을 지을 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지을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설계도면도 있고 건축할 사람도 있고 터도 있지만 재료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자인 자신도 있어야 하고 믿음의 터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계셔야 하고 설계도면인 하나님의 말씀도 있어야 하고 또 이 모든 것을 한데로 묶어 나타낼 수 있는 신앙의 재료들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집을 완성시키는데 그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성경 말씀에 "어떤 사람은 금으로 짓고 어떤 사람은 은으로 짓고, 어떤 사람은 보석으로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나무나 짚으로 짓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집을 어떻게 해서든 짓는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중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심판때의 심판 방법은 불로 심판하신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불에 다 타버리기 때문에 세운 공력이 나타날 수 없어 결국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에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관한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는다고 다 같은 신자가 아니라는 의미의 말씀인 겁니다. 모두가 똑같이 반석되시는 예수님을 터로 삼고 그위에 믿음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의 집을 짓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좋은 터위에 보잘것 없은 나무로 또 짚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어떤 성도는 온갖 정성 다 기울여서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는 성도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을 재료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또 나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는 참된 신앙과 형식적인 신앙을 말합니다. 견고한 신앙과 흔들 거리는 신앙을 말합니다.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변함이 없는 신앙과 오늘은 개인 날씨이다가도 내일은 궂은 날씨로 변해 버리는 조석으로 변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그저 집을 지으라고 하니까 짓기 쉽고 자기 희생이 별로 들어가지 않는 나무나 짚으로 짓는 것은 집을 지엇다는 이름만 짓는 것으로 형식에 치우친 신앙을 말합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형식이 아닙니다. 희생입니다. 헌신입니다. 충성입니다.

 

    금, 은, 보석보다 귀한 믿음으로 자신의 집을 아름답게 지어서 주님앞에 칭찬듣고 축복받는 한해였습니까? 나중 주님께서 불로 심판하실때 그 심판의 불에도 타지 않아 지은 공력이 그대로 나타나 주님의 은총 가운데 영원한 삶을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올 한해 동안 희생으로 신앙의 집을 지으셨나요? 헌신으로 신앙의 집을 지으셨나요? 충성과 봉사와 전도로 믿음의 집을 지으셨나요? 그리하셨다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넘치며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형통케 되어지며 경영하는 사업마다 번창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반석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위에 말씀을 기초로한 믿음으로 아름다운 인생집들을 지어 승리하시고 넘치는 은혜로 축복받는 성도님들의 생애가 되시기를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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