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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히브리서 강해 8

관리자 2017.02.15 17:29 조회 수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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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들 6:1-20
    (1) 퇴보하거나 타락하지 말 것 6:1-8
1-2절:
    [우리가]란 말이 머리에 있는 것은 편지를 보내는 이나 받는 이가 둘 다 한가지로 힘쓰자는 뜻을 보인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 갈라디아서 5장 19-21절과 로마서 8장 5-8절과 같은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과,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과 디도서 3장 1-7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사도행전 8장 16-17절에 있는 침례를 받고 안수하는 일이나 사도행전 2장 31절과 24장 25절의 부활과 심판 등등의 문제와 같은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 교리의 초보라 할 수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 같은 초보적인 신앙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고 강권하고 있다. 본 구절의 의미는 기독교의 초보적 교리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초신자들에게는 항상 필요한 것이지만 믿은 지 오래 되어 이제 한 사람의 성숙한 신앙인이 될 때에는 이 초보적인 교리에서 떠나 보다 깊은 진리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는 5장 12절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와 같은 뜻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도]와 [말씀]에 대한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즉, 문장 전후 문맥을 살펴 볼 때 [말씀]은 신앙의 초년생이 알아야 할 교리의 일반적인 원리를 가리키는 것이라 한다면, [도]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 원리, 다시 말해서 본문을 통해 나열하고 있는 여섯 가지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세례들]이란 것은 유대인의 결례와 침례 요한의 물세례와 헬라인의 관례나, 불세례, 침례 등등의 문제를 포괄한 것인 듯 하다.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교리의 초보에 해당된다는 의미다.

 

3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그런 기초적 문제에서 오래 머물지 말고 진보한 교리인 예수의 제사장되는 것 곧 멜기세덱의 반차에 의하여 영원한 속죄제의 깊은 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인데, 이와 같이 [완전한데 나아]가는 길의 인도를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우리가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앞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완전한데]를 7장 이하에 있는 멜기세덱에 대한 말씀과 연계하여 볼 때 7장 이하의 말씀이 그리스도 교에 깊이 들어간 완전한 교리로 여김이 분명하다 하겠다.

 

4-5절:
    [한 번 비췸을 얻고]의 말씀에서 [비췸]에 대해서 2세기 중엽 져스틴(Justine)은 [세례]와 동일한 말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특수한 의식을 지칭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한 번]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인 것으로 보아 단 한 번에 일어난 어떤 결정적인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즉 반복될 수 없는 중생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브라운(Brown)은 [비췸을 얻고]에 대한 말씀을 신약성경의 비유적인 표현이 지니는 일반적인 의미에 따라 [가르침을 받는다]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도를 알게 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또한 앞뒤 문맥을 볼 때 적합한 해석이라 여겨진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라는 표현에서 [하늘의 은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 사이에 여러 가지로 분분하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늘의 은사]를 세례를 받거나 처음으로 직분을 받거나 할 때에 감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이 [하늘의 은사]를 [그리스도-Bengel], [성령-Vincent], [성찬-Weiss, Davidson], [믿음에 의한 적의 용서-Chrysostom],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Westcott]등의 견해를 따르는데, 이 중 [성령]으로 해석하는 견해는 다음에 오는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라는 언급과 중복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은 오히려 전체를 포함하는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에 대한 말씀의 해석은 열심이 나서 복음을 증거하거나 교회에 봉사하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나타나는 신앙의 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상근 박사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성령은 어떤 특수 인물에 독점되지 않고 모든 성도가 다같이 성령의 은사를 받고 거기에서 성스러운 교제를 가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본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귓가로 흘려 버리는 형태의 들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서 체험하는 기쁨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유권자가 되었으니, 내세가 성도 안에 임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일이 일시적인 은혜가 분명 아닐 것인데, 참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타락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본 구절 해석에 도입하자면 돌짝 밭에 뿌리운 씨는 움이 나오다가도 해가 나고 바람이 불게 되면 마르고 더 이상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해석할 수 있다. 

 

6절: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란 말씀 가운데서 타락에 대한 말씀은 히브리서 6장 6-8, 10장 32-39에 나타났는데, 칼빈 신학에 의거하면 사람이 만일 예수를 믿고 거듭난 다음에는 거룩하게까지 되어서 구원에 이르게 되나, 만일 예수를 영접하고 믿기는 하였으나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지 못하면 곡식 씨가 돌짝 밭에서 싹이 나왔다가 말라 죽게 되는 것과 같아 결국에 가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석하였다.

 

    본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타락한]은 3장 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떨어짐]과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상근 박사는 이 말씀에 대한 해석으로 어떤 죄를 범했거나 신앙이 시험을 받아 일순간 동요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불신앙의 상태로까지 된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런 자들에게는 회개의 은혜가 없다.

 

    다시 말해서 본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타락한 자들]이란 [타락한 자들]이라는 언급 전에 말씀하고 있는 신앙의 체험들을 저버리고 그 은혜와 특권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가 이 말씀을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서 당시 유대인 크리스챤들의 신앙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본 절의 말씀을 통하여 기독교의 기본적인 이치를 배우고 알게 된 사람으로서 그 신앙에 충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앙에서 떠나가는 것은 고의적인 배신이므로 [타락한 자]라 표현하였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배신한 자]라고 이해하는 것이 원문이 의도는 뜻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학자들 사이에 과연 진실로 거듭난 자가 타락할 수 있느냐 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데 있다. 과연 진실되게 거듭난 자도 타락할 수 있을까? 이미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거듭난 자로 살던 성도가 일순간 타락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서 멀어지는 또는 버림을 당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 같은 강력한 언급을 통해 유대인 크리스챤들의 영적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러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욕 보인다는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불신앙으로 해석함이 옳다.

 

7-8절: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본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비]는 이사야서 44장 3절의 말씀이나, 이사야서 55장 10절과 11절의 말씀에서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권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하나님의 은혜의 비, 축복의 비, 말씀의 비, 권능의 비로 이해한다면 그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은 한 마디로 성도들, 즉 하나님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배우고 성령의 감화를 받고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땅]을 의인화 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살 펴 볼 때, 의인화 된 [땅]은 결국 두 종류의 사람으로 비유되고 있다.

 

    첫째는,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는 땅이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합당한]은 [용납될 수 있는], [받아 들여질 수 있는], 또는 [아주 만족스러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따라서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만족스럽게 채소를 내는 땅이라면 당연히 밭 가는 자들에게 기쁨이 되고, 자랑거리가 된다. 결국 이 구절은 [밭 가는 자들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채소를 내는 땅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말씀이 의미하는 본래의 뜻은 그러므로 선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들인 후에 끊임없이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성도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가 된다는 말씀이다. 혹자는 본 절을 해석할 때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라는 말씀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는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는] 의미로 보고 있다. 즉 이와 같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에 축복을 내리신 결과요 또한 열매는 축복의 표시라고 하는 구약의 견해를 반영한 것(창27:27)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둘째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이다. 땅에 내려진 저주와 관련된 식물인 [가시와 엉겅퀴]는 창세기 3장 17절과 18절 말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간들에게 형벌을 가하실 때, 하나님은 저들에게 저주의 표시로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다. 가시와 엉겅퀴 대신 채소를 얻기 위하여 사람들은 땀을 흘려야만 했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을 저버린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대목이 있는데,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다시 말해서 만족할만한 채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저주의 상징인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은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라고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다. 왜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을 받았다]라고 말하지 않고 [저주함에 가까워]라는 표현을 썼을까? 이는 땅이 비록 열매를 내지 못하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놓고 있을지라도 단지 저주에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말씀함으로 회개할 수 있는 즉,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말씀함이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고, 돌이키지 아니한다면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유대인 크리스챤들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초보적인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래서 신앙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면 결국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또는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할지라도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이는 또한 오늘날 현대인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경고의 말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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