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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갈라디아서 강해2

관리자 2017.08.05 16:54 조회 수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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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갈라디아서 1:10-24      "사람이냐 그리스도냐?"

 

1:10-12  그들과의 논쟁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6-9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왜 자신이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또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 놓은 후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즉 내가 믿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함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인데, 사람들을 좋게 하고자 율법을 따를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이다. 만일에 자신이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일을 해 왔었다면 지금까지 받아 왔던 핍박도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핍박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이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고 항변한다.

 

    바울의 분명한 태도는 설사 사람들이 자기의 타협할 수 없는 복음 전함을 싫어한다 할지라도 자신은 하나님만을 좋게 하고 하나님께만 기쁨을 구하겠다고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즉 자신이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행해 온 것이었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될 자격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다. (γαρ - for - 접속사 "왜냐하면, 그러니까, 말하자면" - for am I now seeking the favor of men or of God? -) 6-9절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1:11  갈라디아 교회 형제들에게 다시한번 호소하는 장면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 즉 한 생명이라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의미다. 바울은 "다시한번 너희에게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은 내가 전에 너희에게 전했던 복음은 사람의 뜻(man made up) 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만든것처럼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편리에 따라 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 γνωριζω "to make clear-알게하다, 알리다, 나타내다" 는 ανθρωποs(사람)의 강조구문이다. 즉 12절과 연결해서 Gospel is not from men but from the revelation(αποκαλυψεωs-αποκαλυψιs 소유격, 단수-폭로, 계시)이다.

 

    1:12  11절에 대한 설명이며 재 강조의 말씀인데, 바울이 전에 갈라디아에 있을 때 전했던 복음은 결코 사람에게서 배운것도 아니고, 받은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로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또 사도 바울이 개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전도자가 되고자 작정한 후 왜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는지(16절), 또 먼저 된 사도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갔었는지(17절)에 대한 전초 해명이기도 하다. 만일 바울이 처음에 혈육이나 사도들을 찾아 복음 전하는 일에 대해 의논을 했다면 바울의 이 증거가 거짓이 되고 힘없는 증거가 되 버렸을 것이다. 바울은 재차 강조하며 갈라디아 교인들과의 논쟁을 계속한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결코 어느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 주어지거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자신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 -다메섹 도상에서
      -다메섹 도성에 몇일간 머물면서
      -아라비아에서 3년간 준비할 때

 

1:13-17  10-12절에 대한 설명
    즉 바울의 항변은 자신이 전했던 "그" 복음은 결코 사람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를 통해 왔다는데 있다. 

    1:1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에 어떻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자기가 전한 복음은 결코 누군가로부터 듣거나 배운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 유대교인이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다(행8:3). 이 내용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1장 22절 이하의 말씀에 사람들이 바울의 얼굴은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가 교회를 강력하게 핍박하던 자였다는 소문만으로도 그의 변함에 놀라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 (the church of God) την εκκλησιαν του θεου(G. of poss.) 이 표현법의 특이한 점은 την이라고 하는 관사를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του θεου 라고 해서 Genitive of possession - by denoting ownership - "belonging to". 즉 이교회만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피로사신 교회라는 뜻이다.

 

    1:14절은 바울이 얼마나 유대교의 열성당원이었는지 그보다 연장자들도 그의 열심을 따를자가 없었다고 한다. 유대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율법과 할례다. 전에 바울은 "조상의 유전"에 대해서 모든 이들보다 더욱 철저한 사람이었다.

 

    조상의 유전: 마15:2~ -안식일에는 일을 못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손발을 반드시 닦는다.
                         -이혼할 때는 이혼증서를 줘야 한다. 등등

    바울 자신은 이 모든 유전을 지킴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지켰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이 실질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그의 논쟁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1:15절 그러나 13-14절에 자신은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면서 까지 조상의 유전을 잘 지켰지만 만세전부터 바울을 택정하신 이가 있었으니 그가 곧 하나님이고 예수 그리스도였다. 한글 성경에는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원문 성경에 보면 "οθεοs" 라고 기록되 있는데, 바울을 그의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택정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하나님이시다.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 called me by his grace 에서 "he"는 하나님

 

    1:16절에서 바울은 15절의 설명과 하나님의 뜻을 안뒤에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자비로 자신을 태중에서 부터 선택하시고 부르신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에게 계시하심이다. NIV 성경에서는 "to reveal his Son in me"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직역을 하자면 "그의 아들을 내 안에 나타내시었다"는 말씀으로, 원문적으로 해석을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택정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을 내 마음에 나타내시기 위해 또는 계시하시기 위함이다". So that 그 이유는 바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마지막 귀절을 눈여겨 보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17절에 있는 "사도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와 비교되는 말이다. 만일 바울이 혈육과 먼저 의논 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말씀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바울 마음 속에 계시하셨을 때에 그는 그의 혈육(with flesh and blood-NASB, I did not consult any man-NIV), 부모나 형제나 친척을 찾아 먼저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17 그뿐 아니라 자기보다 "먼저 사도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계시는 사람과 의논할 일이 아니고, 사람에 의해서 밝혀질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말씀의 계시라할지라도 성령의 도움이 아니고는 깨달을 자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사람들을 찾아 의논하기 이전에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나갔다고 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과 자신만의 시간을 갖었다는 의미다. 하나님께 묻고 듣고하여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밝히 알고자 했던 바울이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해 확고 부동한 확신이 있었다. 변질 되서도 변질 될 수도 없는 복음이다. 곧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진리다.

 

1:18-24  예루살렘 방문과 자신을 통한 복음 전도
    1:18-19 "그 후 3년만에" 이 말씀을 비추어 성서학자들은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간 지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고, 이 기간 동안에 그의 생각안에서 성경 말씀에 대한 재 정비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즉 성령을 통해 새로 계시되어진 말씀으로 무장 되어진 기간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가지의 강조점이 나타나고 있다.
    1) 예루살렘에 게바를 만나기 위해 올라갔다가 오직 15일이라는 짧은 기간만 머물렀다는
       점이고,
    2) 거기에서 오직 베드로와 야고보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 역시도 앞절들을 강조한 말씀인데 자신이 전한 복음 즉 "오직 믿음"은 결단코 사람이나 또는 사도를 통해서 온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1:20-24  자신이 쓰고 있는 이 편지는 결코 거짓이 아님을 하나님 앞에서 강조하고 있고, 그 후에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1:20 "너희에게 쓰는 것은" 은 현재 진행형으로 쓰여졌다. 즉 자신이 현재 쓰고 있는 이 편지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거짓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 말씀은 곧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 들이라는 권고와 같다.

 

    1:21 "그 후에" 어느 정도의 기간뒤에 바울이 수리아나 길리기아에 갔는지 그 시기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

 

    1:22-24  바울이 그곳에 가보니 자신의 얼굴을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신들이 믿던 복음을 핍박하던 자가 그 복음을 스스로 전함을 듣고 보고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핍박하던 자를 변화시켜 핍박하던 그 복음을 그 입을 통해 증거케 하셨으니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알 수 있다. 24절에서 바울은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다. 우리를 통해서 나 자신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결론: 1.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2.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알 수 있고, 이해되는 것이지 결코 사람의 생
         각이나 뜻으로 온 것이 아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가(relationship) 바로 서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일은 세상과 의논하
         지 말고 하나님과 의논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
      4. 나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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