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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히브리서 강해 1

관리자 2017.02.15 17:45 조회 수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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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및 참고도서
1. 성경 히브리서
2. New Testament Introduction           Donald Guthrie     Inter-Varsity Press    pp. 685-735
3.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George Eldon Ladd    Eerdmans Publishing C. pp. 571-581
4. Matthew Henry's Commentary    Marshall Morgan & Scott   Broadoak edition    pp. 708-727
5. 매튜 헨리        박근용 역   기독교문사       44권  pp. 321-614

 

교육내용
히브리서를 연구함에 있어서 히브리서가 담고 있는 특유의 그리스도론을 전체적인 내용의 중심으로 삼고, 단원별로 살펴봄으로써 히브리서가 전하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을 연구하고자 한다.


I. 서론
    1. 히브리서의 역사적 배경
    2. 히브리서의 기록 연대
    3. 본 서신의 기록자와 수신자
    4.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

 

II. 내용 분해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1-4장
       1)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1:1-3
       2) 천사들보다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 1:4-2:18
       3) 모세보다 더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 3:1-19
       4) 여호수아보다 더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4:1-16
    2. 전 인류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5-7장
       1) 대제사장의 제도 5:1-14
       2)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들 6:1-20
       3) 제사장 직분의 비교를 통해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7:1-28
    3. 구약과 신약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8-10장
       1) 성소와 언약의 비교를 통해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 8:1-13
       2) 성소와 제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9:1-28
       3) 유일한 속죄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   10:1-39
    4. 생활 속에 반영되는 실천적 신앙 11-13장
       1) 믿음의 정의와 실 예들 11:1-40
       2)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소망의 생활 12:1-29
       3) 생활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13:1-19
    5. 고별 축도와 마지막 권면 13:20-25

 

과제물
    1. 히브리서 저자에 대한 견해 (분량: A4 용지 표지 포함해서 3장, 글자크기 10포인트 / 기간: 중간고사전 )
    2. 히브리서 5번 정독

 

본 강해안은 비대위측 순복음 신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히브리서의 역사적 배경 명칭 부여에 따른 논쟁
    신약 성경의 구성을 볼 것 같으면 사복음서와 역사서인 사도행전, 그리고 묵시의 책인 요한 계시록등 여섯 권을 제외한 나머지 21권은 다 편지의 형식을 띤 서신이라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서신들이 누가 썼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는 반면 또는 설사 누구라고  기록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내용을 읽어보면 누가 누구에게 보낸 편지인지 짐작할 수 있으나, 본래 본 서신의 명칭도 없었던 히브리서는 기록자에 대한 암시가 없다.

 

    또한 본 서신의 명칭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다만 "이래서 이랬을 것이다"라고 하는 추측만 있을 뿐 주후 2세기 이전부터 "히브리인들에게"란 표제가 붙여지게 된 근거에 있어서는 확실하지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주후 2세기 후반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판테누수(Pantaenus)와 터툴리안(Tertullian)은 본 서신의 기록자를 각각 바울과 바나바로 다르게 주장하면서도 본 서신의 명칭만큼은 "히브리인들에게"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또한 본 서신의 명칭이 무엇을 근거로 해서 "히브리인들에게"라고 붙여졌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질 않다.

 

    18세기 19세기에는 물론이요 20세기 초두까지도 영문성경이나 한문성경이나 여러 나라 번역 첫 머리에 "바울이 히브리인에게 보낸 편지"라는 길다란 표제가 붙어 있었다. 또한 KJV는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을 지지해 줄 만한 초기 사본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 결국 논쟁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현존하는 사본에서 가장 오래 된 명칭을 찾는다면 [pros hebraius] (프로스 헤브라이우스) 로서   "히브리인들에게"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 명칭조차도 3세기 이전을 넘지 않을 뿐더러 본래의 명칭이 아니라 필사상의 추가일 것이라는 점이 흔히 주장 되어왔다. 만일 이 가정이 입증된다면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은 본 서신의 내용으로부터 추론된 것에 불과하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더욱이 KJV에서 발견되는 추가용어, 즉 "사도 바울의 서신"이라는 어구는 후대의 추가일 뿐만 아니라 서신의 저작권에 대한 교회들의 전통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해서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이 비록 편집적인 추가로 취급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부정확한 것으로 가정될 필요는 없다. 초기 전승은 본 서신의 명칭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거나 언급하는 경우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고, 이 명칭이 본 서신이 담고 있는 내용과도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히브리서의 기록 연대
    히브리서의 기록연대에 대해 주후 60년부터 90년까지의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오게 된 이유는 본 서신의 기록자에 대한 확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본 서신 안에서 기록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자면 히브리서 13장 23절을 들 수 있는데, 히브리서 기록자는 13:23절에서 "디모데가 놓이며"라는 언급을 하고 있다. 이 말씀을 기록 연대의 역사적 근거로 추론해 볼 때, 디모데가 갇혔다가 놓인 시기가 주후 67년 말 혹은 68년 초이므로, 이 서신이 기록된 연대는 적어도 67년 이후로 보는 견해가 다소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록 연대에 대한 의구심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본 서신의 기록 연대에 대해 조기 기록설(A.D. 58-60)과 로마의 티토(Titus)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직전에 기록됐을 것이라는 설(A.D.70년 이전)과 그 이후의 설(A.D. 80-90)로 각각 나누어진다. 이처럼 본 서신의 기록 연대에 대한 학설이 분분하게 된 데는 본 서신의 기록자가 불확실하다는데 있다.

 

    다만 초대 교회의 외적 증거와 본 서신의 내적 증거를 본 서신의 기록 연대를 결정하는데 근거를 삼을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이러한 내외적인 증거를 통해 언제쯤일 것이라고 하는 가능성있는 기록 연대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주후 95년경에 쓰여진 클레멘트1서(로마의 클레멘트)에서 본 서신을 인용했으므로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클레멘트1서보다 후기가 될 수 없다.

    둘째, 본 서신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주후70년)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히브리서의 중심내용중의 하나인 구약성경의 제사제도가 예루살렘 성전과 연관 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다. 즉, 구약 성경의 제사 제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수행을 통하여 종료되었다는 것을 외적으로 가장 잘 입증 시킬 수 있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사실이 누락 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 서신의 기록 연대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전일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셋째로 본서의 기록자는 본서에서(10:32-36, 12:4) 성도들이 박해를 받고 있는 처지에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추론적으로 이와 같은 성도에 대한 박해를 네로 황제의 박해(주후 65년경)로 이해한다면, 결국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최소한 주후 65년 이후가 된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네 번째로 특히 본 서신의 기록자는 디모데의 석방 내용을 13장 23절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만일 디모데의 구속이 바울을 도운 사역과 연관된 것이었다면 그 연대는 60년대 후반이 된다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본 서신이 기록된 연대를 정확하게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본서의 기록 연대를 언제 기록됐다고 단정짓기 보다는 성도에 대한 네로 황제의 박해 이후부터,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전까지로 폭넓게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추론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편지를 기록한 시대에 대하여서는 편지 내용에서 피흘리는 핍박을 아직 당하지 아니한 것을 보아 64년 이전에 쓰여진 것이라 추정할 수 있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헐렸다는 말이 암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성전이 훼파된 70년 이후는 기록 년대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60년에서 70년 사이를 본 서신의 기록 연대로 결론짓고 있다. 
 
3. 본 서신의 기록자와 수신자
    1) 기록자:
    본 서신의 기록자가 누구냐 하는 데는 신학자들의 견해 차이로 인하여 의견들이 분분하다.

       (1) 바울을 본 서신의 기록자로 보는 견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바울이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히브리서에서는 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바울이 히브리 백성들에게 보내는 히브리서에서 그들의 대사도가 되셨던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에 더하여 본 서신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누가가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누가가 번역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은 "클레멘트"자신의 추론으로서 본 서신과 사도행전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그는 본 서신이 헬라어로 기록된 바울 서신의 문체와 다른 반면에 사도행전 문체사이에서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같은 추론을 전개한 것이다.
 
    2세기 말의 판테누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터툴리안은 본 서의 기록자를 바울 또는 바나바로 각각 다르게 주장하고 있다. 그 이후 루터와 칼빈 역시 본서를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본 서신의 기록자를 바울로 단정짓는다는 것은 많은 부담을 갖게한다. 다만 마지막장 끝에 가서 디모데의 이름과 이달리아란 언급이 되 있는 것으로 봐서 디모데와 이달리아에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던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하나, 이 또한 확실한 증거로 내세울 수 없는 것은, 후세에 누군가가 서신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바울이 쓴 서신인 것인양 흔적을 인위적으로 남길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특히 본 서신을 바울 혹은 바울의 영향을 받은 그 누군가에 의해 기록됐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Pantaenus, Eusebius)의 근거를,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2:14-17, 롬8:3, 갈4:4) 언급과,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9:15, 롬3:26, 고전1:30), 그리고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7:25, 롬8:34) 등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 견해에 반대되는 입장을 본 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첫째,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에서만 본 서신에 언급된 구약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는 점, 둘째, 바울의 문체보다 훨씬 유창한 헬라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 셋째, 바울 서신에서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과, 넷째, 2:3절에 따라 기록자가 사도에게 배운 또는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는 점등을 통해서 바울이 기록자일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다. 

 

    본 서신은 바울의 신학과 문체와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모두 있다. 또한 분명 본 서신의 기록자가 바울의 양향을 받았다는 데 근거하여 바울 사상이 본 서신의 배경이 되었다는 점도 의심할 여지 없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그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빈번히 내세우는데 반하여 본 서신의 기록자는 예수의 생애를 목격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2:3). 사실 중세기까지 이 서신의 기록자에 대한 문제가 그리 크게 대두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시대에 내려와서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됨과 함께 히브리서도 사상적으로 보거나 용어적으로 볼 때 결코 바울에 의해 기록된 서신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일어나게 되었다.

 

       (2) 바나바를 본 서신의 기록자로 보는 견해(Tertullian, Weiss, Zahn): 이 견해는 제한된 지역에서만 주장되었다. 바나바는 "권위자"(행4:36)라는 이름을 가질만큼 교회내의 유력한 인물로서 헬라 사상에 젖어 있던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제사 제도를 구속사에 정확하게 적용하여 기술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바나바는 사도 바울과 전도 여행도 함께 했으므로 사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암시되는 2장 3절의 내용과도 무리가 없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초대교회의 외적 증거가 없다는 결정적 단점을 지니고 있다. 

 

       (3) 필자 불명을 그대로 인정한 채 본 서신만 전승되어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 이 견해는 4세기 이후 서방 교회 내에서 발전하였다. 사실 본 서신의 바울 저작권에 대한 전승은 "제롬"(Jerome)과 "어거스틴"(Augustine)의 저작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 중 누구도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을 확신하지는 않는다.
 
       (4) 아볼로를 본 서신의 기록자로 보는 견해(Luther, De Wette): 아볼로를 본 서신의 기록자로 보는 견해도 그 주장이 만만치 않은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볼로는 헬라 사상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다는 것과, 사도행전 18장 24절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볼로는 헬라 사상에 익숙해 있었으며 구약 성경에 능통한 자였으므로 본 서신과 같은 유창한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70인역을 중심하여 구약을 많이 인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또한 아볼로는 고린도전서 3장 4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고리도 교회에서 아볼로파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교회에서도 강력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도 그가 기록자일 수도 있다는데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결정적으로 초대 교회의 외적 증거가 없으며 특히 아볼로는 학문과 성경에는 능한 자였는지 몰라도 성령의 세례에 대한 깊은 체험이 없었으므로(행18:25-28) 그가 기록자일 것이라는 근거가 미약해 진다.

 

       (5)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본 서신의 기록자로 보는 견해(Harnack): 이 견해는 그렇게 많은 지지자를 갖지는 않았지만 확고한 동조자를 가졌다(Peake).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첫째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와 같은 지성인을 가르칠 정도로 교양이 높았고, 또 성령의 은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행18:26), 교회의 일에 열심이 있었으므로(행18:2,3), 둘째, 히브리서에는 "우리"라는 1인칭 복수형이 자주 쓰이는데, 이는 기록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 공동 저자임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며, 셋째로, 히브리서는 사상적인 맥락에서 그 기록자가 분명히 바울 주변의 인물임에 틀림없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며(롬16:3), 넷째, 이들 부부는 디모데와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딤후4:19) 본 서신 중에서 디모데에 관한 기사를 쓸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히13:23).   

 

       (6) 그 외에도 로마의 클레멘트(Erasmus)설, 누가설(Calvin), 필자 불명설(von Zoden, Westcott, Bruce)등이 본 서신의 저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제 견해들이다.

    본 서신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 내용이 히브리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 수신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규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대를 따라, 혹은 학자들에 따라 그 의견들이 분분한 만큼이나 누가 기록한 것인가에 대한 확답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결국 히브리서의 기록자에 대한 의견에 대해 바울일 것이다는 주장과, 아볼로일 것이다는 주장, 바나바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에 이어, 결과적으로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게 되자 3세기의 신학자 오리게네스(혹은 오리겐)의 말과 같이 "히브리서 기록자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지 인간으로서는 그 기록자를 알 수 없다"는 말에 다다르게 되었다.

 

    2) 수신자:
    본 서신을 처음으로 받은 수신자가 누구냐 하는데 대한 의견 역시 분분하다. 그러나 본 서신의 표제가 없다 하더라도 내용을 살펴볼 것 같으면 본 서신이 담고 있는, 구약의 사건들, 제사장과 그에 관련된 언급, 성소에 대한 이야기와 제사에 관련된 말씀 등을 볼 때 본 서신이 이와 같은 내용을 이방인에게 보낸 것이라고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현재의 명칭이 후세 사람 누군가에 의해 붙여진 명칭이든 또는 본 서신의 내용으로부터 추론된 것에 불과한 것이든, 본 서신의 내용이 말해 주듯 이 서신의 수신자는 유대인들 혹은 히브리인이라 하겠다.

 

    본 서신의 내용을 읽어보면 이방인에게 보내는 표적이 나타나지 아니하고 히브리인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언급표현이 많으므로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점에 별다른 저항이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수신자가 서신의 내용 등을 이유로 들어 히브리인이라 규정짓는다 할지라도, 그 히브리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히브리인들을 지칭함인지, 혹은 사방각지에 흩어져 사는 히브리인들, 즉 팔레스타인, 혹은 로마, 혹은 안디옥이나 알렉산드리아등에 거주하는 히브리인들을 주 수신자로 삼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역시 알 길이 없다.

 

    본 서신의 수신자를 이해하는데 세 가지의 질문이 필요하다.
    (1) 이 서신의 수신자들의 민족적 배경은 무엇인가?
    본 서신의 수신자가 이방인일 것이라는 의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Scott), 본 서신의 모든 증거들은 유대적 배경을 가리키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 책의 명칭 "히브리서"가 그 단적인 증거요, 선지자들과 또한 이스라엘을 섬기는 천사들의 언급, 레위직 제사에 관한 인용 등을 들 수 있다.

    (2) 이 서신의 수신자들은 어디에 거주하던 자들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쉽게 내릴 수 없다. 다만 가장 유력한 결론을 내리라면 팔레스틴과 이탈리아중 후자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 이유는 첫째, 본 서신의 수신자들은 각 교회의 구제를 받아야 했던 팔레스틴 성도들과는 달리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팔레스틴의 성도들은 6:10, 10:34, 롬15:26과 같음), 둘째, 70인역이 구약성경의 인용에서 전적으로 사용되었으며(수신자가 만일 팔레스틴 사람들이라면 이것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것), 셋째, 본 서신의 13:24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란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언급은 마치 이탈리아 바깥의 이탈리아인들이 고국으로 인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며, 넷째, 본 서신을 최초로 인용했던 사람이 바로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95년경)였다는 점등 때문이다.

 

    (3) 본 서신의 수신자들의 영적 상태는 어느 수준인가?
    모든 초창기에 새워진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기에도 의심할 바 없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자였다(3:1). 본 서신의 기록자는 이 편지를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유대주의로 되돌아가는 위기에 처했던 사실에 대해 권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 강력히 전하게 된 "권면(urge)의 말"(13:22) 이라고 불렀다. 본 서신의 10:32-34절과 12:4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수신자들은 순교의 단계까지는 아니어도, 핍박 가운데 있었고, 이 사실로 어떤 이들은 배교하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
 
4.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
    본 서신은 제사장직과 제사의 용어로써 유대주의에 대한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우위성을 감동적으로 변호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초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춰져 있다. 결국 본 서신의 기록자는 그리스도의 제사직이 구약 때의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집례했던 제사보다 우월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양 되심이 구약의 동물 희생제물 보다 우월하며, 더 나아가서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신앙이 전통 유대교 신앙을 고집하는 그것보다 우월함을 가르치려는데 있다. 이와 같은 의도적인 복음의 우월성에 대한 가르침의 근본적 이유는 개종한 유대인들이 다시 종의 멍에를 메고자 하여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대인들이 읽고 있는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그 구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변증함과 동시에 유대교보다 기독교가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본 서신의 특징 중 하나라면 율법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바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내용과 유사한 점을 지니고는 있으나 이방인에게 쓰는 바울과 같이 율법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는 취하지 아니하였고 비교적 온화한 어조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있다는 점이다. 히브리서에서는 율법과 복음의 서로 다른데 대하여 밖에서 교회로 들어오는 핍박과 비방은 그치지 아니하고 안에서 일어나는 의심과 오해는 아직 가시지 아니하여 언제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배교의 무서운 결과와 하나님의 엄위스러운 심판으로 경고하였다.

 

    결국 본 서신의 기록자가 의도한 대로 복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변증은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했던 성도들에게는 다시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도록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비록 유대교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믿음이 연약해진 성도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이 될 수 있었다.

 

    본 서신에서 기록자는 신약의 복음과 구약의 율법을 여러 가지로 비교하여 보고 비판하여서 신약은 구약보다 완전하고 확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요, 그리스도와 유대교를 비교하여 그리스도교는 완성되고 확정된 실체요, 구약의 지도자들과 드리는 제물들과 계명 및 율례들은 그림자요 모형이요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함으로써 성도들의 신앙을 확고히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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