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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히브리서 강해 12

관리자 2017.02.15 17:20 조회 수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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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약과 신약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8-10장


1) 성소와 언약의 비교를 통해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 8:1-13
    (1) 하늘의 참 장막과 땅의 임시 장막 8:1-5

1절:
    [이제 하는 말이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기록한 말씀 중에 요점이 되는 것은, 즉 이제까지 설명해 온 목적이 있는데, 그것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영원하시고 과거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 또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그림자의 본체가 되시는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 분이 지금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위엄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세상의 그 어떤 보좌와도 비교될 수 없는 영광의 보좌요, 은혜의 보좌요, 하나님이 앉아 계신 창조주의 보좌다. 

 

2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는 말씀은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을 뜻하는 표현인데, 이는 참 장막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본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예루살렘 시온산 꼭대기에 있는 성소와 장막은 비록 하나님의 지시하신 바를 따라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손을 빌어 만들어진 장막이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장막, 곧 [위엄의 보좌 우편에]앉아 계시는 분,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참 성소는 결코 인간의 손으로 된 것이 아니오 하나님 자신이 친히 베푸신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가 계시는 장소다.

 

3절: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자니] 대제사장을 세운 목적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과 제사를 드리기 위함인데, 대제사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5장 1절 이하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여기서 드리는 예물은 모든 백성들이 자기의 수고로 얻은 소산물 중 첫 것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십의 일조가 그것이며, 또한 제사를 드린다 함은 백성 중에서 속죄제나 속건제나 수은제나 화목제를 드리고자 하는 때에 거기에 해당되는 제물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가 모든 초점을 맞추고 말하고 있듯이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일진대, 즉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 칭하는 이상에는 반드시 거기 해당한 제물이 없을 수 없다.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절: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인류를 대표하는 중보자 대제사장이 되시지만 땅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 봉사하실 수는 없으시다. 그 이유는 분명한데, 율법을 따라 레위인의 자손들과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거기 있어 봉사하는 일을 맡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복수격-men who offer)이 있음]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분명 유대인으로 나시고, 할례를 받으셨으니 성전에 들어가실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을 스스로 깨뜨리시고 결코 장막 안에 들어가 제사장들을 대신하여 봉사할 수는 없으시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앞 장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을 아론의 반차를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율법이 세워지기 이전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율법에 얽매인 제사장이 아닌 율법을 뛰어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언급하였던 것이다.

 

5절:
    [저희가(복수격-They serve)] 율법을 따라 아론의 반차를 좇아 된 제사장들을 말함인데, 저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다. 땅 위에 있는 성소에서 제사장들의 봉사하는 것은 하늘 성소의 참 봉사에 비하여 모형이나 예표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히 히브리인들이 믿고 따르던 모세가 장막을 지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 있는 성소를 모세에게 먼저 보여 주시면서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출25:40) 하시는 [지시하심을 얻]어 짓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지자들이 환상을 본 것과 같이 모세도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의 보여 주신 성소와 장막의 모든 제도를 보고 하나님의 [지시하심을]따라 그대로 땅 위에 건설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2) 첫 언약과 더 좋은 새 언약 8:6-13

6절:
    [그러나] 아론의 반차를 좇아 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지은 성소에서 봉사를 해 왔지만 [그러나] [이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된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아론의 반차를 좇아 직분을 받은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그 이유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직분은 구약 때에 있던 직분보다 더 좋고 더 아름다운 직분이다. 구약에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 따로 있어 각각 그 직무를 수행했는데, 때때로 그 지식과 능력과 기술이 부족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또 의견들이 맞지 않아 생각이 합치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았었다. 또 그 제도와 조직이 복잡하기도 하고 혼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께서 전지 전능하신 참 하나님이시오 또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 사정을 통찰하시는 동시에 그 한 몸에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세 가지 직무를 겸하셔서 구약보다 더 좋은 새 언약을 세우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다. [더 아름다운 직분] 구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7절: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처음에 주신 언약이 하자가 없었다면 인데,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에 흠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법은 정법이었고, 흠이 없는 것이었으나, 인간이 미련하여 그 법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었다. 즉 9절 하반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이다. 이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을 하자면 아론의 반차를 좇아 되어진 제사장직은 7장 28절에서 지적하였듯이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에 온전치 못하였으므로 완전한 대 제사장의 출현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세상 나라의 법과 제도에 있어서도 이미 세워진 것에 부족한 점과 잘못된 것이 있었다면 당연히 새 제도와 새 법률을 만들고 낡은 것은 폐하는 것이 상식이다. 만일 과거의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법률을 세우면 과거의 것은 폐한 바 되었기에 새것 보다 앞세울 수 없다. 당연히 새 법이 시행되는 것이 일반상식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할례와 안식일, 안식년, 희년 등의 제도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의 규례는 다 변하였는데 유대인 크리스챤들은 아직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신앙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율법의 한계성에서 벗어나 더 이상 옛 법에 얽매인 종 노릇을 하지 말고 새 법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종의 멍에를 벗고 자유인이 되라고 권고하였던 거처럼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었던 히브리서 기자는 수신자들에게 폐지된 과거 언약에 연연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8-12절:
    본 절들의 말씀은 예례미야서 31장 31-34절을 인용한 것인데, 이 말씀을 인용하여 이미 변천된 첫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곧 북편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 유다 왕국은 본래 다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면서도 기원전 9세기에 북쪽 왕국과 남쪽 왕국의 두 나라로 갈려서 서로 싸우고 다투며 원수처럼 지냈다. 그런 저들을 위해서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언약을 의미하고 있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히브리서의 구약 인용은 전부 70인역에 의지하였는데 여기 9절 하반절에서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고한 것은 본래 히브리어 원문에는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고 되어있다(렘31:3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며 언약을 세우셨지만, 저들은 그 언약 안에 거하지를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버리셨지만, 새로 세우는 새 언약은 이와 같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않다고 했다. 즉 완전한 언약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어진 은혜의 언약을 말한다.  

 

    11절 하반절에서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고 했는데, 이는 새 언약을 통해 아이나 어른을 무론하고, 낮고 높은 사람을 가리지 아니하고 다 하나님을 잘 알고 또 하나님의 법을 잘 준행하여 양과 같이 온순하고 진실한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이다.

    12절에서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서는 관대히 대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즉 여기서 새로운 이스라엘이라 말함은 히브리인으로 국한된 민족 의식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저들에게는 과거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셨던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도리어 긍휼과 용서로 대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새 교회에 대해서도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던 대로 율법대로 지키지 아니하는 것을 검색하며 모든 생활을 심리하신다면 이방 사람들에게 구원이란 있을 수 없는 또 다른 율법적 복음이 되 버리고 말 것이다.

 

13절:
    12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긍휼하심의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은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는데, 가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새 언약이라 하겠다.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는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완성 되었고, 그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진노는 긍휼로 바뀌었으며, 정죄는 용서로 바뀌게 되었다. 이것이 만민을 위해 주신 새 언약의 복음이다.     

 

    율법아래 있던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가혹하다고 할만큼 엄한 모습이셨는데, 신약 교회에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모습은 신약 복음은 구약 율법에 비하여 혁명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극히 포괄적인 사랑의 완성임을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시는 살인하지 말라는 제 6계명에 대한 주님의 재 해석과 간음하지 말라는 제 7계명에 대한 재 해석, 그리고 맹세를 지키라는 근본적 해석과, 악에 대한 태도와 원수에 대한 적극적인 교훈의 말씀은 한마디로 말해 구약에 대한 혁명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여기에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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