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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 인류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5-7장
3) 제사장 직분의 비교를 통해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7:1-28
(1) 왕과 선지자를 겸한 대제사장 7:1-3
1절: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중심이 되어 연합한 네 나라가 소돔과 고모라를 중심으로 한 다섯 나라 연합군을 공격 대승을 거두게 되는데, 이와 같이 전쟁을 일으키게 된 이유에 대해 살펴볼 것 같으면 창세기 14장에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지난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던 소돔을 중심으로 한 다섯 나라가 13년째 되는 해에 배신한 까닭에 14년째 되는 해에 엘람왕 그돌라오멜은 시날왕, 엘라살왕 그리고 고임왕과 더불어 연합군을 형성하여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결과는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네 나라 연합군의 승리였고, 그 와중에 소돔에 거하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사로잡혀 가게되었고, 재물들까지 노략을 당하게 되었다.
당시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머물고 있던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고, 자기 수하에 있던 318 명의 집에서 길리우고 연습한 사병을 이끌고 연합 측을 공격 대승을 거둔 후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포로로 잡혀 갔던 모든 사람들을 구출하여 돌아오게 되자, 개선하는 아브라함을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영접하게 되었는데, 성경은 그를 가리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기록하고 있다(창14:18).
그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살렘왕 멜기세덱에 대해 본문 역시 증거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했고, 그가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빌었다고 했다. 6장에서 잠시 언급했던 멜기세덱에 대해 본 장을 통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 말씀들을 통해 히브리서 기자의 의도하고자 하는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2절:
전장에서 돌아오는 아브라함 일행을 맞아 복을 비는 멜기세덱을 위해 아브라함은 취득한 것 중에서 십 분의 일을 나눠 주었다고 했는데, 4절에서 이 사건을 보다 상세하게 소개하기를 [아브라함이 노략 물 중 좋은 것으로 십 분의 일을 저에게]주었다고 했다. 십 분의 일을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에게 드림으로 이것이 하나님께 드린 바 되었으니 십일조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후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예물 드리는 법에 대해 말씀하시게 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든 소득의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였다.
멜기세덱이란 이름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가 번역한 의미를 본 절은 제공하고 있는데, [첫째 의의 왕]이라고 했다. 멜기세덱에서 [멜기]는 히브리어 [멜렉]에서 왔고 [왕]이란 의미다. 또한 [세덱]은 의란 뜻을 가진 단어로서 말 그대로 [의의 왕]이란 뜻인데, 이는 곧 장차 오실 의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왕이시다.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라고 했다. [살렘]은 고대 도시국가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히브리어 [샬롬]에서 온 말로 [평화 혹은 평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멜기세덱은 평강의 왕으로 이는 이사야서 9장 6절 이하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의 별명에 해당하는 말로 사용했는데, 만 왕의 왕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라 해석할 수 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 좀더 생각해 볼 것 같으면, 분명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었고, 창세기 14장과 또한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었으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위해 예언적으로 축복하는 선지자의 직무를 겸하였던 인물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멜기세덱은 구약에서의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무를 겸행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고, 그림자가 되고, 모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히브리어의 [메시아]는 헬라어로 [그리스도]라는 말로 번역이 되는데,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을 바른다는 뜻으로 구약법에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울 때 행하던 의식이었다. 따라서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3절:
본 절을 통하여 멜기세덱의 신비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본문은 그를 가리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라고 표현함으로 마치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구의 후손인지,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또 더 나아가서는 죽은 날이 언제인지 분명할 터인데, 멜기세덱은 그런 기록에 있어서 묘연한 사람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며 그림자가 되며 모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 하겠다.
(2) 아브라함보다 높은 멜기세덱 7:4-10
4절:
[이 사람이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그들의 시작이요, 첫 조상이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보다 앞서는 인물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본 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보다 높은 이가 있었는데, 그가 멜기세덱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앞서는 사실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데,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 물 중 좋은 것으로 십 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다고 했다. 이 한가지 사건만으로도 멜기세덱의 우월성에 대해 증명하기에 충분했는데,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드리는 것이 상식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십 분의 일]은 십일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여 야곱의 맹세에 나타나고(창28:22), 모세의 율법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표준이 되었으며(레27:32,33, 민18:21-32, 신14:22-28, 26:12),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도 선지자들의 교훈에서 언급되었고(말3:10),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힘썼다(마23:23, 눅11:42, 18:12).
5절:
구약 율법에 의할 것 같으면 제사장직은 레위의 후손들 가운데서 세워지도록 했는데, 그들 모두는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들이다.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란 말은 말 그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처럼 십일조를 받는 제사장이나 십일조를 드리는 백성들이나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치는 자들보다 받는 자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우월하고 높은 것은 사실인데, 그 멜기세덱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하니 실체이신 그리스도는 분명 멜기세덱보다 우월하신 분이시다.
6절:
[레위 족보]에 대해서 설명할 때 레위는 혈통적으로 따져 볼 것 같으면 아브라함의 증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앞 절에서 이와 같이 레위 후손들이나 그 외의 다른 지파 후손들도 모두 같은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인데, 같은 후손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같은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드리는 자가 되었고, 다른 한 쪽은 그 드리는 것을 받는 자가 되었다고 했다. 문제는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멜기세덱인데, 그는 [레위 족보에 들지] 않은 자라는데 있다.
분명한 것은 [레위]는 아브라함의 증손이다. 그런데 레위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이 율법이 제정되기 한참 전에 이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자가 되었다고 했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다는 증거요, 따라서 아브라함의 증손되는 레위인들보다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된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여기에 있는데,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그리스도께서는 레위보다도 아브라함보다도 높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적 해석이 된다.
[그 약속을 얻은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위해 복을 빌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자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자를 위해 축복을 빈 멜기세덱은 그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제사장직을 수행한 자로서 당연히 아브라함보다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와 같은 히브리서 기자의 논리적 해석은 유대인 크리스챤들이 반박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7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너무나도 논리에 맞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낮은 자] 와 [높은 자]라는 말은 [작은 자 큰자]라고 하든지, [못한 자 나은 자]라고 하든지 다 같은 말로 이해될 수 있는데, 구약에서는 족장이 자기 가족에게 축복을 빌었고(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했고,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왕이 백성들에게 축복을 빌었다. 또한 신약에 와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축복을 비셨고, 초대교회 시대에는 사도들이 성도들을 축복했으며, 오늘날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직임을 위임받은 목사가 성도들을 축복한다. 다시 말해서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따라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이 축복했으니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다.
8절: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 분의 일을 받으나]란 말씀은 5절의 레위인들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이해되는데,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레위인들도 하나님이 세우신 법에 의해 십일조를 받았다. 또한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다는 말씀은 3절과 6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멜기세덱을 이르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멜기세덱도 분명한 사람이라면 죽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나, 죽음에 대한 그의 기록이 없으므로 이와 같이 설명한 것인데, 이처럼 멜기세덱을 높이고 찬양한 것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양하기 위함이다.
9-10절:
히브리서 기자의 재미있는 논리적 표현이 여기서 또 다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레위인 제사장들은 5절의 말씀과 같이 다른 형제들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는데, 그 조상 레위의 증조부 되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고 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주 명확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릴 때 그의 후손들은 아직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레위인들도 또 더 나아가서는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아브라함과 함께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바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즉, 히브리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에 아브라함의 허리에는 그 자손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자손들도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린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아브라함의 후손의 계보를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된 것이기에, 그림자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아브라함보다 앞서고, 따라서 아브라함보다 위대하며, 그림자의 실체이니 멜기세덱 보다도 우월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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