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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히브리서 강해 4

관리자 2017.02.15 17:37 조회 수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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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사들보다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 1:4-2:18
    (1)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1:4-7
    (2) 영원하신 능력자 예수 그리스도 1:8-14
    (3) 천사의 말보다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아들의 구원의 선포 2:1-4
    (4) 천사보다 잠깐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예수 그리스도 2:5-10
    (5) 주의 형제라 칭함을 받은 성도의 특권 2:11-18

11절: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속죄의 권한을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킴이다(히13:12). 이와 같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는 상반되게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에 대해서도 히브리서 기자는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당연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속죄해주심을 받은 성도들을 지칭하는 말씀인데(히10:10), 이와 같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했다. 분명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일종의 행위자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는 행위자의 행동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다른 이 둘을 하나에서 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말씀의 의미의 이해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인 성도들은 머리와 지체와의 관계와도 같고 포도나무와 가지들의 관계와 같아서 서로 떠날 수 없는 직접 관계가 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러므로 이 둘은 다 하나에서 난 것이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표현하고 있는 [하나]라고 하는 표현의 주체는 모든 사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행17:28).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시고, 그를 통해 거룩한 백성이라 칭함을 받은 성도들도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니, 장자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을 가리켜 형제라 부르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셨다. 즉 [부끄러워 아니하셨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성도들에 대한 태도를 말함이다(마25:40, 막3:34-35, 요20:7).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주님을 따르는 무리를 가리켜 형제라 부르시며,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하셨다.

 

12절:
    본 절의 말씀은 시편 22편 22절 말씀의 인용문인데 이 시는 본래 다윗 왕이 지은 시로 겸손하게 백성들을 자기의 형제라고 부르며 함께 한 집에서 주님을 찬송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의 관계에 적용시켜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가리켜 형제들이라 칭하여 자기가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시므로 모든 지체와 함께 한 몸이 되신 것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다.

 

13절:
    본 절의 말씀의 비유적인 내용을 시편 18편 2절과 이사야서 8장 17절과 12장 2절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사야서 8장 17절을 보면 [...나는...그를 바라보리라] 하였고, 8장 18절에 가서는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고 한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본래 선지자 이사야가 자기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고 또 자기와 및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녀가 이스라엘의 징표가 된다고 증거한 말이었는데, 히브리서 기자가 이 말씀을 70인역 대로 인용하고 그리스도께 적용시켜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한 것과 하나님께서 맏아들에게 맡기신 자녀들을 내 형제요 내 자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하였다(막3:34-35). 

 

14절:
    세상에 형제란 것은 한 부모에게서 같은 혈육으로 태어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옛부터 형제는 일신이라고 해 왔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도 사람들을 악한 마귀의 세력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과 같은 혈육을 입고(성육신)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본 절의 말씀은 본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혈육에 속한 인간으로 오셨는지에 대한 말씀의 답이라 할 수 있다.

 

15절:
    모든 생물은 생명을 그 본질로 지녔기 때문에 죽기를 무서워 하지 않는 생명체는 없다(롬8:15). 생명체 가운데 가장 발달한 생물체인 인간이 무엇보다도 생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시조도 생명을 사랑하여 좀 더 잘 살아 보려고 하는 데서 마귀의 유혹을 받아 도리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참된 생명을 찾는 데는 생명을 버림으로써 찾는 길을 보여 주셨는데, 그리함으로 죽음을 두려워 하여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다. 

 

16절:
    태초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하나님의 가장 큰 사업은 죄에 빠진 인류를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천사를 위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했다. 아담의 후예라 혹은 자손이라 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음을 설명해 주기 위함이다.

 

17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인데,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대표자가 되신다. 또한 유일무이한 구속주요 대제사장이 되신다. 따라서 인류의 대표자 되시는 예수는 인성을 지니신 분으로, 또 영원한 대제사장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신성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우리 인류에게 [충성된 대제사장]으로서 구주가 되셨다. 이는 자기 [백성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만세 전부터 세우신 하나님의 이와 같은 구원 계획은 천사들을 위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 성도들을 위함이시다.

 

18절: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시험 받으심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만을 지니시고 인성을 갖지 않으셨다면, 어찌 인간의 대표자로 구속주가 되실 수 있을까? 인간과 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경험이 있으시기에 능히 인간의 고통도 이해하시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 또한 아시기에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으시다. 본 단원의 결론을 내리자면 그러므로 주의 형제라 칭함을 받은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은혜요 축복이다.

 

3) 모세보다 더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 3:1-19
    (1)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3:1
1절:
    "그러므로" 즉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친히 고난을 받으시고 시험을 경험하셨는데, [그러므로...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다.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보든지 하늘위로 불러 올리심을 입은 자로 보든지 천국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삶을 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두 가지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라고 했고, 또 하나는 [대제사장]이시라고 했다.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신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서에서 극히 중요하게 다루는 핵심 내용이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하는 말은 성경 가운데 이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칭호다. [믿는 도리]라고 하는 말의 이해는 신앙고백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인데, 즉 [믿는 도리의 사도]라는 말을 [신앙고백의 사도]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말이 4장 14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2) 사환으로서 충성을 다한 모세보다 우월하신 아들의 충성 3:2-6
2-3절: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여기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고,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자기를 세우신 이] 즉 사도로 세우시고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하나님께 [저]가 즉 그리스도께서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충성은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은 충성과 구별이 되는데, 모세는 종으로 충성을 한 반면에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충성하였다. 더 나아가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는 집과 같은 피조물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을 지은 자, 즉 창조자로 비교 표현함으로써 절대적 우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각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던 유대인 크리스챤들의 신앙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언급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까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모세는 절대적 존재였으나, 그 역시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예비자에 불과한 것임을, 또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임을 말해줌으로서 흔들림 없는 신앙 갖기를 바라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하겠다.

 

4절:
    "집마다 지은 이가 있"다.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어느 집을 막론하고 지은 이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집은 없다. 또한 만물 역시 마찬가지인데, 만물 중 그 어느 것도 스스로 또는 우연히 생겨난 것은 없다. 그 집을 지으신 분, 만물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시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창조주 되심에 대해서 복음서 첫 머리부터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고 했다. 그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도 세상에 있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5-6절:
    모세와 그리스도의 비교가 계속되고 있는데,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으로서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장래에 말할 것]은 영광있는 천국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차원으로 이해할 때 모세는 천국소망을 증거하기 위하여 사환으로 충성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온 집과 재산을 상속하여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처분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어 어떤 면으로 보든 사환보다 우월한 지위에 계신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앙망의 대상이 되 왔던 모세를 비교자로 내세워 복음의 절대성을 드러내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성도들의 지위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고 있는데,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는 후사이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은 강하고 담대하며, 우리의 자랑은 튼튼하고 견고하다. 6절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를 [그의 집이라]고 한 것은 일찍이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하시는 성전이라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전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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