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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생활

갈라디아서 강해5

관리자 2017.08.26 15:29 조회 수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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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갈라디아서 2:17-21      "위대한 신앙고백"

 

    바울은 16절에서 율법과 믿음에 대하여 번갈아 가며 언급한 가운데 우리가 과거에는 율법가운데 살아왔다 할지라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결론을 짓는다. 이는 율법을 온전히 이행할 육체가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율법의 행위대로 심판하겠다 하신다면 그것은 모든 육체에 저주가 되는 것이지 복된 소식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은 힘주어 말하기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대로는 결코 의로워 질 수 없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결론 짓게 된 것이다.

 

    2장 17절 이하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위대한 신앙고백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비밀을 안 후에는 "나는 더 이상 율법의 종 노릇을 할 수 없어 율법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았으며 과거의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으므로 이제 사는 덤의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2:17  "만일(if) 우리가" 가정법 문장인데, "가령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를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할지라도 할례와 같은 율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의로워 질 수 없고 오히려 죄인임이 드러나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한다면 그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자냐" 는 것이다.

 

    만일 유대인 크리스챤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할지라도 율법 준수가 동반되야 의로워 질 수 있다면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기만한 것이고, 또한 율법을 떠나게 했으므로 우리를 결국 죄인되게 만든것이 아니냐는 반문어체다. 그러나 이러한 바울의 자문자답식의 답변은 한 마디로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선언이다. 즉, 유대인들이 율법을 중히 여기며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율법을 온전히 준수할 수 없으니 율법에 의한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일 유대인들이 계속 할례를 주장한다면 그것을 주장하는 모두가 믿음을 변질시킨 죄인이 된다. 이것이 바울이 노리는 논리적 논쟁이었다.

 

 

                                                           언약에 기초한 율법과의 관계

 

                                                                          율법 

 

                                                   유대인                                 이방인

 

 

                                                     의                                     죄인
                                   유대인이 주장하는 의는 율법을
                                   준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이든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든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와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죄인이고 또 모두가 오직 믿음만을 통해서 의로워 지는 것이라 한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만일 유대인들이 계속적으로 할례를 주장한다면 그들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죄인이 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율법에 속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죄인이라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은 곧 율법의 완성이라 했으니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리고 불완전한 율법만을 주장한다는 것은 곧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니 자연 그러한 자들이 죄인들이 아니겠는가하는 역설이다.

 

    2:18  율법때문에 복음을 변질되게 했다고 "어떤 이들과 베드로"(2:12-14)는 야단치면서 바울 스스로가 오히려 그것을 준수한다면 바울 자신을 위선자와 죄짓는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 말의 뜻은 "나는 결코 어떻한 상황 속에서도 그러한 말에 동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이 헐었던 것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로, 할례문제다. 이 문제는 갈라디아서 전반에 걸쳐서 다루고 있는 문제다. 어떤 믿음의 형제들이 갈라디아에 와서 변질시킨 즉 할례를 행해야만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사실에 대해 그럴 수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참고 1:7절과 사도행전 15장).

 

    둘째, 2장 12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부정한 음식 문제인데, 베드로 조차 할례당을 두려워하여 이방인들과 더불어 음식을 나누다가 도망침으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까지도 위선자로 만들었다. 바울의 주장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거나 죄인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선으로 가리우고 입과 마음으로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변질되게 하는 것이 곧 죄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2장 14절에서는 베드로를 향해 자신이 유대인이면서 유대인답게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방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같이 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책망했다. 곧 위선을 의미한다.

 

    셋째, 4장 10절에 있는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4장을 배울 때 다루기로 하자.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지키던 날과 달과 절기들을 이방인들에게도 강요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짐을 더하게 만들었다. 예수 복음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 말씀에도 없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믿음의 형제들을 올무에 빠뜨리지 말자.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이와 같이 자신이 예수를 알게 된 그 날부터, 믿게된 그 날부터 이 모든 율법적인 담들을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서 다 헐어 버렸는데, 거짓 형제들이 이것으로 문제 삼는다 해서 자신의 손으로 다시 세울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자신을 범법한 즉 죄진자로 만드는것이라고 한다.

 

   "Lawbreaker" 이는 직역을 따르자면 "법을 깨뜨린 자", 곧 "율법을 범한 자"라는 뜻이다. 이 말은 바울이 만일 그리하면 자기 자신을 율법을 범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율법으로 말미암아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그러나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는 의인이 된다. 헬라어로 죄인을 αμαρτωλοs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αμαρτια, 즉 죄라는 말에서 왔으며 이 말은 또한 αμαρτανω 라는 동사에서 온 말로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어원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빗나가는 즉 어긋나게 하는 것이 죄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믿음이라는 헬라어는 πιστιs 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이것을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믿음 또는 신뢰라는 의미로 명사격으로 사용되어진 반면 두번째, believing 즉 믿는 것이라는 동명사격으로 다시말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진실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에만 간직해 두는 것이 아니라, 믿고 따르는 즉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갈라디아서의 핵심이다.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라고 했는데, 이는 "율법을 통해 율법을 향해 또는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인데, 이는 이제 바울 자신은 율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다시말해서 율법은 바울 자신에게 생명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아 바울 자신이 죄인 되었고, 그 죄의 결과로 죽게 되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자신은 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향하여 죽으므로 이제는 율법의 노예가 아니라 율법과는 무관한 자가 되었다는 논리적 설명이다. 18절에서 설명해 주듯이 이제는 율법은 바울 자신이 헐어버린 것에 불과하다.

 

    이는 하나님을 향해 살기 위해서다. 이제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돌아 왔음을 의미한다. 율법이 있을 때는 하나님과 바울 자신 사이에 율법이 중재 역활을 했었지만 그러나 그 율법을 통해서 바울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바로 성립되어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죄와 위선자로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과는 멀어졌으며, 죽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죄와 위선의 덩어리를 벗어 버리고 자신의 모든것을 부인함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다.

 

    "so that I might live for God" for와 to는 같은 의미 즉, "...을 향하여" 또는 "...에게" 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위하여" 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라"라는 표현도 옳겠지만, 바울의 신앙을 고려해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 함이라"는 표현이 더 옳은 번역이 될듯 하다. 즉 사도 바울이 과거에는 자신의 삶을 위하여 율법을 준수하며 그대로 살아 왔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함으로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표현이다.

 

    2:20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밖혔나니" 19절과 이어지는 말씀인데 이미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성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것이 곧 자신을 위함이기에 자신의 모든 죄과가 십자가에서 소멸 되었고, 장사되어진바 됐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를 남겨 주고 있는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사도의 자격이 무엇인가? 십자가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 자신은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고 그 십자가의 고통이 자기를 위함이었다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체험적인 신앙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을, 혈기를, 자만심을, 위선등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장사 지낸바 되게 해야 한다. 왜 그리해야만 할까?
    1)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2)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속에 거하기 위하여.
    3)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기 위해.
    4)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의 위대한 고백을 들어 보자. 이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밖혀 죽었으니 이제 후로의 삶은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했다. 이는 1) 이제는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시라는 고백이며, 2) 과거에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를 위해 산다는 고백이고, 3) 이제는 율법에 얽매인 자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참 자유인이 되었다는 고백이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고백은 진실된 한 사람의 신앙인의 고백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 자신이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삶이라 한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이후로의 삶은 자기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곧 믿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 자신이 한 육체안에 살고 있는데 그것은 과거의 삶이 아니라, 즉 율법에 의한 삶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됐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이 육신(body)안에 사는 것은 곧 과거의 육신(flesh)의 삶이 아니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육신으로 번역된 단어가 σαρκι(σαρξ 여격,단수)로 사용되었는데, 의미는 flesh와 body로도 번역되나, 본절의 경우는 life here on earth 즉, 땅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즉 이제 남은 땅에서의 삶은 과거의 율법적인 삶이 아니라 변화 받은 믿음의 삶이다.

 

    2:21  바울이 내리는 결론부분인데,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알고 믿는 바울 자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폐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란 1)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2)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게 하셨으며,    3) 그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사 구원하시는 은혜를 말한다.

 

    결론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할례당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율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예수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이 말은 17절에서 "그리스도가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자문자답한것처럼 이 말씀도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결코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의로워 진다."

 

결론:
    1.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짓게 하는 분이 아니라 자유케 하시는 분이다.
    2. 율법에 대하여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을 위하여는 산 자가 되자.
    3.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하는 신앙을 갖자.
    4. 그리스도 예수 중심으로 살자.
    5.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살수 있다.
    6.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자가 되지 말고 전하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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