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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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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야고보서 5:1-11

    올 한 해 두 달이 남았습니다. 남은 두 달 힘써 보내심으로 전도생활에도 결실맺는 성도님들 되시고, 가정 축복도 이루시고, 신앙으로도 더욱 성숙해 지는 복된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부모가 자식에게 죄악된 것을 기대하지 않듯, 하나님도 성도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고, 신앙적인 것입니다. 모쪼록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 최선을 다하여 생활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생활 속에 은혜와 복이 넘쳐 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7-8절).
    사도신경을 보면 주께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재림신앙은 기독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실천의 책으로 알려진 야고보서에서는 이 구절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데, "너희는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8절)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학교에 등교한 학생들은 하루속히 공부라고 하는 굴레 벗을 날을 기다립니다. 군에 입대한 군인들은 특명 받아 제대할 날짜만을 세며 기다립니다. 더위에 약한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철이 속히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리워 하는 이가 자기 곁으로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집 나간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가 돌아오기만을 마음조리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마치 결혼을 앞둔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려야 하며, 모든 삶의 기준을 주님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25장 4절 이하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비유의 말씀과 같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말세의 성도는 근신하고 깨어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근신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늘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사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깨어 있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일에 대처할 마음의 각오가 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큰 일이라도 그 일에 대처할 준비와 각오를 철저히 하고 맞이하면 감당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으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는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충만으로 무장한 신앙의 성도들이 다 되어서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하며 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내하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9-12절).
    소망을 가진 사람은 현재의 고난을 보지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인내의 신앙을 통하여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과거 신앙의 선조들이 온갖 핍박과 역경과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의 신앙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이제 우리 성도들도 그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 본받아서 신앙의 인내를 통하여 승리의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인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신앙생활에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가정 사에도 적용되고, 사업에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요즘 보면 가정 이혼율이 점점 높아만 가는데, 마음이 맞지 않아서 이혼한다 말하고, 이상이 틀려서, 성격차이 때문에, 수준이 맞지를 않아서 이혼한다고 하는 별의별 이유들을 다 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서로 인내하지 못해서 그러는 겁니다. 서로가 참아 줄줄 모르기 때문에 갈라서게 되는 겁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말에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이 사업에 내 인생을 걸겠다"는 각오와, 온갖 역경도 물리치고 인내하며 성공하고야 말겠는 마음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좀 하다가 안되면 쉽게 포기를 하고, 하는 일에 불만을 갖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말세에는 악한 마귀가 갖가지로 역사하여 성도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물질의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질병의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가정 불화의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불신의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불평과 시기와 질투의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난을 통한 믿음의 시련으로 주의 재림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을 바라보면서, 온갖 역경과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의 신앙을 통하여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의 말씀을 보면 말세에는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닌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장차 우리를 만나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복을 받았는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한 고난을 어떻게 인내하며 이기어 냈는가를 보십니다.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면 약해집니다. 그러나 성도는 믿음으로 육신의 질병을 물리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인내 시험이 있습니다. 물질처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치사하게 만드는 요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시험에 대해서도 승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대한 여러 종류의 시험이 있습니다.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베풀며 사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1-6절).
        사도 바울은 말세의 특징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한다"(딤후3:2)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경고하기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했습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이 먹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부한 자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신 그 부요함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음을 봅니다. 사람은 물질 앞에 매우 약합니다. 아간도 물질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자신만 넘어진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의 물질 욕심 때문에 온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물질 앞에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막10:23)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부 그 자체가 죄가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질 그 자체가 죄악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게 주신 부요함과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그 물질이 은혜도 될 수 있고, 죄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물질을 관리해야 되는가? 물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벌어야 하고, 번 돈은 하나님 나라에 쌓아 두며, 이웃을 위하여 베풀어야 합니다. 베풀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면 물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딤전 6:17 이하의 말씀에 (1) 모든 소망을 정함이 없는 재물에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했고, (2) 더 나아가서는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는 자가 되고,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즉 나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성도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북한 동포들이 굶주림 속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잘사는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 속에도 소외되고, 헐벗고 사는 이웃이 많습니다. 이들과 받은 물질의 축복을 나누시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이러한 생활을 통하여 영광 받으십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성도의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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