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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1/8 Dreams Come True

관리자 2017.01.07 16:47 조회 수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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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요엘 2:28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서 꿈을 꾸고 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이고, 신나는 일이고,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일이고, 산다고 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인지 모릅니다. 매일 매일 사는 하루 하루가 아침에 눈을 뜨면, 씻고, 입고, 먹고, 부산하게 움직여 직장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틀에 밖힌 자리에서 일을 하다가 정한 시간에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 오면, 파김치 된 몸, 씻고, 먹고, TV좀 잠간 보다가 또는 아이들과 짧은 시간 보내다가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일의 반복처럼 또 씻고, 아침 밥먹고, 바쁘게 출근하고, 이렇게 살다보면 어느 한 순간 이게 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바쁘게 몰아치며 살다가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나이든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좀더 나은 내일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시간도, 물질도, 환경도 우리로 하여금 소망이 넘치는 벅찬 내일을 꿈꾸게 하질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이 아닌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소망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전하고저 합니다.  

1.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래일을 말한다"는 말씀이 영어 성경에서는 prophesy 로 표현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앞뒤 문맥을 보면, prophesy 라는 표현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예언의 의미보다는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한글성경의 번역이 영어 성경보다 원문에 더 맞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장래 희망은 뭐야" 라고 말하는 한 마디로 말해서 미래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 아픈 예로 북한 어린이들에게는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하지를 않습니까?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그런겁니다.

    암울한 시대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 후손들 조차 내일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소망의 회복입니다.

2. 늙은이는 꿈을 꾸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구청 공무원으로 있는 어릴적 친구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요즘 노인들은 아침에 1만원권 한 장을 들고 집을 나서는데, 전철이나 버스가 공짜라서 노인들이 버스와 전철을 타고는 저 온양까지 간답니다. 하루종일 온천욕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 느즈막히 다시 올라오면, 집에 잠잘 시간쯤 되서 들어가게 된답니다. 다음날 일어나면 또 만원 한장 들고 집을 나서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 노인들이 상당수라고 이야기 합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없어서 하루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니까, 소위 인생 이제 다 끝났다고 하며 하루 하루를 그저 버티듯이 사는 그런 노인들에게 하나님이 꿈을 꾸게 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일에 대한 새로운 벅찬 소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나도 할 일이 있어" 라고 하는 삶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르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3.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자녀, 늙은 이, 젊은 이" 라는 표현은 모두 복수격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너희 자녀들은, 너희 늙은 이들은, 너희 젊은 이들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너희 자녀들은 장래일을 말하게 될 것이고, 너희 늙은 이들은 꿈을 꾸게 될 것이며, "너희 젊은 이들은 이상을 보리라" 말씀합니다. "이상"으로 번역된 말씀은 "vision" 입니다. "visions" 또 다른 형태의 꿈들을 이야기 합니다. 본문은 한 문장으로 "자녀들은 자신들이 소망하는 꿈을 꾸게 될 것이고, 늙은 이들은 전에는 늙었다고 모든 걸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며, 젊은 이들은 또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내일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생명력 있는 미래, 소망이 넘치는 미래, 살고 싶어지는 미래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주어지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과 영어 성경에는 요엘서가 총 3장으로 되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요엘서는 총 4장으로 구성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요엘서 2장이 27절까지로 되 있고, 우리말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2장 28절부터 32절까지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3장으로 분리 되고, 우리말 성경 3장이 따라서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4장으로 되 있습니다.

    그런데 그 2장 28절, 그러니까 히브리어 성경 3장 1절의 말씀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It will be afterward" 직역을 하자면 "그것이 성취된 후에, 또는 그것이 되어진 후에, 또는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 라는 말이 됩니다. 무엇이 성취된 후에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요? 2장 전체적인 내용이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한 마디로 "신앙회복이 이루어진 후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엘서의 기록연대를 대략 주전 80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남 유다 왕국이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니까, 이스라엘이 멸망 직전, 앗수르를 포함한 외세의 침략이 빈번하고 극에 달하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우상숭배가 판을 치고, 신앙이 변질되었고,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진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요엘서의 구성을 보면 1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 인해 닥치는 재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에 가서는 그러므로 살기 위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이하의 말씀, 그러니까 히브리어 성경에서 세번째 장으로 분리해 놓은 이 말씀을 통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신앙의 정화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해 주시겠다"고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 구원의 성취를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게 될 것이고, 소망이 다 끊겨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늙은 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실 것이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만 하면 그리하시리라 선언합니다.

    우리는 다시 꿈을 꿔 봅니다. 우리 교회는 다시 꿈을 꿔 보기로 했습니다. 열정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을 했던 그 시기의 그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서, 개척 당시의 목회와 신앙의 순수했던 시대의 처음 가졌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가서, 당시에 이루었던 신앙과 교회 부흥 성장에 대한 꿈을 다시 꿔 보기로 했습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꿈을 꾸고, 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겸손한 신앙으로 나아가십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앙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모습으로 회복되기만 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다시금 꿈을 꾸게 해 주실 것이고, 꾸는 그 꿈을 성취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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