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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6/12/18 낙심대신 소망을

관리자 2016.12.17 10:58 조회 수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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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열왕기상 18:41-46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기손 시냇가에서 모두 처형해 버린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왕에게 곧 비가 있을 것이라 예언하고 곧바로 갈멜산 정상에 올라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윽고 바다 먼 곳에서부터 작은 구름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기도에 의해 천기가 변하는 놀라운 장면을 대하게 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과도 같이 그도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었음을 생각할 때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국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믿고 기도해 봅시다.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가 여러 방면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 중 하나인데 그것은 외견상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우리가 가장 바라던 축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많은 경우에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붙들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려면 실망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손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보고 실망하거나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요셉의 캄캄한 옥중 생활 속에는 앞날에 대한 소망이나 삶의 의욕도 없었을 겁니다. 타인에 의해 타지에 던져진 생활이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누구 하나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누명이 벗겨져 풀려 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세월을 옥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었던 요셉을 위해 애굽의 총리 대신 자리를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보이는 것이나 현재의 환경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에 의한 약속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가뭄으로 황폐화 된 나라를 위해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무 징조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기도는 계속 되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사환에게 산 저 건너편에 무엇이 보이는지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 했습니다.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가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계속 됐고, 사환은 엘리야의 명령대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바다 저편을 바라봤습니다. 한번 두 번 일곱 번째 가 보았던 사환이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바다 저편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입니다'. 이때 엘리야가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의 장마 비를 바라보고 아합왕에게 큰 비가 오면 길이 막히게 되니 속히 왕궁으로 돌아가라고 믿음으로 선포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오늘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내게 보이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손바닥만한 구름이라고 실망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 삶에 소망의 씨앗을 뿌리며 사는 성도가 되십시다.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하셨습니다. 또한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시적인 현상만을 가지고 실망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손바닥 만하게 보이는 그 구름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면 그에게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보이는 겉 모양만 가지고 실망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칠흑같이 어두우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와 같은 믿음 때문에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루를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오직 믿음으로만 나아갔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이 했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여 드렸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역사하시고 은혜 주시며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 집착하지 말고 축복 받은 뒤의 모습을 그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소망의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서는 끈질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비 오기를 일곱 번씩이나 기도했습니다. 일곱 번 아니라 비가 오기까지 그 이상이라도 했을 겁니다. 엘리야가 여섯번째 기도할 때까지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기도할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불의한 재판관의 예를 들으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할 때 몇 번 기도해 보고 구름이 안 나타났다고 불평하고 실망하며 기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일관성 있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기도하며 결코 실망치 말라는 명령입니다. 낙심은 아무 것도 이루게 하지 못합니다. 낙심대신 우리 성도들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인내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일곱 번째 기도를 마치고 나니 손바닥 만한 구름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표시였습니다. 이런 징조를 봤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의 반응을 보입니다. '겨우 손바닥만한 구름이야' 하며 실망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래 저거야 저건 분명 하나님의 응답의 표시야'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으로 올 수도 있고 더디게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성품적으로 인내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습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구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빠른 응답보다는 우리 자신이 먼저 깨어지고 변화되기를 원하며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인내하고 기다리는 성도에게 놀랍게 역사하시며 우리로 소망을 갖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엘리야도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죽기를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아합왕의 핍박과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도망 치다 너무 지쳐서 브엘세바 로뎀 나무 아래 쓰러져서는 하나님께 차라리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4절에 보면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했습니다. 그런 엘리야를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천사를 보내셔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하여 주심으로 다시금 힘을 얻게 하셨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였던 스펄젼은 '나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웅변가가 되려는 것보다 한 사람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소망이 이렇게 한 영혼의 구원에 대한 진실함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적 능력이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진실한 소원을 아뢰어 봅시다.

    인생이란 실지로는 오늘 하루에 요약됩니다. 과거는 불러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미래는 어떤 것인지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일을 잘 계획하고 잘 다스려야 합니다. 미래는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어떤 목표입니다. 그 찾아가는 과정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곧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엘리야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은 곧 우리에게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 기도의 눈물과 헌신의 땀을 흘리지 않으면 내일의 열매가 없으며, 있다 하여도 우리가 기대하는 복된 열매를 거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은 오늘 들으신 말씀을 통해 무엇을 보셨습니까?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 숨겨진 축복의 장마비를 보셨습니까? 그 축복의 장마비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사랑의 열매요 은혜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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