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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

2017/1/29 성도라는 이름아래

관리자 2017.01.28 14:06 조회 수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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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누가복음 17:1-3

    오늘은 2017년에 맞이하는 첫번째 선교/전도주일입니다. 선교/전도주일에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대체로 처음 교회에 나오는 이들은 하나님께 대해서나 교회 신앙 등에 대해서 매우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과 신앙이 기존 성도들의 그릇된 모습으로 점차 퇴색해 가기가 일쑤입니다. 오래 믿은 자일수록 신앙과 도덕성에서 앞서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타인을 실족케 하는 자에 대한 엄한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아래서 "나와 너" 즉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내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 주님은 나로 인하여 타인이 실족케 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웃, 즉 타인에 대한 나 또는 성도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전도 또는 선교라는 사명아래 성도와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보이는 행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2017년에 드리는 1월의 첫 선교주일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성도의 책임감에 대해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성도들은 나와 타인과의 관계성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1) 성도와 타인과의 관계는 자연 법칙에 의한 존재적 관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절을 통해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특히 성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자연 법칙에 의한 존재적 관계가 되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연법칙은 약육강식입니다. 강한 자만 살아 남게 되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만일 자연 법칙에 의존한 존재라고 한다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짐승과 같은 생물의 삶의 법칙이지 인간의 삶의 법칙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창조 때부터 자연 만물과는 별도의 존재로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법칙 아래 사는 존재들에게 있어서 타자들은 자기를 위한   "희생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자연법칙 아래 사는 자들의 삶의 법칙은 철저한 이기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인간만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라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 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고 했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희생시킴으로써 타인을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2) 성도들은 선한 영향력으로서의 "나"라고 하는 존재가 되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자연법칙에 의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러면 어떤 존재일까요? 타인에게 있어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되야 합니다. 특히 사회 법칙인 다수결 원칙에 의하여 다수에게 밀려난 소수의 무시당한 사람들에게 "진리는 다수에 있지 않다"고 가르치고 격려하며 긍지를 갖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존재가 곧 선한 영향력의 "나"가 되야 하는 겁니다.

    성도들은 윤리 법칙에 의하여 도덕적으로 정죄당한 사람들에게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 정죄당한 사람들의 죄를 사유했다고 하는 복음을 증거하는 선한 영향력이 되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로서의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로 타인 앞에 존재하고, 선한 일을 베푸는 자로 이웃에게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며 살지 못한다면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상실한 자가 된 겁니다. 선한 영향력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나"도 내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1) 오만과 이기적인 존재로서의 "나"가 그런 존재입니다.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인간이 타인에게 전혀 실족케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악영향을 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경우는 오만과 이기심으로 대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만은 대등한 인권 존중의 평등 사상의 결여에서 나타나고 이기심은 탐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누구나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 관계를 뛰어넘어 타인 앞에 군림하려는 것이 오만이고, 타인을 향한 지배자가 되려 할 때 오만한 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자연의 자산을 누리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이 많이 소유한 자와 적게 소유한 자로 갈등의 요인을 만듦으로써 타인을 실족케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많이 소유한 만큼 남이 적게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결국 내가 필요 이상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타인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내가 빼앗아 가지고 있다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곧 타인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러한 악영향을 타인에게 끼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가질 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하고,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가진 자는 갖지 못한 자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돌아 볼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입니다.

    2) 무지의 존재로서의 "나"가 또한 또 다른 "나"로 타인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타인에게 악영향을 주는 일 가운데 또 하나는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지하기 때문에 남을 선도할 수가 없고, 선도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알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사람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잠1:7).

3. 선한 영향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메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2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선한 영향력으로서의 성도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가 타인에게 있어서 선한 영향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의무입니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는 문책으로서의 형벌이 있게 된다는 뜻으로 본문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선하지 않으면 악한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선한 성도들이 되십시다. 성도라는 이름아래 사는 우리 성도들은 타인들에게 있어서 악영향을 끼치는 자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는 선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2017년에 맞이하는 첫번째 선교/전도주일입니다. 전도나 선교는 내가 성도의 모습으로 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전도나 선교는 말로써 예수 믿으라고 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성도들이 타인들 앞에서 예수 믿는 성도답게 사는 모습으로 시작되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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